[사설]건전재정 흔드는 정치권 예산 나눠먹기

[아시아경제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사업성 없다고 판명난 곳에 헛돈을 쏟아 붓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한심한 일이 나라 돈을 쓰는 과정에서 예사로 벌어진다. 정치권과 정부가 선거공약사업이라해서 밀어붙이고, 표를 의식해 예산 나눠먹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까지 정치권의 그런 행태를 비판했을까.  어제 대전에서 열린 정책세미나에서 임원혁 KDI 경제정책연구부장은 "한국은 자원이 점점 정치적으로 배분돼 경제의 역동성을 해치는 위기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고속도로나 철도시설이 주요 20개국(G20) 중에서 최상위권인데도 예산은 사회간접시설(SOC)에 쏠리는 현상이 단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그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떠올리며 4대강 사업과 같은 정치적 판단에 의한 SOC투자를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직 경제관료 등의 모임인 건전재정포럼에서도 똑같은 비판이 쏟아졌다. 재경부 장관을 지낸 강봉균 포럼 대표는 "국회가 행정부의 재정 활동 감시는 소홀히 한 채 예산안을 정쟁 수단화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럼은 재정건전화를 위한 재정준칙 제정을 촉구하고 국회 예산 결산ㆍ심의 개혁 5대 방안을 제시하면서 타당성 없는 선거공약 사업의 반영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판의 목소리는 거세지만 경제성 없는 사업, 정치성 짙은 사업은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내년도 총 64개의 500억 이상 신규사업(총 사업비 38조2894억원) 중에서 48건(20조9204억원)이 '경제성 없음' 판정 또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았다. 전체 신규 사업비 가운데 54.6%가 '경제성 없음' 판정을 받거나 경제성을 따져보지도 않고 집행되리란 의미다. 여야 모두 건전재정을 강조하고 있으니 올해 예산국회만은 달라질까.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예산안은 벌써 정치권의 볼모가 됐다. 작년도 예산 결산도 끝내지 못했다. 내년 예산안 처리는 법정시한을 넘길 게 뻔하다. 그 과정에서 지역구 민원사업 예산을 챙기려는 여야 의원들의 '쪽지'도 여전히 난무할 것이다. 여야는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표의 노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비판의 소리를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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