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두 아이가 똑 같이 말 잘 듣고, 둘 다 동시에 공부 잘 하고, 둘이 함께 예쁘다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더군요. 어떨 때는 큰 애를 키우는 게 더 수월하고, 어떨 때는 작은 애 때문에 남들에게 부럽다는 소릴 듣지만 어떤 날은 큰 애 문제로 밤잠을 못 이루는가 하면 어떤 날은 작은 애로 인해 누군가에게 사과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어제는 자랑스럽기 그지없던 아이가 오늘은 내 자존심에 흠집을 내는 경우가 생기는 거예요. 이런 게 바로 가족의 역사이지 싶어요. 재미있는 건 국내 최초의 리얼 버라이어티 MBC <무한도전>에도 바로 이런 생생한 히스토리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멤버들의 캐릭터가 각기 생명력이 있기 때문일 텐데요. <H3><무한도전> 멤버로 그간 마음고생이 많았지요</H3>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의 길 씨는 마치 탈퇴환골이라도 한 양 멋지시더군요.
지금은 미존개오(미친 존재감 개화동 오렌지족)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펄펄 나는 정형돈 씨가 <우리 결혼했어요>에서의 진상 남편 이미지 때문에 덩달아 <무한도전>에서까지 미움 받던 시절도 있었던 거, 기억나시죠? 그리고 몇 년 전 추석 특집이었나요? ‘형돈아 놀자’ 편에서 더러움의 극치인 형돈 씨 집이 적나라하게 공개되면서 한 순간 비호감으로 전락하기도 했죠. 프로그램으로서는 분명 대박이었는데 정작 집을 공개한 멤버로서는 쪽박이었던 거예요. 그날 공교롭게도 존재감이 미미하던 정준하 씨는 바리바리 음식을 싸가지고 오는 자상함을 보이는 바람에 훈남으로 등극 했으니 세상사 정녕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는 일이지 뭐겠어요. 어쨌거나 웃기는 거 빼고는 다 잘한다던 편집의 아이콘 형돈 씨가 뮤지션 정재형 씨와 함께 만들어내는 최근의 웃음들을 보고 있자니 감개가 다 무량합니다. 그 두 사람의 괴이하면서도 유쾌한 어우러짐은 2011년 최고의 커플상 수상에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명실상부한 1인자 유반장이야 늘 한결 같은 페이스였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사생활 때문이든 또 다른 이유이든 이처럼 확실한 기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 2009년 ‘김연아 특집’부터 투입된 길 씨만큼은 예외로 출발 당시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비호감을 유지해왔죠. 사실 초반에는 시청자에게까지 왕따를 당하는 느낌이었잖아요. 어쩌면 시청자들이 길 씨를 새 멤버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시점에 제작진이 무작정 길 씨를 불쑥 들이밀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애정을 둔 프로그램이다 보니 감정이 일개 방송에 머무는 게 아니라 마치 내 가족의 일 같아 진 거겠죠. ‘가족이 들고 나는 일을 감히 내 허락도 없이?’ 뭐 이런 기분이었지 싶어요. 결정은 제작진이 한 건데 애꿎게 길 씨만 미움을 사고 만 겁니다. 게다가 마침 국민 요정 김연아 선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라 방송 중의 몇몇 실수로 더 미운털이 박혔던 것 같고요. <H3>길 씨의 숨겨놨던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H3>
‘바닷길’이 들려준 ‘나만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아름다운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의 길 씨는 마치 탈퇴환골이라도 한 양 멋지시더군요. 길과 한 팀이 된 바다 씨가 작업실로 찾아와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나누는 순간부터 마치 딴 사람처럼 다가오더니만 스튜디오에서 곡 작업을 할 때엔 깜짝 놀랄 정도로 빛이 나더라고요. 그 진중한 몰입을 목격하고 나니 지금껏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못난이 연기를 펼쳤던 건가 하는 의심이 들 지경이었어요. 하기야 예전에 MBC <놀러와>에 출연했던 양희은 씨도 그 음악성이 있는 리쌍의 길 씨가 <놀러와>에서는 구박덩이 처지라는 사실을 의아해 하셨죠, 참. ‘바닷길’이 들려준 ‘나만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아름다운 감동으로 다가왔을 뿐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음악이어서, 마음 턱 놓고 들을 수 있는 노래여서 좋았어요. 그리고 길 씨의 진정한 매력을 알게 되었다는 게 무엇보다 큰 수확이었습니다. <무한도전> 안에서의 길 씨 캐릭터도 드디어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네요. 그런데 길 씨,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멋졌던 겁니까? 왜 그 진한 매력을 그 동안 숨기고 있었던 거예요?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10 아시아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매거진팀 편집. 이지혜 seve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