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몸도 회복되지 않고, 마음도 정리되지 않은 듯했다. SBS <여인의 향기>를 끝내자마자 영화 <투혼> 홍보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김선아에게서 여전히 이연재의 향기가 느껴졌다. “지금 제 머릿속에는 <여인의 향기>의 연재와 <투혼>의 유란, 두 여자가 왔다갔다 하고 있어요. 아직 연재를 떠나보내지도 못했는데 다른 작품 얘기를 해야 되니까 그게 좀 가혹한 거죠. 하지만 어떻게 보면 덜 공허한 것 같아서 인간 김선아에게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만약 집에 가만히 있었으면 오히려 더 힘들었을 거예요.” 한 작품을 끝내면 그 캐릭터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김선아에게 올해는 유난히 가혹한 시간이었다. 올 1월에 <투혼> 촬영을 시작하면서 말기암 판정을 받은 아내 연기를 했고, 곧바로 <여인의 향기>로 옮겨와 이연재로 시한부 인생을 살았다. 물론 그 사이에 한 달 반이라는 공백기가 있었지만 ‘탱고 연습하고, 연재 캐릭터 만들고, 옷이랑 헤어 준비하느라 정신없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가혹한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연재와 유란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사는 인물이다. 한 달 간격으로 두 작품을 만나게 되는 관객 입장에서는 ‘김선아가 또?’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 한동안 ‘삼순이’라는 꼬리표에 갇혀 본 김선아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한다. “저는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에 삼순이와 분명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조금이라도 비슷한 점이 있으면 다 삼순이 같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한 1~2년 정도는 ‘다들 왜 자꾸 그러시는 거지? 그러면 다음엔 어떤 작품을 해야 되지?’라는 고민을 하고 살았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기로 했어요. 사실 <투혼>의 유란과 <여인의 향기>의 연재도 시한부라는 설정만 빼고는 다 달라서 확신이 있었거든요. 지금까지 제가 했던 캐릭터와도 확고하게 다르고요.”언젠가부터 김선아는 여자의 이야기, 특히 지극히 평범한 여자가 혼자 힘으로 일과 사랑을 모두 쟁취하는 성장드라마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뚱뚱한 노처녀가 파티쉐의 꿈을 이뤘고(<내 이름은 김삼순>), 10급 공무원이 시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다(<시티홀>). <여인의 향기>에서 암환자 연기를 위해 과도한 다이어트를 감행했던 것처럼 본인을 괴롭히면서까지 작품에 몰입하는 습관은 그 때부터 생겼다. “영화 < S 다이어리 >를 찍으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혼자 속앓이를 하거나 무언가를 성취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있는, 마냥 밝고 코믹한 캐릭터였거든요. 그러다가 여자의 성장을 다루는 작품에 출연하면서부터 달라졌어요. 그 캐릭터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막 눈물이 나고, 작품을 끝내면 사람 김선아도 조금은 성장을 한 것 같더라고요.”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가사보다 멜로디가 좋은 음악을 듣게 된다’는 김선아는 몇 년 째 듣는 노래인데도 들을 때마다 먹먹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절로 감성이 풍부해지는 가을, 김선아가 추천하는 ‘가을에 듣기 좋은 마음을 적시는 노래들’과 함께하는 건 어떨지.<hr/>
1. Ennio Morricone의 < Cinema Paradiso >“항상 제 벨소리로 해놓고 다니는 음악이에요. 영화 <시네마 천국>은 한창 감수성이 풍부할 때 봐도, 그렇지 않을 때 봐도 감동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잖아요. 특히 마지막 장면은 여자들의 로망 아니겠어요? 그래서 지금 영화 OST를 들어도 항상 가슴이 먹먹해져요. 영화에서 온 감동이 워낙 컸으니까. 이 선율이 주는 느낌이, 막 미어터져요. (웃음)”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 음악은 좋은 영화를 더 좋게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힘을 갖고 있다. 김선아가 추천한 메인 테마곡인 ‘Cinema Paradiso’도 좋지만, 엔딩곡으로 흘러나오는 ‘Love Theme’도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곡이라 할 수 있다. 낡은 영화관의 영사실 기사로 일하던 알프레도가 건넨 필름 속에 담긴 수많은 키스신들, 그 필름을 보며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는 토토의 먹먹한 표정은 한 번 보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다.
2. Britney Spears의 < In the Zone >“전 주로 발라드를 듣는 편이긴 한데, 사실 제 플레이어를 보면 그 안에 록, 힙합, R&B 가리지 않고 다 들어 있어요. 딱히 취향이 없거든요. 어느 날 록에 미쳐서 막 듣다가 갑자기 힙합에 완전 꽂힐 때도 있고, 그러다가 한 번은 탱고에 꽂힌 적도 있고. 다중적인 것 같아요. 좋으면 그냥 듣는 편이에요. ‘Everytime’도 몇 년째 듣고 있는 노래인데, 이 곡 또한 선율이 정말 좋아요. 브리트니 스피어스 목소리가 정말 간드러지지 않나요?” ‘Oops!... I Did It Again’이나 ‘Toxic’ 같은 곡을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대표적인 스타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Everytime’은 조금 낯선 느낌을 주는 곡일지도 모르겠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대표적인 발라드곡이라 할 수 있는 ‘Everytime’은 그가 직접 작곡한 곡으로, 브리트니 스피어스 특유의 여린 보컬이 돋보이는 노래다.
3. 보아(BoA)의 < Girls On Top >“거의 무반주에 보아의 목소리로 채워진 곡인데, 이거 듣고 뻑 갔어요. (웃음) 처음엔 보아 노래인 줄 모르고 듣다가 ‘누구 노래야?’라고 물어봤는데 보아 노래라는 거에요. 보통 보아를 댄스가수로 알고 있는데 이게 편견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 전까지는 가장 좋아하는 보아 노래 1위가 ‘No.1’이었고 2위가 ‘늘..(Wating..)’이었는데 ‘가을편지’를 들으면서 2위가 바뀌었어요. ‘No.1’은 여전히 부동의 1위죠. 보아랑 문자를 주고받을 때도 항상 ‘넘버원 보아’라고 쓰거든요. 그만큼 노력을 참 많이 하는 친구에요. 그리고 제가 손편지 쓰는 걸 참 좋아해서 더 이 노래에 끌리는 것 같아요. 최근 <여인의 향기>에서 같이 일했던 몇몇 분께도 액자에 손편지를 끼워서 드렸어요. 엄마 역으로 출연하셨던 김혜옥 선생님께도. 모든 분께 드리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너무 없더라고요.”
4. 김준수의 <여인의 향기 OST>김선아의 네 번째 추천 곡은 <여인의 향기>의 메인 테마곡 ‘You Are So Beautiful’이다. “처음에 <여인의 향기> OST를 누가 부를까 얘기가 나왔을 때, 제 동생이 준수 씨를 추천했어요. 준수 씨 목소리가 우리 드라마의 절절한 분위기와 잘 어울릴 것 같다면서. 그래서 제가 제작사에 김준수! 김준수! 이렇게 슬쩍 추천했는데, 정말 준수 씨가 OST를 부르더라고요. (웃음) 진짜 제 의견이 반영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깜짝 놀랐어요. 동생이 자기 촉은 정말 좋은 것 같다고. 하하. 드라마 촬영하면서 준수 씨의 라이브를 직접 들어봤는데 역시 가수는 노래할 때 최고로 멋있다는 걸 또 한 번 뼈저리게 느꼈어요. 와, 가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노래 들으면서 소름끼치고, 가사 보고 또 한 번 소름끼치고.” <여인의 향기>에 깜짝 출연하기도 했던 김준수의 미성은 극 중 이연재의 시한부 인생, 강지욱(이동욱)과의 애절한 사랑을 표현하기에 안성맞춤 목소리다.
5. Richard Marx의 < Ballads (Then Now and Forever) >김선아는 유독 몰입을 잘하는 편이다. “올해 처음으로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을 편하게 볼 수 있게 됐어요. 영화 < S 다이어리 > 주제곡을 들으면 지금도 막 뭉클해져요. 갑자기 그 캐릭터에 동화되기도 하고. 그만큼 몰입해서 찍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배우들은 3개월 확 들어갔다가 확 나오는 직업이잖아요. 그 때 당시엔 그것만 보고 그것에만 집중하죠.” 그래서 작품을 하는 동안에는 ‘집중력 떨어질까봐’ 음악도 일체 듣지 않으며, 작품을 끝내고 쉬는 동안 음악을 들으면 그것에 또 흠뻑 빠진다. ‘Right Here Waiting’도 누가 저한테 직접 불러준 것도 아닌데 이 노래만 들으면 그 선율 때문에 마음이 막 흔들려요. 몇 번을 들어도 들을 때마다 매번 그러더라고요.“<hr/>
“<투혼> VIP 시사회 때 <여인의 향기>에서 제 엄마 역할로 나오신 김혜옥 선생님께서 점퍼를 선물로 보내주셨어요. 극 중에서 강지욱이 저희 모녀에게 사준 그 점퍼가 저한테 잘 어울린다면서요. 이렇게 호흡이 잘 맞고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어우, 또 막 울컥하는 거에요. 감사하다고 전화를 드리려고 했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못 드렸어요. 얼마 전에는 머지않아 저희 둘이서 모녀를 주제로 한 영화를 찍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했어요.” 강지욱-이연재의 사랑만큼이나 가슴 아팠던 김순정-이연재 모녀의 뜨거운 포옹. 그 두 사람이 만들어 낼 ‘제대로 된’ 모녀영화는 어떤 모습일까. 비록 그동안 수없이 등장했던 소재지만 “시청률이나 관객수보다 제 가슴 속에 뭔가 남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김선아라면 얘기는 또 달라지지 않을까.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10 아시아 글. 이가온 thirteen@10 아시아 사진. 이진혁 elev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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