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의 사생활-10장 뜻밖의 방문자 (177)

하는 꼴로 보아 이장 혼자 꾸며낸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지난 번 수도 고장 땜에 전화를 했을 때만 봐도 그랬다. 윤여사는 맨숭맨숭 마치 하인이라도 부리듯 이래라 저래라 시키는 눈치였고, 이장은 이장대로, ‘씨펄, 내가 지 종인가? 이래라 저래라 하게.’ 하고 군시렁거리긴 했지만 별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보면 어쨌거나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사이라는 건 분명했다. 그런데....? 하림의 머리 속으로 불현듯 이상한 느낌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수도 고치러 왔던 염소수염이랑은? 그때 전화할 때 비록 ‘도둑놈!’ 어쩌구 했지만 그 사내 역시 윤여사를 잘 안다는 듯이 전혀 개의치 않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작자가 전날 밤, 개를 쏘아죽인 후 질질 끌고 가서 이층집 영감 담벼락 아래 던져둔 바로 그 인간 아니던가. 윤여사가 그것을 알 리는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 둘 사이에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사이의 일이다. 그리고 더더욱 알 수 없는 것이 남녀 사이의 일이다. 하긴 자기랑 하소연이의 사이만 해도 누군들 알 수가 있겠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윤여사의 흰색 그랜저는 읍에서 좀 떨어진 강가 언덕에 자리잡은 매운탕 집에 도착했다. 넓직한 마당에 정자식으로 지은 마루방이 제법 운치가 있어 보이는 집이었다. 점심 때가 아직 이른 데도 여지저기 벌써 몇 팀이 앉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매운탕 끓이는 매콤한 냄새가 은근히 와서 코에 감겼다. 배에서 쪼로록 소리가 났다. 뚱뚱한 여자 주인이 조르르 달려 나와 윤여사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언니, 동생 하는 걸 보아 잘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좋구먼.”동철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긴 지난 겨울 동묘 앞 제주도 흑돼지집 보다야 백배 나았다.“민물새우를 일명 뭐라는 줄 아세요?”자리를 잡고 앉자 윤여사가 물었다.“듬벙 새우....?”하림이 자신없게 말했다.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딩동땡! 야, 역시 작가님이라 다르시군요.”윤여사가 뜻밖이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리듯이 말했다. 그리곤 이어,“하지만 반 밖에 못 맞췄어요. 나도 여기 와서 알았지만 청주나 청원 지방에선 이 민물새우를 가리켜 새뱅이라고 부른대요. 그래서 민물새우탕을 일명 새뱅이찌개라고도 한답니다.”하고 마치 퀴즈 프로에 나온 아나운서처럼 말했다.“맞어. 나도 들었어. 나 어릴 때만 해도 시골 냇가에 많았어. 족대로 건져 올리면 피라미랑 같이 걸려나오곤 했지. 등이 빨간 게....”동철이 그 틈에 끼어들어 아는 체를 했다.“맞아요.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렸지만. 민물새우에 콩나물이랑 무랑 수제비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내는데 은은하게 흙내 같은 게 나면서.... 씹을수록 고소한 게.....아유, 먹어봐요!”끓기도 전에 넘친다고 윤여사가 침이 마르도록 광고를 해댔다.식사 전에 음식 이야기만큼 좋은 게 어디 있을까. 허기 진 배를 더욱 허기지게 만들고, 군침을 돌게 만들어 마침내 음식이 나왔을 때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식전, 음식 대화가 아니던가. 암튼 하림에겐 오래간만에 맛보는 즐거운 점심 자리였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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