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은 SK 구단의 도움으로 은퇴 뒤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코치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이 같은 혜택을 누리는 은퇴선수는 소수에 불과하다.[사진=SK와이번스]
국회 국정감사가 한창인 가운데 글쓴이의 관심은 체육 분야를 다루는 문화관광방송통신위원회 관련 소식에 쏠려있다. 지난 19일 문화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한선교 의원(한나라당)이 낸 자료를 보고 은퇴 선수들의 진로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의원은 대한체육회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가 대표 출신 은퇴선수 3,269명 가운데 35.4%가 전국 평균 국민건강보험료보다 낮은 금액을 내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건강보험료 납입액은 월 소득이나 재산을 기준으로 산출하기 때문에 개인의 소득 수준을 추정하는 수단으로 활용이 가능하다.직장에 다니는 은퇴 선수는 절반에 가까운 48%가 건강보험료 납입액이 전국 평균치에 미치지 못했다. 지역 가입자인 은퇴 선수도 평균치에 미달하는 비중이 34.8%에 이르렀다. 2011년 현재 대한체육회 등록 선수는 133,997명이다. 해마다 종목별 국가 대표로 선발되는 선수는 이 가운데 0.04% 정도인 500여 명에 불과하다.한 의원은 자료를 근거로 “엄청난 경쟁을 뚫고 국가 대표가 되는 선수들이 은퇴 후에 경제적 어려움에 놓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은퇴 선수의 처우를 개선하고 체계적인 취업 알선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오래전 일이지만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한 기억이 있다. 1982년 10월 말 일본 열도는 퍼시픽리그의 신흥 명문 세이부 라이온스와 8년 만에 센트럴리그 1위를 차지한 주니치 드래건스의 프로야구 일본시리즈로 달아올랐다. 일본시리즈 3~5차전은 도쿄 인근 도코로자와에 있는 세이부 구장에서 진행됐다. 글쓴이는 전철로 연결되는 이케부쿠로역 근처 선술집에서 전직 프로야구 선수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주인의 소개로 인사를 나눈 그는 1970년대 중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3라운드쯤으로 지명된 투수였다. 그는 3년 만에 퇴단했다고 했다. 고교 시절엔 제법 던진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팀의 선수층이 두꺼워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요미우리에서 나온 그는 아예 야구 판을 떠났다. 은퇴 뒤 바로 영어 학원을 등록했고 몇 종류의 기술 학원에 다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배운 것이 야구밖에 없었으니 먹고살 길이 막막했을 것이다 일본 고교야구는 운동과 공부를 함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PL학원고를 비롯한 야구 명문교의 경우 한국과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야구 선배의 도움으로 보험회사에 취직했지만 입사 초기 업무에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업무도 제법 손에 익고 운동선수 출신 특유의 끈기와 돌파력으로 회사 안에서 제법 인정을 받았지만 야구보다는 힘이 든다며 연신 술잔을 들이켰다.
양준혁은 선수 은퇴 뒤 야구 해설위원, 사업가, 연예인 등으로 탄탄대로를 걷는다. 이는 보기 드문 사례다. 대부분의 은퇴선수들은 산전수전을 겪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600만 관중을 넘어선 국내 프로야구는 어떨까. 지난 8월 25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2년 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에는 777명의 고교·대학교 졸업 예정자 등이 참여했다. 이들 가운데 프로 무대에 설 기회를 잡은 건 12.1%에 해당하는 94명이었다. 2013년 1군 리그 합류를 노리는 제9 구단 NC 다이노스가 기존 구단들보다 많은 인원을 확보해 그나마 '취업률'이 10%대를 넘었다. 최근 몇 년간 프로 야구 '취업률'은 10%를 밑돌았다. 좁디좁은 취업문은 통과했지만 이들이 10년 또는 그 이상 오래 활동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앞의 요미우리 퇴단 선수처럼 상당수의 선수가 5년을 넘기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는다. 국내에서 최고 인기를 자랑하는 프로 야구가 이 정도이니 다른 종목은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종목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이르면 초등학교 3, 4학년 때부터 운동만 해온 선수들은 대부분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조기 은퇴선수뿐만이 아니다. 국가대표가 됐든 그렇지 않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30대 중반 이전에 거의 모든 선수들이 운동과 거리가 먼 직업을 찾아나서야 한다. 체육계는 이전부터 ‘공부하는 운동선수, 운동하는 학생’을 이상적인 지향점으로 내걸었다. 아직 국내 교육환경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 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그렇다면 당장 해결이 가능한 단기 처방은 없을까. 글쓴이는 한 의원이 제시한 취업 알선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대한체육회가 주관하고 컨설팅 전문 기업인 (주)아데코코리아가 시행하는 은퇴선수 경력 개발 프로그램(ACP, Athlete Career Program)이다. 지난 4월 5일부터 7월 5일까지 진행된 ACP 1기 강좌에는 쇼트트랙, 레슬링, 아이스하키, 유도, 스피드스케이팅, 태권도, 요트, 유도, 농구, 배구 등 10종목 13명의 은퇴선수가 참여해 8명이 수료를 밟았다. 이 가운데 4명은 용인대, 고려대, 서울시립대의 강사와 대한체육회 직원 등으로 취업했다. 현재는 ACP 2기 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아직 시행 초기인 탓에 문제도 있다. 참여 대상이 올림픽 출전 경력이 있거나 국가 대표 선수를 지낸 은퇴선수들로 한정돼 있다. 수많은 은퇴선수들이 제대로 된 취업 상담을 할 수 없는 셈이다. 올림픽이나 아시아경기대회 등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경기력 향상 연금을 받는 선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은퇴 선수 문제는 모두가 공감하는 오랜 숙원이지만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때가 됐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아시아경제 & 재밌는 뉴스, 즐거운 하루 "스포츠투데이(stoo.com)">
대중문화부 이종길 기자 leemea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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