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詩]이경의 '웃고가는 신발 한 짝 - 서정춘 선생님의 '허시'에 차운하여'

타고남은 서까래 그/게으른 문장의 갈비뼈로/복사꽃 한 채를 복원하는 일 가능할까 몰라 천년 묵은 복사꽃/복사꽃 가지 올려다보는 각도에서 어림잡은 기왓장 용마루/절 한 그루터기를 읽어내는 일 가능할까 몰라//활활 타는 독경소리/앗, 뜨거라 귀조차 태워버리고/한 발 헛딛는 바람에 천년 꽃잎의 재를 뒤집어쓰는 꼴이 무엇이 재미있다는 건지 껄 껄 껄 학의 어깨를 치켜들고/술 묻은 수염으로 웃고 가는/신발 한 짝■ 타고 남은 서까래와 풍장이 남긴 뼈다귀를, 후배 시인은 절집으로 돌려놓고 싶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되돌려 놓고 싶었다. 허시(虛詩)의 시인은 시의 문장을 벗고 훌훌히 떠났는데, 굳이 흩어진 시간을 붙잡아 오려는 것은, 그 시의 빈 곳을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여백이란 무엇으로도 될 수 있는 신생의 공간이기도 하기에, 거기 천 년 묵은 복사꽃, 절 한 그루터기를 신축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절만 있으면 재미없지 않은가. 독경 읽는 사람까지 거기 들어앉혔는데, 한순간 시간이 몰려와 다시 불타고 천 년 꽃잎의 재를 뒤집어쓴다. 그 윤회의 한 자락이 되살아나니, 도사 같은 허시의 주인이 막걸리 한잔 걸치고는 날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 신발 한 짝엔 서까래나 뼈다귀마저 다 비웠다. 오후 햇살 한 줌이 내려와 외짝 신에 발을 꽂으며 껄껄껄 웃는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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