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자네는 술을 잘 못하나?" "예.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많이 먹지는 않습니다. 이해해주십시오." "야, 누구는 종교 없냐? 사내놈이 그렇게 따질 것 다 따져가면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나?" "가족 내력이 있고 아버지가 간 수술을 받으신 적도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됐어됐어. 쟤 누가 불렀어? 술 맛 떨어지게…."술 권하는 한국 사회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접해봤을 법한 풍경이다. 특히 신입이 들어오고 인사이동이 있는 시즌이면 술 때문에 벌어지는 직장 내 사건ㆍ사고는 더욱 잦아지게 마련. 지난달에는 경기도 화성시에서 28세 신입사원이 2차 회식 이후 귀가하다가 닷새 뒤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미 1차 회식에서 취해있었지만 2차에서 또 한차례 양주까지 마신게 화근이었다. 결국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신입사원은 청춘을 펼치지 못한 채 발을 헛디뎌 5m 높이의 공사장 옹벽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사실 이런 문제는 당장 오늘 있을 회식자리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다. 상사에게 찍히지 않으려는 노력파들은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로 저녁 내내 괴로워할테고 비흡연자들은 상사들이 푹푹 내뿜는 담배연기에 간접흡연을 하게 될 터. 그러나 CJ를 다니는 직원들만큼은 이런 폐단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기업과 직장의 문화를 선도해 온 CJ그룹이 3일 금연ㆍ절주ㆍ문화생활 등의 내용을 담은 '문화기업 CJ人라이프스타일'을 발표했다. 문화를 만드는 기업의 직원으로서 필요한 자세를 금연ㆍ절주ㆍ 운동ㆍ겸허ㆍ품격ㆍ글로벌ㆍ트렌드ㆍ문화생활ㆍ리프레시 등 총 9가지 항목으로 구성하고 직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기로 한 것. 회사에서도 직원들이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주기로 했다. 기업이 직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고 지원해주는 일은 이례적이다.CJ그룹이 이처럼 직원들의 생활 방침까지 제안하고 나선 것은 최근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직접 '문화기업'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것과 무관하지 않다. 사업 영역 뿐 아니라 금연ㆍ 절주ㆍ문화생활 등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에서도 문화를 선도해나가는 기업이 되겠다는 것. 이 회장은 "문화를 만들어가는 CJ그룹 직원들이 먼저 이에 맞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슬로건만 '문화기업'을 외치지 말고 직원들이 먼저 문화기업에 맞는 회사 생활 자세를 갖추도록 하자"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덧붙여 "문화기업에 걸맞은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해 나갈 때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상품과 서비스 역시 질적 향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CJ그룹은 올 하반기부터 남산 CJ그룹 본사 및 CJ인재원, 식품 계열사가 입주해 있는 CJ제일제당센터ㆍCJ푸드빌ㆍCJ프레시웨이 등 각 매장을 금연빌딩으로 지정하고 사옥 반경 1km 이내에서도 직원들이 담배를 피울 수 없도록 했다. 또 사내 식당에서는 직원들에게 금연 식단을 제공하고, 금연 상담 서비스와 금연보조제를 지원하는 한편 금연침 시술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루에 8시간 이상 직장생활을 한다고 할 때 흡연자들은 억지로라도 금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애주가들에게도 불똥이 떨어졌다. 이 회장은 "평소 1~3차로 이어지는 음주 회식은 지양하고 대신 영화ㆍ공연 등 문화 콘텐츠를 감상하는 문화 회식을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1차 소맥(소주+맥주), 2차 양맥(양주+맥주), 3차 노래방 등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회식 자화상을 바꿔보겠다는 셈이다. 이를 위해 '술 없는 회식' 사례를 선정하는 사내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금연ㆍ절주 제도 외에도 '봐야지(Voyage)'제도가 마련된다. 이 제도는 근무 성적이 우수한 직원을 한 달에 100명씩 선발해 뮤지컬ㆍ영화ㆍ공연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 관람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룹의 주요사업인 문화 콘텐츠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트렌디한 문화감각과 인문학적 소양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당장 이번 달에는 세계적인 록그룹 '라디오헤드'가 참가하는 지산록페스티발을, 11월에는 해외에서 공연되는 아시안 뮤직 어워드 MAMA 관람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해외 공연의 경우 항공ㆍ숙박권을 포함해 1인당 250만원 상당의 체류비가 들지만 직원들의 소양 향상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이게 끝이 아니다. 이 회장은 '제도' 시행에 그치지 않고 직원들의 '겸허ㆍ품격'이라는 덕목까지 제시하고 나섰다. '겸허'라는 말은 이 회장이 평소 가장 좋아하는 생활 신조로 꼽힌다. 직원들과 함께 할 자리가 생길 때마다 "항상 부족하다는 자세로 끊임없이 학습하고, 더 높은 목표를 세우려는 도전정신을 가져라"라고 주문할 정도. CJ그룹은 이 회장의 이같은 강력한 의지로 시행되는 '문화기업 CJ人라이프스타일'을 통해 선진적인 기업 문화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CJ그룹 관계자는 "CJ그룹은 2000년 국내 최초로 수평적 호칭 제도인 '님 호칭'을 선도적으로 도입해 타 기업들이 벤치마킹하는가하면 업무 효율성을 위한 '비즈니스 캐주얼' 도입으로 젊고 합리적인 기업 문화를 만들어왔다"며 "이번 '문화기업 CJ人라이프스타일'은 내년 1월1일부터 대한통운, GLS, CJ오쇼핑 등 전 그룹사로 확대 시행할 예정이라 향후 타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오주연 기자 moon17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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