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0-0. 연장 종료 1분 전. 경기장에 모인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승부차기가 떠오르던 그때. 포항의 프리킥 기회가 찾아왔다. 신진호의 오른발을 떠난 공이 포물선의 마지막 궤적을 그릴 즈음, 박성호가 솟구쳐 올랐다. 절묘한 백헤딩. 뛰어나온 김병지 골키퍼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공은 119분 동안 철옹성 같던 경남의 골문을 갈랐다. 황선홍 포항 감독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순간 위를 쳐다봤다. 또 다시 자신을 버릴 줄 알았던 하늘을 향한, 감사의 시선이었다. 곧이어 경기 종료 휘슬. 황 감독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월드컵에서 역사를 써나가던 순간에도 울지 않았던 그였다. 그만큼 간절했고, 가슴 벅찬 2전 3기 끝 우승의 감격이었다. 포항 스틸러스는 20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2012 하나은행 FA컵 결승에서 연장 종료 직전 터진 박성호의 결승골에 힘입어 경남FC를 1-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포항은 역대 세 번째 우승이자 2008년 이후 4년 만의 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특히 황 감독은 부산 시절 2009년 리그컵과 2010년 FA컵 이후 세 번째 도전 만에 지도자로서 첫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황 감독은 시상식 직후 서포터즈 석으로 달려가 현역 시절 트레이드마크였던 '철창 세리머니'를 선보이기도 했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황 감독의 표정은 감격에 차 있었다. 그는 "감사하고 영광스럽다"라는 말로 운을 띄웠다. 이어 "처음이 힘들 거라 생각했다. 오늘 경기에 '이것 아니면 아무것도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라고 밝혔다.황 감독은 "경기 내내 우리 선수들이 너무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히 뛰어줬다"라며 "그 때문인지 경기가 끝나는 순간 울컥하더라"라며 흘린 눈물을 쑥스러워했다.지난 두 번의 실패가 이날 성공의 열쇠가 됐음을 털어놨다. 황 감독은 "부산 시절 첫 리그컵 결승전에선 전략보다 패기로 맞섰고, 수원과의 FA컵 결승에선 상대 전술에 대해 맞춰 너무 깊이 생각하다 실패했다"라고 회상했다.그는 "오늘 경기 앞두고는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고, 끝까지 기다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솔직히 오늘 경기 중에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부정적 생각도 들더라. 냉정하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털어놨다.
'초보 우승 감독'의 재밌는 일화도 털어놨다. 황 감독은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시상식 내내 정신을 못 차렸다"라며 "코치들이 '이쪽으로 가세요, 트로피 드세요, 사진찍으세요, 웃으세요'하면서 지시해주더라"라며 웃어보였다. 철창 세리머니에 대해서도 "선수 시절엔 한 번에 훌쩍 뛰어올랐었는데, 오늘은 사다리 타고 겨우 올라갔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이제 다시 시작이란 생각도 밝혔다. 그는 "첫 시작이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라며 "나는 아직도 부족함이 많다. 이번 우승이 지도자 인생의 첫 걸음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100보, 1000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연구하고 노력하겠다"라고 전했다.100보, 1000보는 다름 아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뜻한다. 황 감독은 ACL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K리그 감독이 된 이후 모든 ACL 경기를 챙겨봤을 정도다.그는 "올해 첫 ACL 도전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우리 선수들도 2009년에 우승했던 경험이 있어 상당히 목마름을 갖고 있다"라며 내년도 ACL 우승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더불어 " K리그 우승도 중요하지만, 포항 부임 이후 ACL 우승과 클럽월드컵 무대를 마음 속 목표로 품었었다"라고 밝히며 "그 길을 가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라며 힘주어 말했다.황새의 도전과 비상은 이제 막 시작됐다는 뜻이었다.
전성호 기자 spree8@정재훈 사진기자 roze@<ⓒ아시아경제 & 스투닷컴(stoo.com)이 만드는 온오프라인 연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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