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아침]카라얀, 클래식 음악의 '황제'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오늘은 1989년 20세기 '클래식 음악계의 황제'로 일컬어지는 카라얀이 숨진 날입니다. 옛날에는 시골 이발소에까지 그의 사진이 걸려 있는 곳이 많았죠. 곱슬머리에 눈을 지그시 감고 가느다란 지휘봉을 잡고 있는 옆모습. 참 인상적인 사진이었죠.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감고 지휘를 한다는 것은 단원들과 완전한 교감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는 그만큼 치밀하고 완벽한 연습을 요구했습니다.독선적이고 제왕적인 성격으로, 단원들과 갈등도 많았고 인간적인 결점도 많았지만 그의 재능만큼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혼을 세 번 했으며 특히 출세를 위해 스스로 나치당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전후에는 전범(戰犯)으로 감금당하기도 했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평생 비난을 감수해야 했습니다.그의 날카로운 성격은 1984년 베를린 필하모니를 이끌고 방한(訪韓) 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지휘했을 때도 잘 드러났죠. 공연을 주최한 신문사의 인터뷰는 물론 그 신문사 회장이 베풀겠다는 파티도 거절했습니다. 심지어 독일대사가 만나자고 하는 데도 뿌리쳤습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그는 오스트리아 짤스부르크에서 외과 의사 아버지와 슬로바키아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1908년 4월 5일 태어났습니다. 짤스부르크는 모짜르트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죠.처음에는 형을 따라 공대에 진학해 교수가 되려 했으나 곧 자신과 맞지 않음을 알고 음악가의 길을 택합니다. 또 처음엔 피아노를 쳤으나 스승의 권유로 지휘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결국 그는 유럽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가 되었고, 나아가 오페라 연출, 음악 영화 연출, 매니지먼트 사업, 교육, 음악 치료 등 전방위로 뮤직 비즈니스에 손을 뻗어 성공했습니다. 특히 CD로 많은 음악을 녹음해 유통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CD의 용량이 74분으로 정해진 것도 카라얀의 의견이 크게 작용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카라얀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이 CD 한 장에 모두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당시 소니의 부사장 오가 노리오도 같은 의견 이어서 그렇게 정해졌다는 것이죠.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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