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FF+10] 히가시 요이치 “돈만 추구하다보면 영화도, 세상도 끝이다”

<div class="blockquote">츠카하라(아사노 타다노부)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다. 보도 카메라맨인 그는 전장에서 지옥을 목격했다. 어린 시절 역시 알코올 의존증이었던 아버지로 인한 상처도 있다. 술 때문에 아내와 이혼을 하고도 여전히 그는 술에 취해 오줌을 싸고 피를 토한다. 그런데 이 남자, 밉지가 않다. 그를 지켜봐주는 강인하고 따뜻한 가족들이 있어서다. 히가시 요이치 감독은 영화 <술이 깨면 집에 가자>에서 병에 걸린 인간을 그리지만 그 얼굴에서 눈물이 아닌 미소를 보여준다. 1934년생, 올해 나이 78세의 노감독은 오랫동안 많은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가 “아직 아무도 끝까지 읽은 적이 없는 책”과 닮았다고 말하는 그에게 영화는 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영화의 강렬함에 매료되어 평생을 영화와 사랑하며 살아 온 히가시 요이치 감독과 전주에서 만났다.
전주에는 언제 도착하셨어요?히가시 요이치: 어제(4월 30일) 저녁 8시에 도착했다. 집에서 아침 8시에 나왔으니까 총 12시간 걸렸다. 한국은 여러 번 온 적 있는데 김포에서 전주까지 4시간이나 걸려서 놀랐다. 서울은 네 번 정도 방문한 적 있었는데 전주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히가시 요이치: 인터넷으로 찾아 봤는데 일본어로 알 수 있는 정보가 별로 없더라. 와서 보니 젊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구나 싶다. 이런 영화제에 와서 질문을 받거나 하면 다들 막 칭찬을 하지 않나. 입에 발린 말들. (웃음) 나는 그런 입에 발린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여기는 정말 좋은 영화의 거리라는 느낌이다. 도쿄국제영화제 같은 건 엄청 재미없다.<H3>“원작과 닮았지만 또 다른 독립된 영화”</H3>
예전에 한국에는 어떤 일로 오셨는지.히가시 요이치: 1993년에 한국의 서커스에 대한 NHK의 다큐멘터리를 통영에서 촬영했다. 그 때가 처음이었다. 충무 김밥을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영화 <그림 속의 나의 마을>로도 두 번 정도 왔었다. 처음에는 개봉으로, 두 번째는 서울에서 열린 작은 독립영화제에 초청받았다. 그 때 故 유현목 선생님과도 만났다. <장마>, <김약국의 딸들> 같은 작품도 보고. 선생님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술도 마시러 갔는데 굉장히 좋았다. 일본에서는 선생이 스무 살 언저리의 학생들과 그렇게 어울릴 기회가 거의 없으니까.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술이 깨면 집에 가자>는 종군 카메라맨인 故 카모시다 유타카 씨의 자전 소설이 원작입니다. 어떻게 영화 작업을 맡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히가시 요이치: 원작자에게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출판사 입장에서는 ‘이런 게 영화가 되겠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때 우연히 내가 소개를 받아 이게 영화가 될 지 안 될 지 읽어 봐 달라고 부탁을 받았다. 읽고 나서 나는 “영화가 되지요”라고 얘기했다. 원작의 어떤 점에 끌리셨나요?히가시 요이치: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인간의 태도라는 것이 있지 않나. 병에 걸렸기 때문에 새롭게 알게 되고, 생기는 감정들. 병에 걸렸다는 걸 알았을 때 인간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갈까 라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건강하고 밝은 상태의 사람들처럼 즐겁게 노는 것만이 세상의 다가 아닌 거니까. 병에 걸린 사람이 세상을, 자신의 생활을 본다면 어떻게 보일까 라는 것에 원래부터 관심이 있었다. 특히 일본에는 옛날부터 ‘난뵤모노가타리(難病物語)’ 라고 해서 ‘병에 걸렸습니다, 고생했습니다, 웁니다’ 이런 식의 영화들을 많이 있어 왔다. 그런데 나는 그런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언젠가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알코올 의존증을 가진 인물의 이야기인데도 영화의 분위기가 어둡지 않고 담담했던 것 같습니다. 슬픈 장면이 나오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유머러스하게 그려졌습니다. 히가시 요이치: 나는 그게 진짜라고 생각한다. 그게 진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나도 어렸을 때 몸이 약했다. 결핵으로 1년간 학교를 쉰 적이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고통스러운 병을 앓고 있다고 해도 또 인간은 그 속에 자신의 생활이라는 게 있고, 웃을 때도 있다. 세상 사람들은 병에 걸리면 큰일이겠구나 라고 다들 생각하지만 심각한 병을 갖고 있어도 정말로 즐겁게 웃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런 부분을 잘 표현한 영화들이 좀처럼 없었다. 원작 자체가 그런 느낌인가요? 히가시 요이치: 원작과 물론 닮았지만 또 다르다. 사실 일본에서 트위터 같은 걸 읽어 보면 정말 실망스러운 게 사람들이 쓰는 내용이라고는 영화가 카모시다 유타카와 닮았다, 사이바라 리에코와 닮았다, 아니다 그런 것뿐이다. 사실 그런 건 전혀 관계없다. 이건 하나의 독립된 영화니까. 그래서 원작을 읽지 않은 한국의 관객들이 봐 주는 것이 가장 평범하게 영화로서 봐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원작을 읽고 거기서 생겨난 것들도 있지만 나는 이걸 내 영화로 보여주는 거지 복제품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일본의 젊은 관객들은 그걸 알지 못하는 바보들뿐이다.<H3>“여성의 힘이라는 게 대단한 것 같다”</H3>
아사노 타다노부 씨가 연기한 츠카하라의 캐릭터가 재미있었습니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실제 내 남편이나 아버지라면 결코 좋아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츠카하라는 그럼에도 뭔가 미워할 수 없고, 심지어 귀엽기까지 합니다. 히가시 요이치: 카모시다 유타카 본인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건 아내가 제대로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모델이 된 아내 사이바라 리에코 씨 자체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상냥하면서도 강인한 사람이라서 불행한 순간에도 불행한 얼굴 같은 걸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도 언제나 웃고. 그런 성격의 사람이기 때문에 나도 굉장히 좋아한다. 가장 좋았던 장면 중 하나가 아내와 아이들이 병문안을 가서 병상에 누운 아빠의 오줌 주머니로 장난치는 장면이었습니다. 히가시 요이치: 그건 원작에도 있는 장면이다.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낙관적인 사람들이고 이혼 하기 전 굉장히 따뜻하고 좋은 가정이었다. 영화에도 나오는 “한 번 좋아한 사람은 좀처럼 싫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은 취재차 인터뷰를 갔을 때 사이바라 리에코 씨가 직접 한 말이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여성이란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강한 사람이다. 그리고 정말 강한 사람이야말로 상냥하다. 그런 멋진 부분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그런 건 아니니까. 특히 최근에 많이 느끼는데 여성의 힘이라는 게 대단한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인터뷰를 하거나 글을 쓴 사람들 중에서도 여성 비평가들은 다르다. 지금까지 일본의 영화평론가들이 썼던 틀에 박힌 것 같은, 이 부분은 좋고 이 부분은 좋지 않고 하는 식과는 전혀 다른 글을 쓴다. 나이 든 남성 영화평론가들과 감수성이 전혀 다르다. 자기가 느낀 것을 여성의 언어로 굉장히 솔직하게, 섬세하게 드러낸다. A라든가 B, C 이렇게 채점하는 게 아니라 영화 자체에 대해 느낀 것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한국도 그렇지 않나?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발언이 상당히 힘을 가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멋진 일이다. 영화 속에서 환상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러티브의 현실과 명확하게 구분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섞여서 흘러가는 느낌이었습니다.히가시 요이치: 그렇다. 이건 환영이야 라는 설명 없이 보여진다. 나는 원래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이라는 구분이 안 되는 사람이다. 내가 그런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 방법을 좋아한다. 인간 세상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 중에서도 내가 갖고 있는 환상 같은 것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환상적인 요소는 전혀 없이 현실의 내가 이야기하고 있다고 얘기해봤자 그건 거짓말이다. 환상은 내 안에서 언제나 살아있기 때문에. 사실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언가를 만들어서 이야기하는 것이지 않나. 아까도 말했듯이 병으로 1년간 요양했던 열 살 무렵부터 환상적인 세계라는 것과 현실의 자신이라는 것이 본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병상에 누워 꿈을 꾸다 깨면 그게 꿈이었는지 진짜인지, 가끔 현기증이 나서 봤던 광경이라는 게 실은 실제로 내가 본 게 아니라 없었던 일일지도 모르고. 사실 영화라는 게 환상력을 믿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지 않나.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사진의 연속이지. 허구의 대사를 하는데 그걸 보고 왜 사람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걸까. 나는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는 사람은 예술가로서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H3>“능력 있는 프로듀서를 키우는 것이 감독보다 먼저”</H3>
<나의 할아버지>나 <그림 속 나의 마을> 같은 전작들이 국내에서 개봉하기도 했지만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감독님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굉장히 오랫동안 많은 영화를 만드셨는데 처음에 어떻게 영화계에 입문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히가시 요이치: 학생 시절에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소설을 쓰거나 음악과 관계된 일을 하고 싶다거나. 영화도 그 중 하나였고. 그러다 대학 졸업하기 전에 영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기록영화로 영화를 시작했다. 기록영화를 한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를 배웠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영화를 해서 좋았다고 생각하는 건, 누군가가 한 말이 아니라 내가 생각한 건데, 나는 영화가 아직 아무도 끝까지 읽은 적이 없는, 아주 두꺼운 책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영화의 역사 속에서 전설적인 감독들이 많이 있었다. 세르게이 에이젠쉬타인이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같은 이들을 포함해서. 그런 감독들이 해온 것들이 대단하지만 이 영화라는 책으로 보면 아직도 ‘도중(途中)’이다. 그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나도 그 중 한 페이지 정도라도 더 진행시키고 싶다. 영화라는 게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진다. 영화만큼 엄청난 정보를 갖고 있는 게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문학보다도 대단한데 그걸 제대로 밝혀낸 사람이 없다. 앞으로 100년 정도 더 살 수 있으면 좀 더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안 되는 게 유감이다. (웃음)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하셨나요?히가시 요이치: 네 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끌려 영화를 보러 갔다. 아버지가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 사람이었다. 시골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집까지 20분 정도를 걸어왔다. 달빛이 있는 그 밤길을 어른들과 함께 걸어오면서 내 머리 속에는 온통 좀 전에 본 영화의 이미지 뿐이었다. 지금 내가 현실을 살고 있는 걸까, 방금 본 영화 속에서 살고 있는 걸까 모를 정도로 환상에 사로잡혔다. 소설도 정말 좋아하지만 역시 눈으로 보는 것, 눈앞에 이런 세계가 바로 펼쳐지는 표현만큼 대단한 것이 없구나 싶었다. 중학교 때 학교를 빠지고 영화를 보러 가곤 했는데 그 때 본 영화중에 장 콕도의 <오르페>가 있다. 주인공이 죽음의 세계의 여인을 사랑해서 그 속으로 들어가는데 그 장면이 지금까지도 눈에 새겨져 있다. 장갑을 끼고 거울 앞에 서서 그 표면에 손을 넣으면 쓰윽 하고 들어간다. 그런 걸 어린 시절에 본 소년이라면 머리가 이상해지는 거지. (웃음) 충격적이었다. 영화라는 건 도대체 어떤 세상인가! 그런 경험들로 영화 끌렸다. 그러니까 영화가 나를 불렀지. “이리 와, 이리 와” 하고. 최근에 한국영화를 보신 게 있으신가요? 일본 영화와 다르다고 느끼시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히가시 요이치: 최근에 본 건 <똥파리>. 그 영화와 의외로 닮은 영화가 일본에도 있다. 역시 두 나라는 닮은 점이 많은 거지. 그런데 다른 점은 유현목 선생의 영화도 그렇고 예전에 본 <쉬리>도 그렇고 한국 영화는 상당히 액티브하고 적극적이다. 모두가 뜨거워진다는 느낌이랄까.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그런 정열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의 젊은이들은 좀 식어있다. 특히 젊은 남자들은 억눌려 있다. 어른스럽다고 할까, 침착하다고 할까. 요즘에는 일본에서도 재일영화인인 이상일이나 <고백>을 만든 나가시마 테츠야 같은 대단한 감독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한국영화에는 역시 한국인의 민족성 같은 게 있어 굉장히 활기차구나 하는 느낌이다. 그런 것부터 배울 것이 많지 않을까. 그리고 한국은 계속해서 새로운 영화작가들이 나오지 않나. 홍상수 같은. 예전에 한국 유학생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가 지적하고 나도 공감한 게,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외국에서 유학한 뒤 그곳에 머물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영화를 만드는 데 그게 굉장히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의 사람들과 사귀고 영화를 배우고 자신이 나고 자란 곳으로 돌아와 영화를 만드는 거지. 그리고 한국에서는 나이가 든 영화 감독도 선생이 돼서 학생들과 교류하고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지 않나. 유교의 영향 때문인지 선배는 후배를 가르치고 후배는 선배를 존경하고. 그런 부분이 일본에는 없다. 입에 발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항상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감독님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현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30, 40대 감독이고. 물론 임권택 감독님 같은 분이 계시지만 최근에는 예전처럼 관객이 아주 많이 보러 오지 않게 되었고. 감독님은 차기작의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히가시 요이치: 나도 야마가미 테츠지로라는 프로듀서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드는 데도 4년이나 걸렸다. 다들 이런 영화는 안 돼, 안 돼 라고 했기 때문에. 다음에 하고 싶은 건 있지만 안 될 것 같다. 꽤 돈이 많이 들고 영화의 테마가 대중이 보고 싶어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이라서. 나카가미 켄지라는 세상을 떠난 작가의 원작이 있는데 영화화의 문제도 있다. 러브 스토리 같은 걸 만들면 어떨까요? (웃음)히가시 요이치: 내가 러브 스토리 만들면 또 흥행이 안 될 거다. 하지만 독특한 걸 보여줄 수는 있다. 사실 내 일생의 테마는 에로스다. 프로이트적인 의미로 타나토스에 대응하는 그 에로스. 물론 그 속에 에로티시즘도 포함되어 있고. 인간이 존재하는, 살아가는 자체가 사실 에로스다. 전작들에도 그런 요소들이 있었고, 이번 영화에도 개울가에서 두 사람이 발을 담그는 장면에 그런 걸 담았다. 그것이 나의 오리지널리티다. 그래서 남녀의 러브 스토리를 만들고 싶지만 내가 만드는 이야기는 역시 많은 사람들이 와~ 하고 보러 오진 않으니까. 한국도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에서는 원작이 없는 영화는 만들기 어렵다. 팔리지 않으니까 프로듀서를 설득하기 어렵다. 일본에는 진짜 프로듀서가 없다. 할리우드 흉내 내는 사람들뿐이다. 돈을 가진 사람에게 이거라면 돈을 벌 수 있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 밖에 없다. 기획이 훌륭한지 아닌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프로듀서가 팔요한데 돈 밖에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사실 그런 게 또 흥행하기도 하고. 정말로 능력 있는 프로듀서를 키우는 것이 감독을 키우는 것보다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동시에 이뤄지는 게 가장 좋지만 아무리 재능이 있는 감독이 많이 있어도 싹을 틔울 수가 없다. 꽃을 피울 수가 없다. 그 꽃을 피워줄 수 있는 사람이 프로듀서인데. 중년, 노년이 된 감독들도 이런 영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프로듀서가 있으면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영화라는 게 본래 보여주는 것, 돈을 벌기 위한 것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예술로서 소중해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영화 자체가 비즈니스로 돈을 벌기 위한 재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럽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전통이 한국과 일본에도 필요한 것 같다. 기부로서 재능을 원조하는 사람들이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금방 그렇게 되진 않겠지만 긴 시간이 걸려도 젊은 세대가 그런 사회를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영화라는 게 돈 만의 문제가 아니다. 돈을 벌지 못 해도 만드는 게 좋은 영화들이 많이 있다. 그런 것을 만들어 남겨두지 않으면 진짜 인간이 살아가면서 남겨둬야 한 문화적 재산이란 게 사라진다. 점점 그렇게 되고 있고. 앞으로 100년이 걸리더라도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을 위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돈은 필요하지만 그것만 중요하다면 세상은 끝인 거지. 10 아시아 글. 전주=김희주 기자 fifteen@10 아시아 사진. 전주=이진혁 elev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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