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86년 [강변가요제] 유미리 씨 대상 수상 당시 취객의 난입을 저지하셨던 장면, 저 역시 생생히 기억해요.
방송 첫날, 조쉬 하트넷을 닮은 프랑스인 참가자의 춤과 비트 박스에 박정현 씨와 함께 즐거워하며 부디 노래도 잘해달라고 부탁하는 순간 자상함을 느꼈고요. 기대 이하의 노래 실력을 보이자 “재능이 많으니 호흡하는 법이나 소리를 내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으면 좋겠다”는 피가 되고 살이 될 조언을 하며 단호히 ‘Sorry’를 누르는 순간 결단력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무리 서툰 노래라 해도 진지하게 들어주고 최선을 다해 돕고자 하는 진정성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더구나 오디션 전반에 걸쳐 흐름을 주도하는 모습이 놀라웠는데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요. 제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예요. 이선희 씨가 과거 꽤 많은 프로그램의 진행을 도맡았었다는 사실을 말이죠.올해로 가수 생활 27년차인 이선희 씨. 1984년 여름, MBC <강변 가요제>에서 ‘J에게’로 대상을 수상하면서 하루아침 스타로 떠오르셨을 즈음 저는 첫 아이를 낳고 조리 중이었어요. 냉방시설도 변변치 않던 시절, 흡입력 있는 가사와 소탈한 외모의 이선희 씨는 청량제처럼 신선하게 대중에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바깥출입 못하는 산모이다 보니 TV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잦을 수밖에 없었는데, <강변 가요제>가 끝난 다음날부터 TV만 켜면 어디에서든 이선희 씨를 볼 수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음악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각종 프로그램 MC로 바로 기용되면서 그 활약이 대단했었죠. 당시 이선희 씨가 불과 이십대 초반이었으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타 탄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번 <놀러와>에 출연 때 홍경민 씨가 얘기했던 86년 <강변가요제> 유미리 씨 대상 수상 당시 취객의 난입을 저지하셨던 장면, 저 역시 생생히 기억하는데요. 요즘도 나이 어린 연예인들이 생방송 음악 순위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긴 하지만 그와는 차원이 다른 당찬 진행이었습니다.<H3>유난히 기억에 남는 심사평이 참 많네요</H3>이선희 씨의 심사평, 천하의 이승기를 키워낸 저력이 있으시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br />
그 어린 묘목이 거친 풍파를 견디고 잘 자라 이제 드넓은 그늘을 드리우기 시작한 셈이니 출발과 성장을 지켜봤던 저로서는 감개무량일 밖에요. 심사위원으로서, 멘토로서의 이선희 씨는 편안한 그늘의 느낌입니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는 긴장을 덜 수 있도록 도닥여주는가 하면 칭찬과 조언이 적절히 섞인 심사평으로 오디션 심사의 새장을 열었다고 봐요. 벌써부터 기억에 남는 심사평이 참 많은데요. “보통은 고음으로 올라갈 때 파워를 싣는데 배수정 씨의 경우는 오히려 고음에서 힘을 빼는 창법이다”라며 칭찬했던 유럽 오디션 때의 심사평, 그리고 속사포 랩과 개그 코드로 웃음을 준 듀오 ‘50kg’에게는 “독특함이 분명히 있다. 랩하는 찬영 씨가 화음까지 넣는 걸 보고 반전이라고 생각했다. 음이 살짝 안 맞아도 다음이 기대된다”며 왕관을 선사했던 게 생각나요. 재도전한 최환준 군에게 “지금 이 순간 진심과 절실함이 느껴진다”며 준 희망의 왕관도 잊히지 않고요. 그런가하면 ‘인연’을 부른 조재우 군에게는 트로트에 도전해볼 것을 권하셨는데 오디션 장을 나서며 조재우 군이 구성지게 부른 ‘무조건’을 듣는 순간 이선희 씨의 판단이 정확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 당돌한 매력을 발산한 15세의 강지안 양에게 해준 “자랑하듯 부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도 빼놓을 수 없는 조언이죠. 하기야 천하의 이승기를 키워낸 저력이 있으시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내가 하고 싶은 음악들과 내 안의 또 다른 강점들을 가르쳐줄 수 있는 멘티들을 뽑겠다. 나를 놀라게 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는 출사표대로 또 다른 이승기를 조만간 찾아내시리라 믿습니다. 다음번에는 웃음기를 거두고 카리스마를 보여주신다고 하네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