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종전 불우이웃에 학자금을 지원하던 장학사업에서 대학생들과 중학생들을 이어주는 '드림클래스' 사업에 나섰다.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숨쉴틈도 없었다. 뒤를 돌아볼 잠시간의 여유도 없었다. 그저 우리 앞에 있는 선진국들을 쫓아가기 바쁠 뿐이었다. 너무 열심히, 빨리 뛴탓에 부작용도 많았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사람 구실 못한다는 고정관념이 자리잡았다. 기업들의 승진에서 여성들은 본의아니게 낙오되거나 아이를 키울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며 축배를 들때 협력사들은 아직 수금을 해주지 않아 텅빈 통장을 바라보며 월급 걱정을 해야했다. 부익부빈익빈의 빈부 격차는 사회적 문제로 자리잡았다. 고소득층 자녀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착실히 스펙을 쌓아가는 동안 저소득층 자녀는 스펙은 커녕 학비가 없어 진학을 포기하는 일이 다반사다. 지난 25년간 삼성그룹을 이끌며 우리나라 경제의 고속성장을 이끌어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아직 삼성그룹도 갈길이 멀지만 예상외로 고성장으로 인한 부작용이 빨리 왔다. 처음에는 이익을 기부라는 명목으로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좀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결국 이 회장이 선택한 길은 '삼성이 먼저 나서보자'라는 것이었다.이 회장의 사회공헌 철학은 '토양이 좋은 곳에서 나무가 잘 자라듯 기업이 커 나가기 위해서는 사회가 튼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이 1965년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해 문화 보존과 문예 진흥 활동을 펼쳐온 것이 시작이었다. 삼성문화재단은 이후 삼성복지재단, 삼성생명공익재단, 호암재단, 삼성언론재단, 성균관대학교, 중동학원 등을 통해 확대됐다. 이 회장은 지난 1993년 신경영 이후 재단 중심의 공익사업에서 직접 실천하는 사회공헌 사업으로 변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삼성 사회봉사단'을 창단했다. 최근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삼성이 먼저 시작하고 재계가 함께 움직이자며 나섰다. 이 회장이 가장 고심하는 부분은 인재경영이다. 학력, 성별, 장애유무 등을 따지지 않고 능력중심의 공정한 채용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지난 1995년부터 시작된 '열린채용'이 그것으로 출신학교, 학벌 등을 따지지 않고 공개채용에 나서고 있다. 올해 들어선 소외계층의 고용을 적극 확대하기 위한 '함께가는 열린채용'을 도입했다. 지방대생의 채용 비율을 전체 신입사원 채용중 35%까지 확대했다. 고졸 공채도 별도로 실시하고 저소득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학업지원, 진학, 장학지원, 취업으로 이어지는 '희망의 사다리' 프로그램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열린 채용을 실시하면서 삼성그룹 내부에서도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함께 일하는 직원의 출신학교를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돼 있다. 같은 학교 동문끼리 모임을 갖지도 않는다. 스타 CEO 중에도 전문대를 졸업한 뒤 편입을 통해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도 있다. 오직 실력과 노력으로만 평가를 받는다. 여성 차별 해소에도 크게 힘써왔다. 신경영 이후 이 회장은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1992년 여성 공채를 최초로 실시한데 이어 1993년과 1994년 일반 공채와 함께 '여성 전문직 공채'를 별도로 실시했다. 하지만 그룹내부에 큰 변화가 없자 이 회장은 다시 한번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02년 한남동 승지원에서 경영진들과 회동한 이 회장은 "요즘 여성들은 옛날 여자들과 다르다"면서 "출산을 빼 놓고는 남성과 똑같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며 여전히 남아있는 남성위주의 관습을 꼬집었다.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관습을 채용을 통해 철폐하고 나선 이 회장은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며 나서고 있다. 바로 '드림클래스'가 그것이다. 저소득층이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해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는 상황을 기업들이 나서서 끊어보자는 것이다. 삼성그룹이 실시하는 '드림클래스'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다. 등록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그 대학생들이 다시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공헌 사업도 드림클래스를 통해 선보였다. 금전적인 기부와 재능기부의 장점을 결합한 절묘한 사회공헌 사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회적 기업을 확산하기 위해 '글로벌 투게더' 사업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국 공부방을 지원하고 다문화 가정,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기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다른 기업들이 손쉽게 동참할 수 있도록 사회적 기업 설립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메뉴얼로 만들기도 했다. 이 회장은 이 모든 것을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설명한다. 인간이 사회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관계를 맺어야 살아갈 수 있듯이 기업 역시 사회 구성원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 회장의 지난 25년간은 고질적인 악습과 병폐를 깨기 위한 도전의 세월로 요약된다. 비단 삼성그룹 뿐 아니라 LG그룹서도 고졸 사장이 탄생하고 여성 경영진들의 약진이 거듭되고 있다. 소위 스카이(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졸업생이 아니면 원서조차 낼 수 없었던 회사들은 능력과 가능성을 보고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있다. 연말에 불우이웃 성금을 내는 것으로 사회적 공헌을 다 했다고 생각했던 기업들도 하나둘씩 재능기부에 나서고 있다. 삼성이 시작하며 기업들이 변하고 다시 우리나라가 변하고 있다. 이 회장이 심어 놓은 한알의 씨앗이 들판을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명진규 기자 aeo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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