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독설 정부-재계 ‘불편한 동거?’

이건희 회장 ‘초과이익 공유제’ 직설화법 작심 비판 후폭풍 예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정부의 경제 성적을 대놓고 비판했다. 평소에 비유적인 표현을 쓰던 이 회장이 작심한 대목이 엿보인다. 이 회장이 16년 만에 ‘폭탄발언’을 하면서 정계와 재계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995년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었다. 당시 김영삼 정부의 견제를 받으며 어려움을 겪었다. 큰 고통을 겪었던 이 회장이 지난 10일 정부와 동반성장위원회를 향해 쓴소리를 했다. 이전과는 다른 직설적인 화법도 구사돼 발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편집자>이건희 회장은 지난 10일 초과이익공유제를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이 회장은 “(초과이익공유제라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그 말이)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들어본 적이 없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평소에 과묵하고 수줍음을 타는 것으로 알려진 이건희 회장. 점잖고 비유적인 표현을 잘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직설적이고 간명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이날이 그랬다.

이건희 회장이 지난 10일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아시아경제 윤동주 기자)

동반성장 노력 폄하에 쓴소리이 회장의 이전 발언을 보면 이날 발언이 얼마나 ‘쎈 발언’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회장은 매년 신년사에서 회사의 방향을 제시한다. 연말마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연구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신년사를 내놓는다. 이 회장은 올 초 신년사를 통해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협력업체와 동반성장이고, 다른 하나는 10년 내 위기설이다. 이 회장은 신년사에서 “주주와 고객, 협력업체는 물론 우리의 모든 이웃과 함께 더불어 성장하는 ‘사회적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며 “특히 협력업체는 삼성 공동체의 일원이며 경쟁력의 바탕이기 때문에 협력업체가 더 강해질 수 있도록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협력업체와 동반성장을 강조하던 이 회장도 초과이익공유제는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동반성장위원회가 민간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라며 애써 외면하는 모습을 봤다. 정치권과 정부에서 산발적인 의견이 나오기는 하지만 재계에서는 아무도 나서지 않는 분위기다. 재계의 원로들이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지난 8일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초과이익공유제와 관련해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는 게 현대차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래서 이건희 회장이 나섰을 가능성도 높다. 지식경제부 최중경 장관은 지난 3일 이익공유제와 관련해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이익공유제는 적용하는 절차와 방식에서 볼 때 기업과 기업 사이에 적용하기 어렵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도 초과이익공유제에 연일 비판적인 소리를 냈다. 초과이익공유제가 현행법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익 강제 할당 시장경제 어긋홍 의원의 측근은 “현행 법률체계와 자율시장 경쟁체계에서 이익이 불분명하게 배분되는 현상을 시정해야 한다”며 “이익이 난다고 그것을 강제로 할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이용섭 의원도 지난 9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초과이익공유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꾀하려는 취지로 얘기한 점에는 공감한다”며 하지만 “현실성 없는 아이디어”라고 비판했다. 정보통신 업계의 중소기업 A임원도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초과이익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어떻게 초과이익을 수취할 것인지, 중소기업의 기여도는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 중소기업 경쟁력에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중소기업 B임원은 “대기업은 지금도 단가를 낮추기 위해 중소기업을 찾아와서 얘기하고 있다”며 “초과이익공유제처럼 실현 가능성이 낮은 논의보다 대기업이 문어발식으로 사업 확장을 막을 수 있는 징벌적 손배소를 적용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단체들도 초과이익공유제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들에게 ‘적정 이윤’을 보장해 주는 게 최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중소기업 유관협회 관계자는 “어차피 초과이익공유제가 실시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도 않았다”며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현실화시켜주는 게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의 발언 중 초과이익공유제보다 정부를 비판한 대목이 더 눈길을 끈다. 이 회장은 지난 10일 “(현 정부의 경제성적표와 관련) 계속 성장을 해왔으니 낙제점을 주면 안 되겠죠”라며 “과거 10년에 비해 상당한 성장을 해왔으니…”라고 말했다. 정부 “낙제는 아니다” 뼈 있는 속내경제성장이 지연되면 낙제점수를 줄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회장은 앞으로 10년간 경제 상황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회장은 신년사에서 “지금부터 10년은 100년으로 나아가는 도전의 시기가 될 것”이라며 “지금 삼성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사업·제품은 10년 안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업·제품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10년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100년간 힘들 수 있다는 의미다. 올해 경제 상황은 어떨까. 전문가들은 경기 회복세가 전년보다는 낮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을 비롯해 선진국의 재정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 위기로 정부가 경기를 끌어가면서 각 국의 재정 적자 폭이 극심해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재정 적자가 올 2월 2225억 달러로 집계됨에 따라 2월 실적으로는 역대 최대의 적자폭을 기록했다. 중국 등 신흥국의 경제 상황도 녹록치 않다. 이들 국가는 과열 상태를 걱정하고 있다. 과도한 경제 성장으로 재정 불안보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유가 상승과 기상 이변이 국내 경기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작년 9월 말 원유가는 두바이유 기준으로 80 달러 중반이었다. 하지만 리비아사태 등으로 원유가가 연평균 100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소 10 달러 이상의 상승 요인이 발생했다는 판단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이미정 연구위원은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은 4.3%로 예상했다”며 “물가상승률은 9월 말 기준 3%로 전망했지만 유가 상승과 기상이변 때문에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져 수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올 연말 경제성장폭이 줄었다면 이건희 회장은 정부의 경제 정책에 몇 점을 줄까. 청와대의 반응은 침착했다. 정부의 경제성적표 발언보다 이익공유제 발언에만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익공유제 관련) 교수 출신인 정 위원장이 세미나에서 말씀하시듯 이상적인 애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의 폭탄발언으로 가장 이득을 본 경제인은 허창수 GS회장이다. 허 회장은 지난 2월에 전경련 제3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작년 7월에 조성래 당시 회장이 사의를 표명했을 때 전경련 회장단이 이 회장을 차기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했다. 장고 끝에 이 회장은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래서 허창수 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추대됐다. 이 회장은 허창수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지난 10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관련, 외국 출장 중이었다. 이번 전경련 회장단 회의 참석을 위해 일정을 단축해서 참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회장단 회의 참석 여부는 막판까지 파악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며 “이건희 회장은 지난 8일 귀국 후 공항 입국장에서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겠다는 얘기를 전했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은 귀국 후 이틀 만에 ‘폭탄발언’을 한 셈이다. 신년사를 준비할 때 오랫동안 생각하고 연구하던 모습에 비춰보면 작심하고 얘기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건희 회장 2010년 이후 주요 경영 관련 발언■“각 분야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2010년 1월 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10’) → ■“회사가 약해지면 도울 것이다.”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전부 투자하고, 전부 열심히 일해야 한다. 싸움은 절대 안 된다. 다들 솔직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2010년 2월 5일 ‘호암 100주년 기념식’) →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 기업이 무너진다. 삼성도 어찌 될지 모른다.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2010년 3월 24일 경영 복귀) → ■“삼성이 최근 몇 년간 좋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일본 기업으로부터 더 배워야 할 것이 있다. 한국과 일본 기업은 서로 협력할 분야가 많다고 본다.”(2010년 4월 7일 요네쿠라 히로마사 스미토모화학 회장 등의 일본 기업인들과 회동 시) → ■“환경 보전과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 정부도 녹색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은 기업의 사명이다.” “다른 글로벌 기업들이 머뭇거릴 때 과감하게 투자해서 기회를 선점하고 국가 경제에도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한다.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많이 뽑아서 실업 해소에도 더 노력해 달라.”(2010년 5월 11일 신수종 사업 투자 계획 발표) → ■“지금 세계 경제가 불확실하고 경영 여건의 변화도 심할 것으로 예상은 되지만, 이러한 시기에 투자를 더 늘리고 인력도 더 많이 뽑아서 글로벌 사업 기회를 선점해야 그룹에도 성장의 기회가 오고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2010년 5월 17일 메모리반도체 16라인 기공식) → ■“지난 30년간 협력업체를 챙겨 왔지만, 그 단계가 2, 3차로 복잡해지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 앞으로 2, 3차 협력업체까지 포함해서 좀 더 무겁게 생각하고 세밀하게 챙길 것이다. 동반성장을 위한 제도와 인프라를 만들어가도록 할 것이다.” “대기업이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먼저 일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함께 성장하는 것은 대기업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건전하게 발전시키는데도 필요한 일이다.”(2010년 9월 13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조찬간담회) → “초과이익공유제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 경제학책에도 나오지 않는다. 공산주의에서 쓰는 용어인가, 의미 자체를 모르겠다.”(2011년 3월 10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 참석 시)이코노믹 리뷰 김경원 기자 kwkim@<ⓒ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주간국 김경원 기자 kwkim@ⓒ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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