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요금 다내고 탄 내가 바보? 기막혀'

휴일엔 더 극성, 'KTX 꼼수' 뭐길래…

티켓 없이 탄 뒤 '너무 바빠서' 발뺌PDA 단말기 검표시스템 교묘히 피해가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직장인 A(27)는 최근 한 술자리에서 조금 당황스런 얘기를 들었다. 대학생인 후배 B(24)가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며 KTX 무임승차에 성공한 얘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놨기 때문. B는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왕복 10만원에 가까운 돈을 아끼는 게 어디냐. 좀 위험하긴 해도 그 돈으로 딴 것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노하우까지 늘어놓는 B를 보며 A는 순간 어리둥절해졌다.KTX의 현재 운임은 서울-동대구역 구간이 편도 4만2500원(일반석 기준), 서울-부산 구간은 편도 5만7300원이다. 왕복으로 치면 10만원 안팎. 버스나 지하철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운임 탓인지 지능적 '꼼수'를 부리는 얌체족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PDA단말기를 손에 든 채 검표를 진행하는 여승무원을 교묘히 피해가는 법에 통달한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담을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버젓이 공유하기도 한다.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KTX 무임승차하면 벌금 낸다고? 난 한 번도 낸 적 없는데'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글쓴이는 "무임승차 10번 넘게 하고 걸릴 때마다 표 가격대로만 냈다. 과태료 10배는 무슨, 멍청한 사람들이나 들키자마자 그 자리에서 무임승차했다고 이실직고하겠지"라고 전해 카페 회원들의 빈축을 샀다.또 다른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 올라온 'KTX 승차' 관련글에는 무임승차시 벌금을 물거나 적발시 대처요령 등에 대한 이야기가 카페 회원들 간에 오고 갔다. 한 회원이 티켓이 매진돼 무임승차한 경우를 언급하며 "제가 KTX 자주 타는데 표 없고 정말 급할 땐 무임승차한 뒤 벌금 물면 되요"라고 말하자, 다른 회원 또한 "(걸릴 경우) 바빠서 어쩔 수 없었는데 입석표 끊어달라거나 현금 준다고 하면 된다"고 요령을 덧붙이기도 했다.
주부들이 많이 가입한 한 유명 포털 카페에도 'KTX 무임승차 후 입석으로 가기, 해보신 분들 계세요?'라는 제목으로 질문이 올라 왔다. 이 글의 게시자는 "그냥 무임승차했어요. 주변에 말했더니 무임승차 후 역무원 지나갈 때 입석티켓 끊어달라고 하면 된다고 그래서요. 괜찮겠죠?"라고 물었다. 그러자 "얼마 전에 어떤 여학생이 무임승차로 몇배로 벌금 물던데요. 어떤 승무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기차 타고 표 끊으면 50%가 가산된다고 하더라구요" 등의 댓글이 달렸다.규정에 따르면 KTX에 무임승차할 경우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승차자가 탄 구간의 최대거리의 10배를 벌금으로 물린다. 특히 승차지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서울-부산 구간을 적용, 약 50만원의 부가금을 청구한다. 하지만 이 같은 원칙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다르다. 검표승무원이 재량껏 벌금을 물릴 수 있다 보니 실제 10배 벌금을 무는 경우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이에 대해 코레일 측은 "고객이 개인적인 사정을 말하며 '선처를 해달라'고 읍소형으로 나오면 형편을 고려해 정석대로 징수를 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면서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라도 통상적인 수준에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앞서 언급된 게임 커뮤니티의 또 다른 회원의 말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 네티즌(아이디 Pin**)은 "최대가 기존 운임 10배고 실제로 그렇게 받는 줄 아나. 주말에 내려갈 때 보니까 어떤 아저씨, 무임승차 했는데 표 없어서 급한 김에 탔는데 입석 좀 해달라고 하니까 그냥 해주던데요"라고 전했다.
실제로 'KTX 꼼수족' 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말은 "급해서 탔다"이다. 서울역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한 철도경찰 관계자는 "무임승차 적발시 대부분 '표가 없어서', '너무 급해서' 등의 이유를 댄다"면서 "돈이 없거나 돈을 아끼려는 목적으로 그럴싸한 이유를 둘러내는 얌체족들은 사실상 걸러내기 불가능하다"고 말했다.대학생 B의 증언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자취를 하고 있는 B는 "학생 신분에 KTX 요금이 솔직히 부담된다"면서 "한 번 무임승차에 성공해 보니 두 번 세 번의 유혹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고 고백했다. 운만 좋으면 아낄 수 있는 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B는 탑승시 검표 승무원의 동선 파악, 화장실에 숨는 법, 매진율이 높은 휴일을 이용하는 것 등 노하우를 꼽으며 "좀 불안하긴 해도 돈을 아끼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고 증언했다.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작 제돈을 다 내고 KTX를 타는 고객들의 불만도 적지 않다. 서울역에서 만난 정모(30)씨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지조차 몰랐다"면서 "제대로 돈을 다 내는 게 억울할 것 까지는 없지만 정말 급박한 사정이 아니라면 무임승차는 좀 지양해야 하지 않나"고 피력했다. 나모(33)씨는 "돈을 낸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40대인 김모씨는 "솔직히 KTX 요금은 직장인인 우리도 조금은 부담이 된다"며 "오죽 했으면 그렇게까지 하겠나 싶어 측은한 생각도 든다"고 전했다. 장인서 기자 en1302@<ⓒ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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