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보이스 피싱의 나쁜 진화

잘 아는 분이 보이스 피싱에 넘어가 수천만원을 날렸다는 소리를 듣고는 '아니, 요즘도 여기에 걸리는 바보 같은 사람이 있나?' 어이없어 했다. 그러나 비웃음은 바로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왔다. 바로 얼마 후에 보이스 피싱에 '낚일 뻔'한 일을 겪게 된 것이다. 등장인물이 적어도 5명, '범죄 드라마'를 연출할 만큼 보이스 피싱이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우선 오후 1시쯤 전화가 걸려온다. 모 은행 '나○○ 대리'라고 신분을 밝힌 이 여성은(은행 여직원이라니까 심리적으로 경계를 안 한다.) "지금 당신의 통장과 주민등록증을 가진 남자분이 대신 돈을 찾으러 오셨는데 아무래도 좀 이상해서 전화를 드립니다. 혹시 이 주민번호가 맞습니까?" 하고 묻는다. 듣고 보니 바로 자신의 주민번호다. 그 은행과 거래 안 한다고 하면 "가짜 주민등록증으로 대포통장을 만드는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니 일단 가까운 경찰서에 연락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직후에 '박 모 형사'라는 사람에게서 연락이 온다. "조회를 해 보니 최근 지방 모 은행에서 60여개의 대포통장으로 불법자금 거래를 하다 잡힌 일당이 있는데, 그 60여개 대포통장 속에 귀하의 통장이 또 있다. 이 사건은 내 담당이 아니고 다른 경찰서 김 모 형사과장 소관이다. 이 분이 전화를 할 테니 통화해 봐라." 그 전화를 끊자마자 김 모 형사과장이라는 다른 사람에게서 또 전화가 온다.  결론은 "당신이 이 사건의 '피해자'가 아니라 '피의자' 신분이라는 것, 또 현재 검찰 소환장이 발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황당한 가운데 다음으로 여비서를 통해 황 모 검사라는 사람과 통화가 이뤄지는데 검사는 자기는 바쁘니 해명할 이야기가 있으면 그냥 △△지방 검찰청에 출두를 하라면서 전화를 끊어버린다. 어이없어 할 즈음 김 모 형사과장이 또 전화가 온다. 조회를 해 보니 귀하가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분이어서 그런 일의 '피의자'일 리는 없으니(그러면서 경력과 이력을 쭉 이야기한다. 소름끼치도록 정확한 내용이다.) '피의자' 신분이 아니라 '피해자' 신분으로 따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검사에게 잘 말씀을 드리겠단다. 이 부분에서 그 유명한 'good cop, bad cop' 역할 분담이 이뤄지는 것이다. '거만하고 고압적인 검사'(그는 법률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공포감을 주는 역할이다)와 선의의 피해자를 도와주는 '선량한 형사'의 역할 분담이다.  이 과정에서 검거된 범인들과 돈을 주고받은 흔적이 있는지 여부를 수사하기 위해 내 은행계좌를 '동결'(절대 계좌이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은행 문이 닫히기 전 은행으로 가도록 유도한다(이 시점이 3시30분 정도, 은행 문이 닫히기 직전이다). 검찰이 계좌를 추적할 수는 있지만 '동결'하지는 않는다 것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면 시간에 쫓겨 속을 수도 있는 교묘한 상황 조작과 심리적 압박, 여러 인물이 숨 쉴 틈 없이 등장하는 것이다.  가장 황당한 사실은 이들이 개인의 전화와 주소, 주민번호, 경력, 이력 등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 정보가 이처럼 범죄집단에 노출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지지 않는가. 그렇게 노출된 정보가 온갖 형태의 보이스 피싱이나 금융사기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입법예고된 금융소비자보호기구의 신설과 인사, 감독권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인사나 감독권을 누가 가질 것인지보다는 이처럼 교묘한 금융사기 피해사건을 어떻게 예방하고 구제를 해 줄지 더 알고 싶다. 진화하는 금융사기꾼들은 이 시간에도 어둠 속에서 소비자들을 지켜보면서 영화 제목처럼 이렇게 비웃고 있을 것이다. "Catch me if you can(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홍은주 한양사이버대 시니어비즈니스학 교수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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