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기자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지현기자]
블루베리는 무던하기도 하다. 물과 햇볕만 있으면 잘 자라는데다, 병충해에 강하기까지 하다. 은퇴 후에 먹을 것과 집만 있으면 별 탈 없이 살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을 영글고 있는 듯하다.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서 블루베리 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윤부기(66) 도연블루베리 대표는 행복하다. 은퇴 후 블루베리 농사에 뛰어들면서 큰 돈은 벌지 못 했지만 먹고 살만큼의 돈을 벌었고 건강까지 얻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가치있는 유유자적한 삶까지 얻었다. 윤 대표를 만나 블루베리처럼 무난하지만 건강한, 은퇴 후 삶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블루베리 농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수확이 한창 이뤄지던 6월과 7월 초만 해도 밭은 온통 검은 열매로 그득 차 있어 보는 이의 마음도 덩달아 흐뭇했다고 한다. 끝물인 지금은 더 이상 딸 열매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뒤늦게 꽃을 피워 아직 덜 익은 분홍색 열매들이 강한 7월 햇볕에 몸을 맡기고 마지막 선탠을 즐기는 듯 간간이 눈에 띠었다. “에휴, 끝물이라 열매도 많이 없어요. 올해도 얼마나 많이 열렸는지 최근엔 그거 따느라 정신없이 지냈지요. 따 놓으면 사겠다는 사람들도 많고 밭에서 따오는 족족 다 팔려서 지금은 냉동실 물량도 없을 지경이죠.”방금 밭에 다녀왔는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윤 대표가 땀을 닦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비닐하우스로 만든 간이 건물 안에 주문을 받아 포장된 블루베리와 아직 포장되지 않은 열매들이 탁자와 의자에 여기저기 놓여있다. 간간이 미리 전화 주문을 한 사람들이 건물로 방문해 미리 따놓은 블루베리를 맛보고 사가는 눈치다.그 때문에 윤 대표의 부인 양정원(60) 여사는 중국 운남성 등지에서 쓰는 것과 같은 대나무 고깔모를 쓰고 얼굴과 팔에 선크림을 듬뿍 바른 채 밭을 여러 차례 오갔다. 잠시 후 양 여사가 인터뷰하는 탁자에 까맣게 잘 익은 블루베리 한줌이 담긴 접시를 가져왔다. “드시면서 하세요” 검은 열매를 보니 군침이 돌았다. 한창 더위에 지칠 오후 2시경이라 목도 조금 말랐다. 조심스럽게 열매 몇 알을 집어 입안으로 넣자 향긋하면서도 새콤한 블루베리 맛이 혀끝에 전해졌다.퇴직 후 아내 제안으로 블루베리에 눈 떠윤 대표가 헤이리 농장에서 블루베리 농사를 짓게 된 지는 벌써 6년째다. 국내 화장품 대기업 영업부에서 약 20년간 일하다 지난 1998년 이사직을 끝으로 퇴직했다. 퇴직 후에 다니던 회사에서 운영하는 화장품 매장을 운영할 기회도 있었지만. 화장품과 관련된 연은 거기까지였는지 그 분야에서 더 이상 뻗어나가지는 못 했다. 새옹지마라고 했다. 고향 헤이리에서 뭔가 해보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고향에서 개발 붐이 한창 일고 있었다. 헤이리 마을을 비롯해 주변에 명소들이 생겨나면서 길도 뚫리고 시설들이 들어서는 시기였다. 은퇴 전부터 막연하게나마 고향으로 돌아가 생활할 생각이 있었는데 헤이리 주변 개발은 그에겐 기회였다.운이 좋았다고 할까, 복이 많다고 해야 할까. 그에겐 선대부터 물려받은 땅이 있었다. 구체적인 아이템은 그때까지만 해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하지만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우선 뭔가를 시작하고 나서 생각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직접 땅을 개발하기로 했다. 자신의 손으로 땅을 일구고 길을 닦고 기거할 공간들을 세우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 농원 내부에 설치된 도로와 정자, 쉼터, 컨테이너집 등은 그때 모두 그가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미래를 내다본 건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다.윤 대표는 지금 생활이 매우 만족스럽다. 몸에 좋은 블루베리를 재배하면서 건강도 좋아지고 일과도 짜임새가 있어졌다. 또 일정한 수입이 있기 때문에 미래가 덜 불안하다. 청정한 자연을 가진 고향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고운 석양을 바라볼 여유가 있어 행복하다.ⓒ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br />
건강 여유로운 인생 대만족…일정한 소득은 덤윤 대표는 오늘도 밭에 나가 풀을 뽑는다. 남자 손은 여자 손 보다 여물지 못하다 보니 블루베리를 따는 일보다 밭에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 훨씬 적성에 맞는다. 아내와 함께 자연을 벗 삼아 봄과 여름철 블루베리를 키우고 팔고 나면 일 년의 반도 어느덧 훌쩍 넘어간다. 고향인데다가 워낙 자연이 살아있어 더운 여름 따로 피서를 가지 않아도 된다. 피서지가 바로 그곳이다. 특히 블루베리는 단풍이 꽤 괜찮은 식물이다. 가을이 되면 농원 전체가 블루베리에 단풍이 들어 화려한 맛이 있다. 그럴 때면 정겨운 사람들을 불러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것도 이들 부부의 낙(樂)이다. 겨울철 하얀 설원도 마음에 든다.블루베리는 한철 농사다. 7월까지 농사를 다 짓고 나면 늦여름부터 이듬해 봄까진 개인적인 일을 할 시간이 더 많이 늘어난다. 재주가 많은 아내는 농원에서 야생화도 키우고 서각이나 한지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낸다. 윤 대표는 한 동네에서 유년시절을 같이 보낸 고향 친구들이나 지역 선후배들을 만남을 가져가면서 시간을 활용한다. 아내의 서각과 한지그림 솜씨는 갤러리를 따로 낼 계획을 세울 정도로 수준급이다. 아내는 몇 년 후 자신의 작품을 판매해 모은 금액을 사회에 모두 환원할 계획도 갖고 있다. 윤 대표는 지금 생활이 매우 만족스럽다. 몸에 좋은 블루베리를 재배하면서 건강도 좋아지고 일과도 짜임새가 있어졌다. 또 일정한 수입이 있기 때문에 미래가 덜 불안하다. 청정한 자연을 가진 고향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고운 석양을 바라볼 여유가 있어 행복하다. “사람 인생이라는 게 꼭 블루베리와 같아요. 나무 크고 자라는 걸 보면서 한참 힘들게 농사짓다가 열매가 맺으면 수확하고, 열매가 떨어지면 땀을 닦는 사이 단풍이나 설원으로 또 다른 풍요로움과 여유가 눈앞에 펼쳐지잖아요.”그가 몇 년 전 동네 군인들과 함께 지었다는 정자에 잠시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어느덧 날이 저물기 시작한 모양이다. 자신이 일군 블루베리밭을 바라보는 윤 대표의 얼굴에서 기쁨과 뿌듯함이 배인 미소가 떠오른다. 알이 탱탱하게 잘 여물어 윤기가 도는 블루베리와 같이 그의 미소도 건강하고 밝게 빛났다.이코노믹 리뷰 김은경 기자 kekisa@<ⓒ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