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문제와 비정규직 차별..사내 인간관계도 큰 스트레스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직장인들은 고달프다. "돈 벌기 쉬운 줄 알았느냐"는 인생 선배들의 말로 위안을 삼기엔 벅찰 때가 있다. 과중한 업무나 경제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일보다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토로하는 이들도 있다. 시어머니처럼 닦달하는 상사는 물론 얄미운 시누이 역할을 도맡는 동료들도 모두 직장 내 스트레스의 근원이다. 최근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2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업무 도중 가장 서러울 때로 42.3%(복수응답)가 답한 '잡다한 업무를 혼자 할 때'가 꼽혔다.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는 '기분 안 좋은 상사가 이것저것 트집 잡을 때'(52.7%)가 가장 서럽다고 답했고, 이어 '믿고 말했는데 소문내고 다닐 때'(26.7%), '친한 척 하더니 무리한 업무 요청을 할 때'(24.1%) 순이었다. 서러움을 받으면서도 직장생활을 유지하는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라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절반 이상인 53.2%가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와서'라고 응답했다. 다음으로 '더 나은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서'(40.2%), '다들 참고 하는 일이라서'(37.1%) 등이 상위권에 올랐다. 회사에 다니면서 가장 서럽고 힘들었던 상황은 언제였는지 직장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임금 문제와 비정규직 차별.."가장 힘들어"= 직장인 한수영(가명ㆍ27)씨는 지난해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으로 들어간 신생기업에서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2개월간의 임금체불도 모자라 갑자기 회사 문을 닫겠다는 사장의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은 것. 조만간 밀린 임금을 주겠다며 시간을 끌던 사장은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을 배우자 명의로 빼돌리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한씨는 반년 가까이 고용노동부와 법률구조공단까지 전전한 끝에 보상금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는 "사회초년생 시절이라 상처가 커서 눈물도 많이 흘리곤 했었다. 끔찍한 악몽을 꾼 것 같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경력직으로 기업에 취직한 서동현(가명ㆍ31)씨도 최근 직장에서 '돈' 때문에 서러운 일을 겪었다. 회사 방침 상 입사 후 1년은 계약직인 탓에 정규직인 동료들은 다 받는 여름 휴가비를 서씨만 받지 못한 것. 그는 "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만 제외됐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됐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느라 혼났다"며 "돈도 돈이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알게 모르게 차별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가장 힘들다"고 전했다.
◆온갖 '잡일' 시키고 트집 잡는 꼴불견 상사 = 직장인 김진석(가명ㆍ29)씨는 날마다 담당 업무와 상관없는 궂은일을 시키는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달 상사의 이삿날 김씨를 불러낸 건 전조에 불과했다. 이후 대학생 딸의 학교 과제, 사무실에 있는 금붕어 어항 청소까지 온갖 잡무는 다 김씨의 차지다. 그는 "마치 심부름 센터 직원이 된 느낌"이라며 "줄곧 허드렛일을 시켜놓곤 퇴근 직전에 불러내 '왜 지시한 업무를 마치지 못했냐'고 물을 땐 한숨만 난다"고 말했다. 직장인 오민지(가명ㆍ32)씨는 사소한 것에 일일이 트집을 잡는 상사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짜증이 치민다. 평소 남부럽지 않은 세련된 패션감각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오씨에게 '코디가 이상하다', '그 옷은 유행이 지나지 않았냐'며 오씨를 괴롭힌다. 며칠 전에는 오씨가 건넨 말에 상사는 '말투가 좀 까칠하게 들린다'고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오씨는 "도대체 왜 그러는 지 영문을 모르겠다"며 "평소 상사는 다혈질인 성격 탓에 흥분을 잘하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까지 한다. 말투까지 지적당하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털어놨다. ◆직장 내 동료 "같은 편이야, 적이야?" = 올해 2년차 신입사원인 박주림(가명ㆍ32)씨는 얼마 전 여름휴가를 다녀온 후 회사에서 눈칫밥을 먹느라 혼났다. 휴가 예정일을 앞두고 건강에 이상이 생긴 탓에 휴가를 몇일 당겨 일주일 넘게 쉰 것이 화근이었다. 정씨는 "회사에 복귀했는데 '몸은 좀 괜찮냐'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면서 "오히려 '자리를 오래 비워 피해를 줬다'며 볼멘소리만 해대니 나도 모르게 울컥하더라"고 말했다. 직장인 이서윤(가명ㆍ33)씨는 평소 믿었던 동료의 이기적인 면을 보고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고 했다. 이씨는 "팀에 결원이 생겨 함께 업무를 분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게 모든 업무 부담을 지우려고 하더라"며 "내가 '그렇게 못 하겠다'고 하니 적반하장식으로 화를 냈다"고 전했다. 그는 "그동안 함께 일하면서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결정적인 순간 등을 돌리는 건 한 순간이더라"며 "특히 주변 사람들을 하나둘씩 자기 편으로 만드는 그 동료의 지능적인 수법은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덧붙였다. 직장인들의 갖은 애환만큼 스트레스 해소법도 다양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펑펑 울기도 하고, 퇴근 후 술 한 잔으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고 했다. 마음이 맞는 친구나 동료들과 모여 즐겁게 수다를 떨거나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짜증을 일순간 날려버리기도 한다. 가족과 함께 위안을 찾는 경우도 있었다. 7년차 직장인 박영란(38)씨는 "직장 내 갈등을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여유롭고 긍정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며 "서럽고 억울한 상황을 그저 꾹 참기보단 상대방과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며 해결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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