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명품'에 대한 한국인들의 광적인 집착은 어디까지일까?작은 핸드백이 월급쟁이 한 달 월급(200여만 원)을 초과하고, 가방 하나가 중고차 값(500여만 원)을 호가한다. 비슷한 품질의 가방을 몇 십 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지만, 한국인들은 너도 나도 명품에 열광한다. 서민층의 어머니들이 며느리가 시집올 때 해 주겠다며 계를 들어 명품 가방을 마련해 놓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됐을 정도다. 과연 이같은 명품 집착 현상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명품 브랜드들이 차원이 다른 서비스와 품질을 제공하며, 소비자로써 이를 즐기겠다는 것이 무슨 문제냐는 주장도 많다. 자신들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에 빠지고 싶어 하는 일부 부유층들의 수요를 위해 존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실제 모습이 어떻든지 상관없이 명품만 들고 다니면 남들이 좋게 봐 줄 것이라는 허례허식(虛禮虛飾)이 한국인들의 정신세계를 온통 지배하고 있다는 대표적 사례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경쟁만 강조하는 사회의 냉혹함에 내몰린 사람들이 정신적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맹목적으로 '명품'을 구입하면서 심리적인 도피처를 찾고 있는 것이라는 구조적인 분석도 있다.최근 들어선 명품 브랜드들의 서비스와 품질에 문제를 제기하는 지적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9월29일 열린 인천공항공사 국정감사에서는 세계적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인천공항 입점 과정에서 제기된 특혜 논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요지는 인천공항공사가 임대료를 타 매장에 비해 파격 할인 해주고 지도·감독권까지 포기하는 등 저자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명품에 대한 한국인들의 광적인 집착이 이제 국가적인 차원으로 번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선 인천공항공사는 루이비통 면세점에 대해서만 파격적으로 임대료를 낮게 책정해 줬다. 다른 매장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했다. 인천공항공사는 루이비통 면세점 운영권을 따낸 호텔신라 측과 변경계약서를 체결하면서 임대료를 매출액의 6.95~7.56%까지 내도록 해줬다. 하지만 인천공항의 다른 매점들은 매출액의 18~20%를 내야 한다. 다른 업체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인천공항은 임대료가 비싸기로 소문난 곳이다. 그렇지만 다들 국제공항이라는 특수성과 회사 이미지 등을 고려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눈물을 머금고 인천공항에 입점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애를 태운다. 루이비통에 대한 파격적인 임대료 세일은 그만큼 이례적인 것이었다. 루이비통이 입주하는 과정에서도 인천공항공사가 루이비통에 질질 끌려다닌 모습이 역력하다. 인천공항공사는 면세점 공사가 장기화돼 승객들의 불편 및 공항 운영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판단에 따라 공문을 보내 공기 단축을 요구했다. 다른 입점 업체들의 경우 공기 단축 시늉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호텔 신라 측은 '루이비통과 협의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내놨다. 인천공항공사는 머쓱해진 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공사는 6개월 가까이 진행됐고, 이용객들은 불편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인천공항공사는 또 호텔 신라 측에 6월28일까지 기본시설(방화구획) 서류를 제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두 달 가까이 지난 8월16일에야 서류를 받았다. 운영 개시일도 공문으로 문의해 호텔 신라가 알려주기 전까지는 알지 못하는 '굴욕'을 당했다. 뿐만 아니라 매장이 지난 9월10일 문을 열었지만 호텔 신라 측은 지난 9월6일 준공서류 제출시 주요 관련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 9월28일 현재까지도 일부 공사 진행 중을 이유로 공사 사진첩과 공사비 내역서를 안 냈다. 이밖에 루이비통 매장이 들어서면서 근처에 입점했던 면세점 인도장이 4층으로 임시 이전하는 바람에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매장 인근의 서점ㆍ식음료 매장도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됐다.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것이다. 인천공항공사가 이같은 특혜를 주고 '굴욕'을 감수한 명분은 루이비통을 선호하는 중국인ㆍ일본인 관광객 유치에 따른 부가가치 창출 등이었다. 인천공항공사의 주장대로 루이비통의 입점이 인천공항의 이미지를 높이고 임대료 등 부가 수입을 가져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인천공항공사는 국가가 운영하는 공기업이며, 인천공항은 부유층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낸 세금으로 건설하고 운영하는 대한민국의 관문이자 자존심이다. 대한민국엔 수백만 원대 명품은 커녕 5만원 짜리 비닐가죽 가방에도 손을 벌벌 떠는 서민들이 훨씬 더 많다. 인천공항공사가 루이비통 입점 과정에서 보여 준 '굴욕'은 명품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광적인 집착에 이제는 국가기관까지 합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연간 3000억 원 대의 영업이익을 내는 인천공항이다. 더 수익 올리겠다는 욕심보다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김봉수 기자 bski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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