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18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야당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 국회가 합의점을 찾는다면 이를 존중하고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논란이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논쟁 등 현안에 대해 뭉뚱그려 "국회에서 논의할 일"이라며 공을 넘긴 것이다. 이 발언을 두고 "기존 입장에서 전혀 진전된 것이 없다", "국회를 존중하며 현안 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란 상반된 시각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국정원이나 남북정상회담록 실종 등 정치 쟁점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공식 언급한 것은 이번까지 6번에 달한다. 사용한 단어나 느껴지는 어감은 때마다 달랐지만 기본 메시지는 거의 동일하다. 18일 시정연설에서는 '국회'의 역할을 강조한 게 특징이긴 한데, 이 역시 지난 발언을 돌아보면 전혀 새로운 메시지는 아니다. 박 대통령이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처음 입장을 밝힌 건 지난 6월24일이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서한을 청와대에 보내자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을 시켜 기자들에게 브리핑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당시 박 대통령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왜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대선 때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주지도 받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런 문제가 있었다면 여야가 제기한 국정원 관련 문제들에 대해서 국민 앞에 의혹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절차에 대해선 대통령이 나설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회가 논의해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 중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는 부분이 특히 야권의 심기를 건드려 상황은 크게 악화됐다. 되돌아보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국회가 논의해서 답을 찾으라는 메시지는 이미 이때부터 박 대통령의 기본적인 입장이었던 셈이다.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박 대통령은 7월8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한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 댓글 의혹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고 실체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대선이 끝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국정원 댓글과 북방한계선(NLL) 관련 의혹으로 여전히 혼란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어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야가 국정조사를 시작한 만큼 관련 의혹들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 후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 이후는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을 그치고 민생에 앞장서 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국정원 개혁 문제에 대해선 "이번 기회에 국정원도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혁안을 스스로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지시해 '셀프 개혁'이라는 새로운 비판거리를 만들고 말았다. 남북정상회담록 실종 사건이 불거진 8월6일에는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중요한 사초가 증발한 전대미문의 일은 국기를 흔들고 역사를 지우는 일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여야가 회담록 실종사건과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공방을 계속하자 8월2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작금에는 부정선거까지 언급하는데, 저는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선거에 활용한 적도 없다. 야당에서 주장하는 국정원 개혁도 반드시 이뤄낼 것이다. 국정원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조직개편을 비롯한 개혁은 벌써 시작됐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박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야당의 요구가 가라앉지 않자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억울함, 분노'에서 '설득' 쪽으로 기울었다. 10월3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지금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법부의 판단과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법부의 판단을 정치권이 미리 재단하고 정치적인 의도로 끌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여전히 "개인적으로 의혹을 살 일은 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지만 "앞으로 정부는 모든 선거에서 국가기관은 물론이고 개별 공무원이 혹시라도 정치적 중립을 위반하지 않도록 엄중히 (법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대책 마련 쪽에 방점을 찍었다. 또 "이런 일련의 의혹을 반면교사 삼아 대한민국 선거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확실히 밝혀 나갈 것이고 반드시 국민께 정확히 밝히고 책임을 물을 것이 있다면 물을 것"이라는 다짐도 했다. 일련의 발언을 종합하면 18일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입장 표명은 메시지 측면에서 기존 것과 거의 동일하다는 지적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마찬가지 취지에서 "대선을 치른 지 1년이 되어가고 있는데 지금까지도 대립과 갈등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정부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안들에 대해 빠른 시일 내에 국민 앞에 진상을 명확하게 밝히고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대로 책임을 물을 일이 있다면 반드시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발언 역시 박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야권의 요구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위로 분석된다.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정치경제부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