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기자
이건희 회장이 지난 10일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아시아경제 윤동주 기자)
동반성장 노력 폄하에 쓴소리이 회장의 이전 발언을 보면 이날 발언이 얼마나 ‘쎈 발언’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회장은 매년 신년사에서 회사의 방향을 제시한다. 연말마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연구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신년사를 내놓는다. 이 회장은 올 초 신년사를 통해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협력업체와 동반성장이고, 다른 하나는 10년 내 위기설이다. 이 회장은 신년사에서 “주주와 고객, 협력업체는 물론 우리의 모든 이웃과 함께 더불어 성장하는 ‘사회적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며 “특히 협력업체는 삼성 공동체의 일원이며 경쟁력의 바탕이기 때문에 협력업체가 더 강해질 수 있도록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협력업체와 동반성장을 강조하던 이 회장도 초과이익공유제는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동반성장위원회가 민간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라며 애써 외면하는 모습을 봤다. 정치권과 정부에서 산발적인 의견이 나오기는 하지만 재계에서는 아무도 나서지 않는 분위기다. 재계의 원로들이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지난 8일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초과이익공유제와 관련해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는 게 현대차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래서 이건희 회장이 나섰을 가능성도 높다. 지식경제부 최중경 장관은 지난 3일 이익공유제와 관련해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이익공유제는 적용하는 절차와 방식에서 볼 때 기업과 기업 사이에 적용하기 어렵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도 초과이익공유제에 연일 비판적인 소리를 냈다. 초과이익공유제가 현행법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익 강제 할당 시장경제 어긋홍 의원의 측근은 “현행 법률체계와 자율시장 경쟁체계에서 이익이 불분명하게 배분되는 현상을 시정해야 한다”며 “이익이 난다고 그것을 강제로 할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이용섭 의원도 지난 9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초과이익공유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꾀하려는 취지로 얘기한 점에는 공감한다”며 하지만 “현실성 없는 아이디어”라고 비판했다. 정보통신 업계의 중소기업 A임원도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초과이익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어떻게 초과이익을 수취할 것인지, 중소기업의 기여도는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 중소기업 경쟁력에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중소기업 B임원은 “대기업은 지금도 단가를 낮추기 위해 중소기업을 찾아와서 얘기하고 있다”며 “초과이익공유제처럼 실현 가능성이 낮은 논의보다 대기업이 문어발식으로 사업 확장을 막을 수 있는 징벌적 손배소를 적용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단체들도 초과이익공유제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들에게 ‘적정 이윤’을 보장해 주는 게 최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중소기업 유관협회 관계자는 “어차피 초과이익공유제가 실시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도 않았다”며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현실화시켜주는 게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의 발언 중 초과이익공유제보다 정부를 비판한 대목이 더 눈길을 끈다. 이 회장은 지난 10일 “(현 정부의 경제성적표와 관련) 계속 성장을 해왔으니 낙제점을 주면 안 되겠죠”라며 “과거 10년에 비해 상당한 성장을 해왔으니…”라고 말했다. 정부 “낙제는 아니다” 뼈 있는 속내경제성장이 지연되면 낙제점수를 줄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회장은 앞으로 10년간 경제 상황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회장은 신년사에서 “지금부터 10년은 100년으로 나아가는 도전의 시기가 될 것”이라며 “지금 삼성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사업·제품은 10년 안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업·제품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10년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100년간 힘들 수 있다는 의미다. 올해 경제 상황은 어떨까. 전문가들은 경기 회복세가 전년보다는 낮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을 비롯해 선진국의 재정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 위기로 정부가 경기를 끌어가면서 각 국의 재정 적자 폭이 극심해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재정 적자가 올 2월 2225억 달러로 집계됨에 따라 2월 실적으로는 역대 최대의 적자폭을 기록했다. 중국 등 신흥국의 경제 상황도 녹록치 않다. 이들 국가는 과열 상태를 걱정하고 있다. 과도한 경제 성장으로 재정 불안보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유가 상승과 기상 이변이 국내 경기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작년 9월 말 원유가는 두바이유 기준으로 80 달러 중반이었다. 하지만 리비아사태 등으로 원유가가 연평균 100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소 10 달러 이상의 상승 요인이 발생했다는 판단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이미정 연구위원은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은 4.3%로 예상했다”며 “물가상승률은 9월 말 기준 3%로 전망했지만 유가 상승과 기상이변 때문에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져 수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올 연말 경제성장폭이 줄었다면 이건희 회장은 정부의 경제 정책에 몇 점을 줄까. 청와대의 반응은 침착했다. 정부의 경제성적표 발언보다 이익공유제 발언에만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익공유제 관련) 교수 출신인 정 위원장이 세미나에서 말씀하시듯 이상적인 애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의 폭탄발언으로 가장 이득을 본 경제인은 허창수 GS회장이다. 허 회장은 지난 2월에 전경련 제3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작년 7월에 조성래 당시 회장이 사의를 표명했을 때 전경련 회장단이 이 회장을 차기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했다. 장고 끝에 이 회장은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래서 허창수 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추대됐다. 이 회장은 허창수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지난 10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관련, 외국 출장 중이었다. 이번 전경련 회장단 회의 참석을 위해 일정을 단축해서 참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회장단 회의 참석 여부는 막판까지 파악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며 “이건희 회장은 지난 8일 귀국 후 공항 입국장에서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겠다는 얘기를 전했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은 귀국 후 이틀 만에 ‘폭탄발언’을 한 셈이다. 신년사를 준비할 때 오랫동안 생각하고 연구하던 모습에 비춰보면 작심하고 얘기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