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만해 한용운의 '해당화'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워합니다.//철모르는 아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들은 체 하였더니,/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그려./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이고, "너는 언제 피었니"하고 물었습니다./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 백살이 가까웠던 할머니가, 백발 며느리에게 미안하여 하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올 모란이 지기까진 가만히 꽃지듯 눈감을 거여." 그해 모란이 피고 봄바람은 모란을 흔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성한 몸을 애써 뉘고 창밖의 꽃을 바라보며 서러워 눈물지었습니다. 며느리는 부엌 죽담에 숨어앉아 모란꽃 바람에 가슴을 쓸며 울었습니다. 그해 모란은 정말 몰래 졌고 할머니는 봄을 넘기셨습니다. 이듬해 모란꽃 다시 이울 때, 어머니는 돌아간 할머니의 그 말씀 떠올리며 다시 울었습니다.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만, 눈물 어룽거린 눈에 꽃은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피는 꽃 지는 꽃이 어디 꽃이기만 하겠습니까.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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