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나면 커지는 미래과학부… 너무 무거운 '미래'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미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정치인생을 건 갈림길에 설 때마다 이 말을 품고 돌아왔다. 2002년 당권·대권 분리를 요구하며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한국미래연합을 세웠고, 2007년 경선 패배 후 친박 의원들이 공천에서 배제되자 미래희망연대가 출범했다. 지난 대선, 공약의 산실도 국가미래연구원이었다. 박 당선인은 이번에도 '미래'에 미래를 걸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22일 복수차관을 두고 지식경제부 산하 우정사업본부를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 아래로 옮기는 내용의 2차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2008년 정보통신부가 폐지되기 전까지 정통부 소속이었으니 원위치로 돌려보낸다고 인수위는 설명했다. 100조원 이상의 예금·보험 자산을 가진 우정사업본부는 외환은행 규모의 금융기관으로 컸지만, 인수위는 이 조직을 옛 우체국 수준으로 이해했다. 결국 미래부는 정보통신기술(ICT)과 과학기술에 더해 직원 4만4000명의 우정사업본부까지 거느린 슈퍼 공룡이 됐다. 교육부가 완강히 저항했지만 산학협력과 특성화 대학 지원 기능도 미래부로 옮겼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광주과학기술원(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미래부 아래로 간다. 이 무거운 조직의 항해는 순조로울까. ◆미래창조과학? 누구냐 넌=새 정부가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어 예산과 기능을 몰아줄 것이라는 발표가 나온 직후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혀를 찼다. 윤 전 장관은 "부처 이름은 들어서 뭘 하는 곳인지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면서 "경제대국이 된 한국이 해외에 부처의 명칭과 기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무부, 국무부처럼 간결한 이름을 쓰고 조직개편을 삼가는 미국을 좋은 예로 꼽았다. 관가의 베테랑들도 이렇게 정체성이 모호한 공룡조직은 5년 뒤 재개편 1순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앙부처의 한 고위관료는 "조직개편을 피할 수 없다면 '과학기술부+정보통신부+문화부' 처럼 간명한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면서 "마치 패치워크하듯 이 기능, 저 조직을 덧대면 정국 초기 잡음과 갈등이 엄청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술이라고 다 같은 기술일까=현재의 구도라면 미래부는 기초기술과 융합기술을 모두 관장하게 된다. 하지만 양자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스마트 혁명과 만난 ICT가 의식주 산업 전반에 빛의 속도로 변화를 이끈다면, 기초과학은 수십년을 담금질해야 빛을 보는 과학의 뿌리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 치중할 ICT와 긴 시간 투자가 요구되는 기초과학을 한 부처가 맡는다면 단기 성과 중심으로 정책이 기울 수 있다. 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황창규 전 지식경제부 국가연구개발전략기획단장이나 이석채 KT 회장,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이 모두 융합기술에 밝은 전문가들임을 고려하면 이런 우려는 기우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타부처 장관 수준의 권한을 가질 복수 차관이 산하기관·관련 업계를 등에 업고 주도권을 다투면, 미래 먹을거리를 마련해두자던 당선인의 취지와는 달리 정국 초 극심한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선수가 휘슬까지 분다?=원자력의 진흥과 규제 기능이 한 데 몰리는 것도 걱정스럽다. 인수위는 앞서 1차 조직개편을 통해 대통령직속이던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미래부로 옮겼다. 교육부의 원자력 진흥 기능도 미래부에 줬다. 미래부가 원자력 산업을 키우고, 규제도 한다는 묘한 그림이다. 원자력 안전을 감독하는 독립 위원회를 두라는 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권고사항이다. 이렇게 가면 지금도 개운하지 않은 원전 안전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될 수 있다.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대표는 "미국의 경우 충분한 인력을 가진 핵규제위원회(NRC)가 엄격히 규제기관으로 독립돼 있다"면서 "위원회 인력 보강은 고사하고 진흥부처로 소속을 옮기는 건 퇴행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비판을 의식해 인수위에선 위원회를 총리 산하에 두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선수가 휘슬까지 부는 그림은 깔끔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더욱이 중장기 시계로 미래를 내다봐야 할 미래부 장관이 잦은 원전사고 뒷수습에 골몰하게 되는 건 비효율적이다. 박연미 기자 chang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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