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준 기자의 CINEMASCOPE -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잿빛 콘크리트가 지배하는 대도시. 갖가지 다른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찾아낼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는 ‘카페’라는 통칭으로 불리는 찻집이다. 매 블록마다 하나둘씩 자리한 카페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화상이다. 그 안에서 우리들은 만나고 사랑하고 다투고 이별한다. 또한 사색하고 고민하고 절망하며 마침내 꿈을 이루기도 한다. 운 나쁘게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지인을 만나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다방’이라는 이름의 장소에서는 치열한 삶을 이겨낸 ‘노땅’ 기성세대들의 현명함과 연륜을 찾아볼 수 있으며, ‘별다방’ ‘콩다방’ 등 커피 프랜차이즈에서는 혈기왕성하지만 동시에 무모한 젊은이들의 치열한 현재가 발견된다.
대만 출신의 거장 허우 샤오시엔 감독(‘비정성시’ ‘쓰리타임즈’)이 제작을 맡은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Taipei Exchanges’는 한국의 서울과 많이 닮아있는 대만 타이페이의 한 카페를 무대로 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풀어낸다. 영화의 한자 제목은 ‘第36個故事’로 ‘서른여섯 번째 이야기’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서로 판이한 성격의 두 자매 두얼(계륜미 분)과 창얼(임진희 분)이 도시 한복판에 카페를 오픈하지만 손님들의 발길은 뜸하기만 하다. 우연히 창얼은 개업선물로 받은 잡동사니들의 물물교환을 제안하고, 단번에 이곳은 타이페이의 명소로 떠오른다. 두얼은 35개의 서로 다른 비누에 담긴 35개의 도시 이야기를 들려주는 남자에게 매혹되고, 새로운 서른여섯 번째 이야기를 찾으려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의 제작은 도시의 이미지를 잘 포장해주는 그럴듯한 영화를 한 편 갖고 싶어했던 타이페이 시의 욕망에서 출발했다. 의도에 걸맞게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는 타이페이의 여러 단면들을 깔끔한 동화 같은 화면에 세련되게 담아낸다. 마치 관광 홍보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세트가 아닌 100% 실제 로케이션으로 진행된 촬영은 영화의 생생한 기운을 최대화하고 있으며, 극 중 인서트되는 일반인들의 인터뷰 영상들은 픽션에 다큐멘터리의 생생한 느낌까지 불어넣는다. 또한 주걸륜(‘그린 호넷’)과 함께 출연한 ‘말할 수 없는 비밀’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한 대만 여배우 계륜미는 시종일관 ‘안주인’ 같은 느낌으로 극에 차분함을 더한다.지나치게 예쁘게 포장된 ‘팬시’ 상품 같은 느낌이지만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는 시종일관 얼굴에 미소를 지은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게 하는 ‘웰 메이드’ 소품이다. 더 나아가 만약 당신이 이 영화 때문에 타이페이라는 도시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면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는 완벽하게 모든 임무를 완수한 것이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지금까지 ‘서울 카페 스토리’라고 할만한 영화가 있었던가? 안타깝지만 아직까진 없었던 것 같다.태상준 기자 birdcag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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