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의 사생활-10장 뜻밖의 방문자(173)

 뜻밖에도 윤 여사와 동철이 화실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들의 출현은 UFO의 출현만큼이나 하림을 놀라게 했다. 하림은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오, 오래간만이네요. 웬일이세요?" 하림은 더듬거리며 몇 가지 말들을 동시에 뱉어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게으름을 피우느라 늦게까지 뒹굴고 있는 시점에 그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하림은 황급히 옷을 주워 입었고, 그 사이 윤 여사는 짐짓 고개를 돌리는 척해 주었다. "아니, 지금이 몇 신 줄 아나? 아침은 먹었어?" 손에 들고 있던 비닐 봉지를 탁자 위에 놓고 동철이 방을 한번 돌아보며 말했다.  "아니. 아직....." 하림이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그 사이 윤 여사도 방으로 들어왔다. 동철이 말마따나 진짜 주인이 제 방에 들어온 것이었다. 세 들어온 놈 주인 눈치 살피듯 하림은 공연히 그녀의 화실을 어지럽힌 데는 없을까 지레 찔렸다. 동철은 제가 주인이라도 되는 양 냉장고 문도 열어보고, 창문 커튼도 젖혀서 밖을 내다보고 하더니 탁자 의자에 덜렁 앉았다. "지낼 만해?" "응. 그냥." 하림이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망명정부 국정원장께서 잠만 자신다....? 그래, 그것도 괜찮다. 괜히 국정원장이랍시고 껄떡거리며 돌아다니는 것 보담은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르니까." 동철이 큰소리로 웃으며 놀리기라도 하듯이 말했다. "얼굴이 그때보담 홀쭉해졌네요." 동철이 맞은 편 의자에 앉으며 윤 여사가 말했다. 그때란 게 지난 겨울, 동묘 앞 흑돼지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그런가요?" 하림은 할 일없이 자기 얼굴을 한번 쓰다듬어 보며 멋쩍게 말했다. 그러면서 흘낏 윤 여사 쪽을 쳐다보았다. 그때는 금실이 박힌 빨간 덮개 모자에 발목까지 오는 진 초록색 망토처럼 생긴 코트를 걸치고, 그 위에 하얀 머플러를 한 모양새였는데 지금은 파마머리에 가벼운 흰색 블라우스 차림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입술에 빨간색 진한 립스틱을 바른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보니 이층집 여자 남경희랑 사십대 초반, 얼추 나이가 비슷해 보였다. "차나 한잔 드릴까요?" 하림이 말했다.  "좋지!" 동철이 대신 대답을 했다. "그렇잖아도 재영 누님께서 니 줄라고 족발 사왔다. 나중에 혼자 먹어." 동철이 탁자에 놓인 검정 비닐을 가르키며 말했다. 윤 여사가 그 사이 어느새 재영누님으로 호칭이 바뀌어져 있었다. 하림은 속으로 실실 웃음이 배어 나왔다. 실실 배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며 하림이 주전자에 물을 받고 가스레인지를 켰다."물은 잘 나와요?" 윤 여사가 말했다. 그때 수도 고친 일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예." 하림이 대답했다. 좀 호들갑스럽게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단답식으로만 말이 나왔다. 갑자기 수도 고치러 왔던 사내가 떠올랐다.  글.김영현/그림. 박건웅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김영현 기자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