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근심’ 알면 ‘안심’, ‘학자금 지원제’
[사진: 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고금리 학자금 대출을 받은 대학생들을 지원하겠다고 몇몇 기관들이 나서고 있다. 하지만 ‘몰라서’ 못 쓰는 경우가 대부분. 지원책에 따르면 기존 연 20% 이상의 대출의 경우 3%대로 낮출 수 있다. 또 신규대출의 경우도 3%대의 저리로 가능하다. 가을이다. 캠퍼스는 2학기를 시작했다. 각 대학교에는 새 학기의 시작을 알리는 듯 말끔한 대자보가 즐비하다. 학생들은 저마다 두꺼운 서적을 품에 안고 강의실로 발길을 옮긴다. 그 곳에서 김미진(23·가명)씨와 서진우(22·가명)씨를 만났다. 둘은 모두 대학생이지만 사정은 달랐다. 김 씨는 몇 주 전 졸업 학기 등록을 무사히 마쳤다. 그는 뇌병변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보살피느라 지난 1년 간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금전적인 문제도 컸다. 치료비와 수술비는 집안에 부담을 안겼다. 학교를 빨리 마치고 돈을 벌고 싶었던 김 씨는 모 대부업체를 통해 등록금을 마련했다. 연 40%에 이르는 고금리였다. 등록금은 마련했지만 그에게는 생활비도 필요했다. 김 씨는 “학교를 다니면서 꾸준히 일을 했지만 기별도 안 되는 벌이였다”며 “결국 학업을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김 씨에게 도움의 손길이 뻗쳤다. 바로 ‘학자금 부채상환 지원.’ 그는 먼저 대출 받았던 500만원에 대해서는 기존 40%의 이자 금리를 3%로 낮춰 잠재적 위험요소를 없앴다. 여기에 새로운 학기 등록을 위해 500만원의 신규대출도 받았다. 역시 3%대의 초저금리다. 김 씨는 요즘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다. 학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큰 동기부여가 됐다. 반면 서 씨는 휴학계를 낸 상태였다. 그가 처음 학자금대출에 손을 댄 것은 1학년 2학기. 등록금 납부기간이 임박해 그는 한 저축은행을 찾아 연36%의 금리로 500만원을 빌렸다. 예체능계열인 서 씨의 등록금은 600만원이 조금 넘는다. 그는 “남들도 다 하는 주변 분위기에 망설임이 없었다”면서 “(거치기간)2년 동안은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공돈’이 생긴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문어발식으로 받은 학자금 대출로 네 학기를 꾸려온 서 씨는 현재 연 이자만 1500만원 가량 납부하는 처지다. 학기 중간 아르바이트도 하며 빠듯하게 보냈지만, 생활비와 레슨비 등으로 고스란히 빠져나갔다. 때문에 그는 이번 가을 학기 등록을 포기했다. 더 이상 빚을 져서는 안 된다는 불안감과 돈을 벌어 빚을 갚아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이었다. 서 씨의 부담을 덜어줄 방법이 과연 ‘휴학’ 밖에 없었을까. 그는 ‘학자금 부채상환 지원’에 대해 “몰랐다”고 답했다. 졸업장 보다 먼저 받는 ‘대출문서’캠퍼스를 누벼야 할 대학생들이 은행 문턱을 넘나들고 있다. 대출서류를 꾸미는 손은 더 이상 사업가만의 것이 아니다. 대학생 5명 중 2명이 대출을 받는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첫 경험이 아니다. 반복되는 대출로 빚은 쌓여만 간다. 부작용은 작년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반값등록금’ 시위가 줄을 잇고, 쌓인 부채로 자살하는 대학생도 나왔다.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면서 대안도 속속 등장했다. 기존 정부지원 외에도 대안금융 기관이나 기업 재단, 지자체들도 학자금 대출에 대한 지원에 나섰다. 기존의 높은 이자를 저렴한 이자로 바꿔 부담을 덜어주고, 신규로 돈을 빌리려는 학생도 도왔다. 문제는 학생들의 이용이 저조하다는 데 있다. 빚 탕감의 동아줄을 내려주지만 몰라서 못 잡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지난 8월,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국내 전체 대학 재학생 중 학자금 대출을 받는 학생이 15%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전년(14.8%)보다 늘어난 수치. 하지만 이는 정부가 지원하는 학자금(한국장학재단)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사금융과 민간 영역의 지원까지 포함하면 비율은 한층 높아진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이번 가을학기 전에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288명)의 41%가 “학자금을 대출 받을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국내 전국 대학생(전문대, 대학원 포함) 수 335만명(2010년말, 통계청) 중 130만명 이상이 빚으로 학교를 다닌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 중 68.6%는 이미 대출의 쓴맛을 본 학생들. 부실해져만 가는 가계 경제와 높아져만 가는 등록금이 만난 탓이다. 등록금 외에 소위 ‘스펙쌓기’ 비용이 커진 현실도 학생들을 대출시장으로 내몰았다. 등록금 지원에 대한 방안이 딱히 없어 ‘대출’이 유일한 대안이 된 것이다. 후유증은 크다. 변변한 수입이 없는 학생들은 너무나 쉽게 ‘신불자’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서울권 모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C군은 “모 업체에서 받은 학자금대출금이 미납이 되어 신용불량자가 됐다”며 “미납 금액을 해결해야 (신불이) 풀린다고 하던데, 풀고 나서도 신용불량자 꼬리표가 남을까 두렵다”고 했다. 고등학생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보편화된 대학교육’ 체제 하에 있는 국내 사정상 이 같은 대학생 채무 불이행은 전 사회적인 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내 한 교육전문가는 “빚부터 안고 가는 부담감이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대책 없는 등록금 부담과 함께 고금리 자금을 쉽게 사용하는 사회적인 풍토도 청년 빚쟁이 양산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대학생 K씨는 “작년에 저축은행을 통해 200만원을 빌렸는데, 올해 2월에 300만원을 더 받았다”며 “처음에는 많이 주저했는데 한번 해보니 주저함도 덜 하더라”고 했다. 대학생 이자 부담 덜어주려 정부·지자체가 나섰다정부는 지난 2009년, 한국장학재단을 설립하며 대학생 금융 문제 지원에 나섰다. 수요자 중심의 국가장학지원 체제를 구축해 인재양성에 나서겠다는 취지다. 한국장학재단은 의지와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립된 학자금 지원 전문기관. 정부가 출자한 2조7000억원을 학자금으로 운용한다. 대출금리 3.9%의 ‘든든학자금’이 대표 상품이다. 든든학자금은 만 35세 이하의 대학 신입생·재학생이 이용할 수 있으며, 상한규모는 없이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다. 소득 수준 기준으로는 7분위(총 소득 5559만원 이하) 이하인 학생이 이용가능하다. 든든학자금 대출 조건이 맞지 않은 경우, ‘일반상환학자금 대출’제도도 이용할 수 있다. 이 제도는 든든학자금과 달리 대출 상한선이 있다. 일반대학의 경우 4000만원이며, 의학대학 등 5·6년제와 일반, 특수 대학원은 6000만원, 의학·치의학·한의학 계열은 최대 9000만원까지 지원 받을 수 있다. 또한 학자금 대출과는 별도로 학기당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가능한 생활비 대출도 진행한다. 한국장학재단에서 진행하는 대출은 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신청이 가능하며, 기한은 오는 9월 24일까지다. 한국장학재단의 활동은 각 지자체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재단을 통해 받은 금액의 이자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대출이자의 부담을 전소시키겠다는 것. 서울시의 경우, 올 상반기 동안만 8217명의 대학생이 가진 5억4610만원의 학자금 대출이자 분을 해결해줬다. 대학생 한명 당 6만 6000원의 이자를 탕감해준 셈이다. 서울시 교육협력국 관계자는 “지원을 받은 학생 중에는 만학의 꿈을 펼치는 57세의 어머니도, 고교를 갓 졸업한 95년 생 새내기도 있었다”며 “앞으로 학자금 대출이자 부담으로 학업에 매진하지 못하는 대학생이 나오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대출(일반상환학자금) 받은 학생 중 소득 7분위 이하인 자는 서울시 홈페이지 방문해 신청할 수 있다. 현재 하반기 지원대상자를 접수 중이며, 오는 12월에 지급할 예정이다. 광역시 중에서는 광주시가 최초로 시행했다. 한국장학재단의 일반학자금을 대출받고, 광주에 1년 이상 주소를 둔 광주 소재 대학 재학생에게 올해 1학기 학생 본인이 부담하는 대출금리 전체를 1년간 지원한 것. 시는 보다 많은 학생들의 신청을 유도하기 위해 관계기관 홈페이지 안내와 SMS 안내문자 발송 등을 통한 홍보를 병행해 (대출)대상자의 83.6%인 755명의 신청을 이끌어냈다. 인천시 역시 같은 사업을 위해 2억 5600만원의 예산을 들였다. 인천시는 지난 7월 15일까지 2011·2012년도에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받은 1·2종 일반상환 학자금 대출에 대한 이자지원 신청을 마쳤다. 이 밖에도 현재 8개의 지자체에서 학자금 대출에 대한 이자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은행·보험사 등 사회공헌 형태의 지원도 늘어대학생 등록금이 사회문제화 되자, 은행·보험사 등을 중심으로 한 사회공헌 형태의 지원도 생겨났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와 ‘사회연대은행 (사)함께만드는 세상’(이하 사회연대은행)이 함께 진행하는 ‘대학생 학자금 부채상환 지원사업’. 등록금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던 작년 초부터 시작된 사업이다. 안준상 사회연대은행 실장은 “학자금 지원은 일자리 창출을 기반으로 하는 마이크로크레딧의 새로운 모델인 셈”이라며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를 통해 출연 받은 200억의 기금으로 내년 2학기까지 학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도울 계획”이라고 전했다. 사업 초기에 고금리대출을 저금리로 바꾸는 전환대출에 집중했다면, 2년차에 접어들면서 규모와 대상을 크게 확대했다. 먼저 대출금리를 연 3%(기존 3.9%)로 떨어뜨렸다. 여기에 pay-back(대출원리금을 성실하게 상환한 자에게 이자납부 총액의 50%를 돌려주는 제도)을 도입하면서 실제 대출 금리를 1.5%로 까지 낮췄다. 혜택의 규모도 넓혔다. 기존에는 전환대출자에 한해 신규 학자금 대출이 가능했으나, 그 범위를 일반대학생으로 확대했다. 재학생으로 두었던 제한도 풀어 휴학생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규모 또한 배가 됐다. 기존에는 전환대출과 신규 학자금대출의 한도가 각각 500만원이었으나, 이제는 대출받는 학생이 1000만원 범위 내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안준상 실장은 “고금리 대출을 많이 받은 학생은 전환대출로만 1000만원을 받을 수도 있고, 대출이 없는 학생은 1000만원을 신규로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와 사회연대은행이 진행하는 사업의 신규학자금 대출 신청은 매 학기 시작 전 가능하며 전환대출 신청은 수시로 가능하다. 전국 17개의 은행이 참여한 전국은행연합회가 미소금융중앙재단, 신용회복위원회 등과 함께 하는 ‘청년·대학생 고금리 전환대출’도 비슷한 형태의 모델이다. 전국은행연합회가 총 500억원의 기금을 마련해 미소금융중앙재단에 기부하면 신용회복위원회가 이를 받아 대상 청년들을 만나는 형식이다. 신용회복위원회는 고금리대출을 보유한 청년·대학생이 전환대출 신청을 할 경우 자체 심사를 실시한다. 대상 자격은 학자금 용도로 고금리(연 20% 이상) 대출을 받고 신청일 현재 연체가 없는 대학생(대학원생 포함). 자격이 맞을 경우 대출보증서를 발급해주고 대상자는 이 보증서를 산업은행, 농협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 전환대출을 취급하는 은행에 직접 신청한다. 은행은 전환대출금을 제2금융권 상환계좌로 직접 지급한다. 바뀐 대출은 ‘바꿔드림론’의 금리(연 6%)가 적용되며, 기간은 최장 7년이다. 1인당 1000만원까지 가능하다. 내년까지 1만 3000명의 저소득층 대학생을 지원하고자, 올해 초 국민은행, 서울보증보험 등 금융기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정몽구 재단의 학자금 지원사업도 있다. 정몽구 재단은 고금리 대출과 이자 연체로 난항을 겪는 8000명의 대학생을 지원할 계획이다. 3%대 전환대출은 물론, 기존 학자금 대출상품의 이용이 어려운 학생 5000명에게는 사실상 무이자로 신규 대출한다. 3년 거치, 5년 상환 중 거치기간 동안 이자(6.5%) 전액을 지원하는 것. 정몽구 재단의 지원은 만 35세 이하의 대학생(전문대생 포함) 중 소속 학교의 추천을 받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2년에 걸쳐 이뤄질 예정이다.몰라서 못 쓰는 대학생, 금융 인식 키워야정부 장학제도 이외의 지원이 종류와 범위가 넓지만, 실제 대학생들의 활용은 생각보다 저조하다. 이번 가을학기 직전 설문 당시 (원하는) 대출의 종류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93.3%가 ‘정부의 학자금 대출’을 지원받을 계획이라고 밝힌 것은 정보 부족을 증명한다. 자신의 금융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과 인식이 부족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안준상 실장은 “올해 1학기부터 내년 2학기까지 쓸 수 있는 기금이 200억 수준인데 5개월이 지났지만 이중 40억의 자금만 풀렸다”며 “이는 매우 저조한 실적으로 다른 사업 주체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는 이어 “교과부 지정 대학 400곳에 공문을 발송하고 매체광고도 하는 등 홍보를 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대학생 본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위에 따르면 전국 대학생 채무자는 8만 여명에 이른다. ‘돈 꾸는 작업’을 이제 막 시작했을지 모를 나이다. 향후 더 큰 규모의 채무를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떠안은 금융 딜레마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이코노믹 리뷰 박지현 jhpark@<ⓒ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주간국 박지현 jhpark@ⓒ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