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철기자
대전시의회 의원들이 중국을 다녀온 뒤 낸 공무국외여행보고서. A4 용지 5장 분량의 이 보고서엔 출장개요, 일정, 사진전과 포럼 주제발표 목록, 우호도시 조인식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의원들의 객관적 의견은 찾아볼 수 없다.<br />
인천시의회 의원 7명의 중국연수도 문제였다. 같은 달 인천시 국장급 간부, 건설교통위원회 직원들까지 함께 나갔다. 심지어 가족을 데리고간 의원들까지 있었다. 특히 인천시 국장급 간부는 이틀간 연가를 내면서 “지방재정 관련회의에 참석한다”고 이유를 댔다. ◆왜 욕먹을 줄 알면서도 외유 나갈까=이런 문제는 왜 자꾸 되풀이 되는 것일까. 지방의원들은 왜 ‘욕 먹을’ 걸 뻔히 알면서도 외유성 연수를 나가는 걸까.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외국연수심사의 공정성과 연수투명성이 미흡한 것에서 상당부분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지방의회에 해외연수에 관한 제대로 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시민들의 비판에 대한 의식, 또 자체적인 문제의식에 따라 이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실효성 있는 제도화로 이어지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최근 경기도의회에서 벌어진 일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기도의회는 지난 5일 의미 있는 조례가 본회의에 올랐다. ‘경기도의회 의원 공무국외여행에 관한 조례안’이 그것이다. 관광성 외국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만든 이 조례는 전날 운영위원회에서 한 차례 손질되면서 ‘누더기 조례’가 돼버렸다. 그나마 이조차도 본회의에선 찬성표가 부족해 부결됐다. 의원들 스스로 자신들에게 족쇄가 될 것이라고 보고 거부한 셈이다.조례제정이 무산되자 경기도의회는 기다렸다는 듯이 몰아치기식 외국출장을 떠나고 있다. 지난 1월 도시환경위원회가 베트남 출장길에 오른 데 이어 이달 3개 상임위가 동남아와 일본출장을 떠났다. 3월과 4월에도 5개 상임위가 외국출장을 검토 중이다. 경기도의회 11개 상임위 중 9개가 오는 4월까지 외국출장을 떠나는 셈이다. 경기도의회에서 도의원들의 공무국외여행을 규정한 것은 도의회 총무담당관실의 규칙이 전부다. 이러다 보니 의원들 간 합의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외국연수가 추진되고 있다. 경기도의원들은 전반기 의정활동을 하면서 공무국외여행을 2년에 한 차례만 다녀온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외유를 떠났다. 의원들에게 주는 1인당 경비(180만원)로 동남아 등으로 연수출장을 떠났거나 곧 떠날 예정이다.염홍철 대전시장이 일본 삿포로시에서 벤치마킹해 시청 로비에 차린 건강카페 모습.
외국여행을 다녀온 뒤 의회에 내야하는 공무국외여행 보고서도 부실투성이다. 대전시의회 의원들이 중국을 다녀온 뒤 낸 A4용지 5장 분량의 이 보고서엔 출장개요, 일정, 사진전과 포럼 주제발표 목록, 우호도시 조인식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의원들의 연수관련 의견은 찾아볼 수 없다. 의원들이 아닌 의회 사무처 직원들이 만든 것이다.대전시의회의 경우 공무국외활동 규칙 제7조 따르면 연수를 다녀온 의원은 30일 안에 연수결과보고서를 의장에게 내야 한다고 돼있다. 그러나 대전시의회 의원들은 이 규정을 따르지 않고 총무담당관실 직원이 보고서작성을 맡아오고 있다. 법과 규정을 지키는 데 모범을 보여야할 의원들 스스로 규정을 어기는 셈이다. 공무원이 보고서작성을 대신하는 건 이번뿐만이 아니다. 대전시의회가 생긴 이래 이어져온 관행이다. 의원들이 의정활동의 하나로 당연히 해야할 일이 사무처 직원의 잡무가 돼 버린 것이다. 외유성 관광출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7년 감사원은 30개 공공기관을 조사한 결과 외국출장의 51%가 외유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시찰·연수·자료수집 등 구체적 목적이 정해지지 않은 관광성 외유로 국민의 세금이 줄줄 샌다는 말이다.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관계자는 “공직자들이 도덕적 일탈로 세금을 축내는 것은 땀 흘려 일해 혈세를 낸 국민을 저버리는 일”이라며 “놀자판 해외여행을 다녀오고서도 변명만 할 뿐 잘못했다고 반성하는 공직자들을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합리적 심의 평가제도 갖춰야=공직자들의 외국연수 모두에 대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선진지 견학으로 우리 현실에 맞는 정책을 찾아내 벤치마킹을 하는 경우도 많다. 염홍철 대전시장이 자매도시인 일본 삿포로시를 다녀와 시청 1층 한켠에 건강카페를 차린 게 좋은 예다. 건강카페는 2010년 10월 염 시장이 삿포로시를 갔다가 시청 로비에 설치된 장애인이 일하는 건강카페를 보고 벤치마킹했다. 대전엔 지난해까지 10곳의 건강카페가 문을 열었다. 건강카페로 장애인 일자리 만들기와 사회적 기업 키우기란 ‘2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도 받았다. 삿포로시에서 이를 다시 벤치마킹하고 다른 시·도에서도 건강카페를 배워갔다. 문제는 이런 사례는 매우 예외적이란 점이다.적게는 100여만원에서 1000만원 넘게 드는 외국연수까지 공직자들의 외국행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 혈세로 공직자들 여행경비를 댈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개선하는 건 공직자들의 의식전환만 요구해선 별 소용이 없다. ‘무엇을 얻고 어떻게 배울까’를 고민하는 공직자들의 자세와 함께 제도적 보완, 이를 합리적으로 심의·평가·감시하는 시민사회 등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영철 기자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