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눈물 세 방울을 모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낭만적이기까지 한 이 설정은 SBS <49일>의 첫 인상을 한 편의 동화로 만들기 충분했다. 그러나 눈물 세 방울을 모으기 위한 지현(남규리)의 고군분투가 시작되면서 드라마는 인간은 선하지 않으며 현실은 차갑다는 명제를 꼼꼼하게 증명해나갔다. 그리고 그 명제가 완성된 후, 다시 깨어난 지현에게 세상은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과 전혀 다르다. 마지막까지 빼곡히 죽음과 생을 넘나드는 삶의 교훈을 이야기했던 <49일>을 김선영 TV평론가는 산 자에게 보내는 당부로, <10 아시아> 이승한 기자는 기독교적 텍스트로 읽어냈다. /편집자주<div class="blockquote">SBS <49일>은 두 개의 중심 플롯으로 이뤄진다. 하나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신지현(남규리)이 다시 살아나는 데 필요한 진심의 눈물 세 방울을 찾아다니는 여정이며, 또 하나는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으로 생의 의미를 잃어버린 송이경(이요원)이 삶의 의지를 다시 회복하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개의 플롯이 빙의라는 소재를 통해 포개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 마주보게 된다는 점이다. 즉 이 작품은 지현의 이야기가 이경의 것을 감싸 안으며 시작하고, 중반부터는 서로 대화하다가 최종적으로는 후자의 이야기가 전자를 포옹하며 마무리된다.<H3>49일, 모두에게 주어진 위로와 성찰의 시간</H3>
<49일>의 저 두 플롯은 사실 영혼의 이야기와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현의 미션 서사는 스케줄러(정일우)가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 환생을 보류하고 5년간 스케줄러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 동일한 성격을 띤다. 그리고 이경의 회복 서사 역시 ‘어머니에 대한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천재적 능력을 갖고도 꿈을 버리고 과거에 묶여있던’ 한강(조현재)이 다시 꿈과 사랑을 되찾는 과정과 성격이 같다. <49일> 초반부까지 이 죽은 자와 산 자의 이야기는 아직 서로 상관이 없는 세계다. 첫 회에서 지현과 이경의 대조적인 삶을 의식적인 교차편집으로 표현한 것처럼 두 세계는 도저히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운명의 사고로 인해 이경의 몸을 빌리고 난 뒤에도 지현에게 있어 이경의 “완전 그지꼴”인 삶은 전혀 다른 세상이며, 스케줄러 역시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는” 저승의 규칙 이전에 이미 인간들 “사연에 전혀 관심이 없다.” 이 두 세계가 서로 마주보게 되는 계기는 죽은 자의 회한과 살아남은 자의 후회가 교차할 때 일어난다. 지현은 믿었던 친구와 연인에게 상처 입고 자신의 삶이 거짓 인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자각을 하고난 뒤 같은 상처를 가진 이경을 이해하게 되며, 또한 자신을 진심으로 위하고 사랑한 것은 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이경에게 준 상처와 그녀의 오해를 기억해낸 이수는 지난 5년간 그녀가 삶을 폐기하다시피 살아온 사실을 알고 오열한다. 남겨진 자들의 후회도 뼈아프다. 이경은 단 한순간도 이수를 잊지 못하고 그가 떠난 시간의 주위만을 맴돌며, 강은 지현에게 못 다한 사과와 사랑 고백을 가슴 깊이 품고 있다. 차마 하지 못한 말과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한 간절한 후회, 그리고 가려진 순도 100퍼센트의 진심이 그들을 다시금 만나게 한다. 결국 49일은 영혼에게 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자에게도 똑같이 주어진 위로와 성찰의 시간이다. <H3>그러니 산 자여,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H3><49일>은 영혼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그 영혼과 살아있는 자들의 소통을 그리다가 결국 산 자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특히 이경과 지현이 자매라는 무리수 섞인 반전을 제외한다면, 마지막 회는 그 전체가 죽은 자와의 이별 의식과 살아남은 자들의 만가 같은 성격을 띠었다. 드라마는 세상 저 편으로 떠나게 된 지현이 자신의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이경과 함께 김밥을 싸고, 강과 함께 피크닉을 즐기며, 부모님에게 인사하는 그 모든 마지막 정리 과정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그녀가 떠난 뒤에는 그동안 그토록 얻기 힘들었던, 남겨진 자들의 진심어린 눈물 역시 충분히 보여준다. 이후의 이야기는 살아남은 자들의 추억 같은 후일담이다. 이경은 지현이 건네 준 자신의 옛 박스에서 이수의 연습실 열쇠를 발견하고 그곳에 그가 남긴 통장과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철거지역이어서 없어진 줄 알았던” 연습실 공간이 상징하듯이 그 오래전에 봉인된 추억은 문을 열고 다시 상기하자마자 생생한 현재형으로 숨 쉰다. 그 추억이야말로 사랑하는 이들이 남기고 간 위로라고 드라마는 이야기한다. 그 결론의 메시지는 엔딩 신 한강의 대사처럼 직설적이다. “그러니 산 자여. 그 위로에 힘 얻어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 우리 인생의 축소판인 49일처럼.”글 김선영
<div class="blockquote">“하느님이란 분도 세상을 7일 만에 만드셨다는데” 한강(조현재)은 틀렸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은 6일 만에 세상을 만들고 일곱 째 날에 그 광경을 바라보며 “참 보기 좋다” 말하며 쉬었다. 그리고 다시 살아 난 신지현(남규리)은 다시 죽기 전 6일 동안 자신이 떠난 뒤에도 남겨진 이들이 주저앉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을 완성한다. 자신을 배신한 신인정(서지혜)을 불러 용서하고, 송이경(이요원)에게 생의 의미를 다시 가르치며, 한강과 부모님에게 마음의 빚을 갚으며 ‘모든 것을 다 이룬’ 신지현은 목욕재개 후 부모에게 “당신의 딸로 살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말을 남기고 스르르 숨을 거둔다. SBS <49일>의 마지막 회가 방영되고, 적지 않은 시청자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왜 신지현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살아난 뒤 6일 만에 다시 죽어야 했나. 불필요한 안티 클라이막스처럼 보이는 결말을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49일>을 기독교 신앙의 알레고리를 차용한 우화로 읽는 것이다. <H3>49일, 진실로 생을 살아내기 위한 시간</H3>
야훼에게 아브라함이 물었다. 소돔 성읍 안에 의로운 사람 열 명만 있어도 도시를 멸하겠다는 말을 거둘 수 있냐고. 야훼는 답한다. 그 의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창세기 18장 32절) <49일>에서 다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49일간의 ‘여행’을 선택한 ‘여행자’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소돔의 백성들 앞에 던져진 미션에 비하면 쉽다. 순수하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흘리는 타인의 눈물 세 방울만 모으면 유예의 시간을 벗어나 다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의인 열을 못 찾아 유황불에 타오르고 만 소돔처럼, 2011년의 서울은 그 셋을 찾기도 버겁다. 49일의 여행 동안 신지현은 자신이 사랑이라 믿었던 것이 실은 시기와 질투였으며, 자신의 선의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여 신지현은 진실된 눈물을 얻기 위해 자신을 사랑한 사람들을 찾아 헤매고, 그들에게 못 다 했던 것들을 해주며,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를 만회하려 노력한다. 신지현에게 49일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다시 살기 위한 시간이 아니다. 자신의 생이 진실로 어떤 의미였는지 제 3자의 자리에서 채증하고 복기해야 하는, 진실로 생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한 시간이다.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 했던 생에 지혜를 밝히는 시간, 타인을 용서하고 스스로의 실수를 정죄하는 시간, 천국에 미처 오르지 못 한 영혼들이 자신의 죄를 씻고 구원을 기도하는 연옥의 시간.<H3>부활과 죽음을 목격한 이들이여,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H3>49일이란 시간을 이렇게 해석한다면, 신지현의 미션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미 이루어졌다. 마지막 두 방울의 눈물의 주인이 누군지 알려주려는 스케줄러(정일우)의 제안을 신지현은 “누군지 알면 이 세 사람만 사랑할 것 같아”서 거절한다. 청년 예수가 40일간 광야에서 사탄의 회유를 물리치며 자신 안의 신성(神性)을 확인한 것처럼, 인간의 아들 아브라함처럼 몸을 숙이며 구원을 간청하던 신지현은 47일간 참담히 무너지고 좌절하면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난 뒤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므로 남은 6일은 매일 매일을 49일처럼 살라는 복음을 전파하는 예수의 시간,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하던 세계를 의미로 충만한 세계로 다시 빚어내는 창조의 시간이다. 구약에서 인간의 원죄를 씻어주지 않았던 신은 자신의 아들 예수를 내려 보내 인류의 원죄를 대속해서 죽게 함으로써 인간과의 새로운 계약, 신약(新約)을 성립했다. <49일>의 초반부 인간의 선의지에 대한 절망적인 비전을 펼쳐 보인 소현경 작가는, 신지현이 생의 참 의미를 깨닫고 그것을 전파하고 떠나가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선의지에 다시 한 번 기대를 건다. 어쩌면 소현경 작가는 <49일>을 통해 매일 매일을 49일처럼 살아갈 것을 전제로 인간과의 새로운 계약을 맺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49일>의 마지막이 신지현의 부활과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사도’, 송이경과 한강이 신지현의 무덤 앞에서 충만한 삶을 다짐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것 또한 사리에 부합한다. 이 장면을 통해 모든 것을 목격한 수많은 사도들, 시청자들에게 남겨진 메시지는 자명하다. 천주교 미사의 끝맺음 인사처럼,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글 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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