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교황과 CEO의 닮은 점

이진수 국제부장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8일(현지시간) 자리에서 물러나 '명예교황(emeritus pope)'으로 여생을 보내게 된다. 이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지도자 선출 과정인 로마 가톨릭 교회 수장 선출이 다음 달 바티칸에서 시작된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몇몇 걸림돌에 직면해 있다. 베네딕토 16세의 사임 결심에 부패와 동성애 등 바티칸의 실상이 담긴 비밀 보고서가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스캔들은 가톨릭 교회와 12억 신도 사이에 단절을 야기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도 비슷한 위기에 놓여 있다. 이른바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이 좋은 예다. 이는 소비자들이 글로벌 경제의 파탄을 몰고 온 기업 경영진에 대해 불신하고 있다는 증거다. 교황 선출 추기경단 비밀회의인 '콘클라베'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선임 위원회는 교회와 기업의 명성을 되찾아줄 인물 찾기에 나서야 한다. 차기 지도자가 잘못 선출되면 조직원들이 더 동요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교황 선거가 만장일치제로 진행되는 줄 알지만 실은 비밀투표로 3분의 2 다수결이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 여러 차례 투표해도 3분의 2 이상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1996년 개정된 규정에 따라 추기경 회의를 거쳐 과반 득표자도 교황으로 선출할 수 있다. 이것이 교회 나름의 지도자 검증 과정이다. CEO 선정 위원회는 차기 수장 결정 시 후보가 글로벌 마인드를 갖췄는지 살펴본다. 소비시장과 공급망의 글로벌화로 다양한 문화 속에서 기업을 이끌려면 글로벌 마인드는 CEO의 필수 조건이다. 유럽 바깥의 가톨릭 신도가 늘고 있는 요즘 콘클라베도 글로벌화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러나 콘클라베의 50% 이상을 유럽 출신 추기경이 차지하고 있어 교회의 글로벌화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현재 유럽의 가톨릭 신도는 2억8492만명으로 전체 신도의 24%를 차지한다. 한편 콘클라베에서 투표 자격이 있는 유럽 출신 추기경은 62명으로 52%에 이른다. 남미 신도는 3억3901만명으로 전체의 28%나 차지하지만 콘클라베에 참여하는 추기경은 19명으로 겨우 16%다. 브라질의 신도는 1억6326만명으로 단일 국가로 따지면 가장 많다. 하지만 콘클라베에 참여하는 추기경은 5명이다. 이에 "교황을 뽑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새 교황은 무지개 색깔 같은 세계 각지의 신도를 서로 이어줘야 교회의 진정한 수장일 것이다. 이는 CEO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CEO는 숱하고 다양한 주주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고 조율해야 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11일 사임 발표 성명에서 "신 앞에서 내 양심을 거듭 성찰한 결과 고령으로 내 기력이 다해 이제 교황직을 적절히 수행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가톨릭에서 주교는 75세에 사임한다. 80세가 넘은 추기경은 콘클라베에서 새 교황을 선출할 투표권이 없다. 결국 교황만 평생 권한을 유지할 수 있다. 600여년 만에 다시 보게 된 교황의 자진 사임이 사심 없는 행동으로 높이 평가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업에서는 CEO가 "기력이 다했다"며 스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중요한 것은 차기 지도자 선출 과정이 외부에 안정감을 줘야 한다는 점이다. 신속하고 잡음 없는 과정은 위대한 결과물로 이어진다. 교회와 기업의 순탄한 지도자 선정 과정은 모든 신도ㆍ주주에게 안정감을 안겨줄 것이다. 신도와 주주는 이런 조직의 지도자를 믿고 따르게 마련이다. 한국에서도 기업이 혈연 아닌 위대한 리더에게 순조롭게 승계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진수 국제부장 commu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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