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암 한옥민박 월인당(月印堂)에서 맛보는 구들장의 추억
[아시아경제 조용준 기자]곧 입동(入冬)이다. 찬바람에 어깨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계절이 다가왔다. 아직 처마 밑에 얼음을 주렁주렁 매달 정도의 추위는 한참 남았지만 입동을 지나면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의 기세는 만만치 않다.이럴때 아궁이에 군불을 때는 한옥에서 나무 타는 내음을 맡으며 뜨끈뜨끈한 구들장에 몸을 뉘어보자. 설설 끓는 아랫목에서 사각거리는 솜이불을 덮고 마음껏 '지지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가뿐하다. 구들장이 있는 한옥에서의 하룻밤의 호사를 위해 떠난 곳은 전남 영암땅이다. 너른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월출산과 은적산 사이에 비밀처럼 숨어있는 아름다운 한옥이 있다. 월인당(月印堂). 한국인의 DNA에 새겨진 '구들장의 추억'을 되살려 주는 소박한 한옥민박이다. 내력 있는 종택도, 유서 깊은 고택도 아니건만 주말마다 예약이 밀려드는 까닭은 황토 구들방에 등 지지는 그 맛이 각별해서다.
월인당은 황토로 빚은 굴뚝을 높이 세웠다. 아궁이에는 잘 마른 소나무 장작이 타면서 내는 불꽃이 화려한 춤사위를 펼치고 뜨끈뜨끈한 방에 들면 구수한 소나무 장작 냄새가 은은하게 코끝을 자극하는 그런 곳이다.모정마을 토박이인 김창오 씨가 월인당을 지은 것은 5년 전이다. 구례 사성암을 지은 김경학 대목과 강진 만덕산 기슭의 다산초당을 지었던 이춘흠 도편수가 1년 3개월간 함께 공을 들였다. 규모는 단출하다. 방 세 칸에 두 칸짜리 대청, 누마루와 툇마루가 전부다. 담장은 대나무 울타리로 대신하고, 넓은 안마당엔 잔디를 깔았다. 방 세 칸은 모두 구들을 넣고 황토를 깐 위에 한지장판을 바른 '장작 때는' 방이다. 바닥은 뜨끈하고 위는 서늘하니 자연스럽게 공기가 순환하는 구조다. 한옥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구들방을 만들었지만, 덕분에 손님맞이 하루 전부터 아궁이에 불을 때야 하는 번거로움과 수고가 따른다.
잘 마른 소나무 장작 두어 개를 아궁이에 던져 넣자 금세 불이 옮겨 붙더니 장작 타는 정겨운 냄새가 좁은 뒷마당을 가득 채운다. 황토 굴뚝에선 구수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불을 깔아둔 아랫목에 손을 넣는 순간 '앗 뜨거'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바깥주인의 '장작 때는' 수고보다 한수 위는 안주인의 '풀 먹이기' 정성이다. 한번 사용한 이불은 세탁 후 일일이 풀을 먹여 내놓는다. 손님 입장에선 절절 끓는 방에서 사각거리는 솜이불을 덮고 자는 호사가 고마울 따름이다. 월인당 세 개의 방은 저마다 특징이 있다. 마을 앞 너른 들과 월출산이 가장 잘 보이는 '들녘' 방은 측면 툇마루를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다. 월인당 현판이 걸린 정중앙 '초승달' 방에서는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 끝 '산노을' 방은 누마루와 바로 연결되는 구조라 가장 인기가 많다. 방마다 욕실과 싱크대, 냉장고를 갖춰 먹고 자고 씻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월인당은 아랫목이 끓는 것도 좋지만 그 집에서 더 감격적인것은 달빛이다. 창호문을 열고 나와 누마루에 앉으면 동쪽으로 월출산이 우뚝하다. 월출산 위로 보름달이 뜨면 앞마당에 이름처럼 달이 도장을 박은 듯 환하다. 이런 날에 풍류가 저절로 생겨난다. 누마루에 걸터 앉거나 방 안에서 창호문 한짝을 열고 소박한 상 위에 술잔, 혹은 찻잔 하나만 얹어놓으면 더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집주인이 꼽는 최고의 달빛 풍경은 월인당이 아니라 마을 끝에 있는 원풍정(願豊亭)에서 바라보는 장면이다. 월출산 위로 둥실 솟아오른 달이 저수지에 교교한 빛을 풀어놓는 장면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는 것. 원풍정 기둥에는 이른바 '원풍정 12경'을 적은 12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지남들녘에 내리는 밤비(指南夜雨), 구림마을의 아침밥 짓는 연기(鳩林朝烟), 도갑사에서 들려오는 석양의 종소리(岬寺暮鍾) 등 '원풍정에서 내다보이는 12경'은 마을 벽에 시와 그림으로도 풀어 놓았다. 월인당에 묵는다면 꼭 마을 산책을 해보아야 하는 이유다. 현재 모정마을은 민박을 겸한 한옥을 짓는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달말이면 15채의 새로운 한옥이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라고 한다. 글ㆍ사진 조용준 기자 jun21@asiae.co.kr◇여행메모 △가는길=호남고속도로 광주방면이 거리상으로는 짧지만 서해안고속도로가 훨씬 길이 간단하다. 목포IC로 나와 영암 쪽으로 2번 국도를 타고 직진하면 된다. 목포 IC에서 영암까지 40분쯤 소요된다. △숙박=월인당은 미리 아궁이에 불을 때야 하기에 숙박예약을 여유있게 하는게 좋다. 요금은 누마루가 있는 산노을방 1만 나머지 방은 12만원. 동계, 하계 성수기는 1만원씩 추가 (061-471-7675. 010-6688-7916). △볼거리=구림마을을 빼놓을 수 없다. 월출산 자락 아래 들어선 마을은 왕인박사와 도선국사의 전설이 서려 있다. 또 덕진 차밭은 월출산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구름다리가 있는 월출산 산행도 추천할 만 하다.
△먹거리=낙지연포탕과 갈낙탕, 짱뚱어탕이 대표 먹거리다. 연포란 이름은 낙지를 끓이면 마치 연꽃처럼 다리를 펼친다고 해서 붙었다. 독천 일대의 개펄에서 잡힌 낙지로 끓여내는데 국물맛이 시원하다. 중원회관(061-473-6700), 청하식당(061-473-6993), 독천식당(061-472-4222)등이 유명하다.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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