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빈곤국 문화유산 보존 도와야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개발의제는 국가 간 개발격차의 완화가 글로벌 경제위기 해결에 바람직하다는 인식에서 설정된 것이다. 이 논의는 그동안 저소득국가의 빈곤퇴치와 질병예방 등을 위해 제공돼왔던 단순한 원조의 차원을 넘어 이들 국가의 자생력, 특히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에 초점을 두고 있다. G20 개발의제와 연관해 최근 문화재청이 라오스 등 몇 개 국가를 대상으로 제공하고 있는 문화유산 보존 지원 사업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이나 아프리카 대륙의 저소득 국가들은 대부분 두 가지 중요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천연자원과 문화자원이 그것이다. 지하에 매장된 천연자원은 자본과 기술을 투입하면 단기간에 경제적 부를 창출할 수 있는 반면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고갈되고 이들 천연자원 소모에 따른 생태오염 등의 부작용이 따른다. 하지만 문화자원은 다르다. 문화자원은 유형의 문화유산이나 무형의 의식, 관습 등을 총괄적으로 의미하는 것으로 인류문화 발전을 지탱해온 각 민족과 국가의 다양한 노력과 가치의 집합이다. 이들 문화자원은 단기간에 성과를 보기는 힘들지만 일단 잘 보존해 활용하면 할수록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아무리 사용해도 고갈이나 오염의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유네스코와 같은 국제기구나 일본과 같은 일부 선진국들이 저소득국가의 문화유산 보존을 지원해주기 위한 노력을 펼쳐오고 있지만 대상 국가들의 경제적 여건이나 사회적 인식 부족 등으로 문화자원이 시시각각 소멸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들 국가가 빈곤을 탈피하고 기초적 사회기반시설을 갖출 때까지는 문화자원 보존을 위한 여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지금 문화자원 보존을 위한 노력을 시작하지 않으면 훗날 지속 가능한 성장을 고도화할 단계에서 문화 콘텐츠 개발이나 관광산업 등 고부가가치 사업을 추진할 때 개별 민족과 국가의 독창성과 정체성을 담은 문화자원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한국은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참화를 딛고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함께 일군 지구상의 유일한 국가다. 근대화 여명기에 있었던 국채보상운동은 새마을운동, 1990년대 말 외환위기에서의 금 모으기 국민운동, 2002년 월드컵 대회를 통해 세계를 감동시켰던 붉은 악마의 응원 등으로 이어져 한국 민족의 정신유산이 되고 있다. 올림픽, 월드컵 대회, 국제육상경기대회에 이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함으로써 성공 드라마를 지속시키려는 한국 민족 특유의 근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이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됨으로써 두 자리 숫자의 세계유산을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로 떠올랐다. 이는 전쟁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민족의 고유한 가치를 지켜내려는 지혜와 노력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선진국과 저소득국가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이러한 책임의식 속에는 물질적 성장의 경험뿐 아니라 유ㆍ무형의 문화유산을 보존해온 지혜, 특히 정신유산과 사회자본을 국가 발전에 적용해온 자신감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지금부터 필요한 것은 이러한 책임의식에 대한 국가적 공감대를 확산하고 보다 넓은 시각에서 구체적 실천방안을 강구하는 일이다. 문화재청은 그동안 유네스코를 통해 북한의 고구려 고분 보존을 지원해 왔고, 아시아태평양 지역 무형유산 보존을 위한 유네스코 지역센터도 설립했다, 최근에는 라오스나 캄보디아 등 일부 국가 문화유산 보존을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활동을 위해 책정된 예산은 극히 미미하다. 그러나 한국의 정신유산과 문화자원 보존 지혜를 전수해주기 위한 단초를 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높이 평가돼야 한다. 엄승용 문화재청 문화재정책국장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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