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준기자
담장 너머 재소자들이 사는 사동이 있다. 장기석 교도관(오른쪽)과 함께 걷는 본지 기자. 봄이 오면 이곳에도 꽃이 핀다고 한다.
◆'지능범' 김길수=재소자들은 다른 죄목만큼 각기 다른 색깔로 구분되고 있었다. 감방 앞에 걸린 표찰에 마약사범은 파란색, 조폭은 형광색, 일반 재소자는 하늘색 등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그를 만난 곳은 4동 상층이었다. 이곳은 입실거부나 지시 불이행 등으로 말썽을 빚는 이들이 주로 모여 있는 곳이다. 새벽 5시. 모두가 잠들어 있어야 할 시간. 그는 잠을 자지않고 있었다. 아니 잠을 거부하고 있었다. 도인처럼 수염을 기른 그의 이름은 김길수(가명)다. 춘천 교도소는 3진 아웃제를 시행중이다. 3번 규정위반이 발각되면 징계에 들어가는 데 김길수는 관복이라 부르는 죄수복을 안입고 이어진 경고 스티커 발부에 서명하지 않은 채 "주둥이 닥쳐라, XX들 맘대로 하라"며 난동을 부리다 독방으로 이송된 상태였다. 교도소 내에서 사고를 치면 따로 조사를 받고 최대 30일까지 징벌을 받는다.조사를 받을 때는 텔레비전을 못보고 라디오만 들을 수 있지만 징벌자가 되면 먹을거리 구매가 불가능하고 책과 신문, 편지와 전화 등의 소통이 전면 금지된다. 김의 죄명은 송유안전관리법 위반이다. 처음 듣는 죄명이었는데 알고 보니 송유관에서 기름을 빼먹다 잡힌 케이스였다. 평소에도 다른 재소자들과 말을 나누지 않는 등 자기 세계에 빠져사는 인물이라고 했다."어떤 사람들이 교도소에 오는 것 같나요?" 김진태 교도관에게 물었더니 꽤나 철학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 같아요. 자기 성찰도 부족하고…. 범죄자들은 편협한 성격에다가 자기 의견을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만 집중하는 것 같아요."김길수가 그랬다. 김은 '정보공개청구'라는 제도를 악용해 교도관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교도소내 사소한 행정까지 문건을 공개하라고 청구하는 것이다. 그동안 김이 요구한 청구에 대해 교도소측이 계산해보니 3만2340장에 인쇄비만 174만원이 들었다. 순전히 교도소 업무량을 늘려 골탕 먹이려는 수작이라는 것이다. 지능범이 따로 없었다.◆교도관의 일상=1990년대 후반 교도소에 첫발을 내디딘 김정환 교도관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1998년에 들어왔는데 동기 7명 중 5명이 이직했어요. 그 중 상당한 이유가 교도관들이 지는 책임감 때문이었어요."교도관 한 명이 적게는 60명에서 많게는 200명의 재소자들을 관리해야하는 게 우리나라 교정행정의 현실이다.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다. 관리 대상자들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17일 저녁 6시30분. 기자는 다른 교도소처럼 복도 한 가운데에 책상을 갖다놓고 창살너머로 재소자들을 바라보았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재소자들이 "아, 이거 뭐야"하고 큰 소리를 냈다. "담당님, 그런 거 안 하셔도 됩니다" 이방 저방에서 메아리처럼 소리가 들려왔다. 창살에 갇힌 건 재소자들인데도 기자가 동물원 짐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앉은 복도에 죄수들만 많았다. "이 담당님, 참 말 안 듣네" 십분여 가량을 기자와 눈싸움 하더니, 보라미 방송국(전국 교도소내 방송국)이 틀어주는 드라마로 이내 눈길을 돌렸다. 바보 취급하기로 한 것이다.이곳 춘천 교도소는 근무실이 따로 있어 복도에서 지킬 필요가 없지만 아직도 다른 교도소들은 이런 식으로 감시를 하는 곳이 많다. 따로 근무실이 없어서다. 이 때 많은 교도관들이 기자가 느낀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다. 복도에 앉아 근무를 서면 오히려 재소자들이 교도관을 불쌍한 표정으로 본다. 얼굴 표정도 재소자들이 더 밝다. 재소자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 위험하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근무를 서다 몇년 전 한 교도관이 재소자들에게 살해당했다고 한다. 창살 너머, 재소자와 교도관 사이에 긴장이 흘렀다.신참 교도관으로 분장한 기자는 재소자들을 만날 때마다 위축됐다. 저녁식사를 끝낸 6시30분. 나란히 늘어선 감방을 다니며 약을 건네줬다. 가벼운 감기약부터 심장약까지 서울의 중간급 병원에서나 처방받을 수 있는 것들이다. "담당님, 처음 오셨나요?" "네, 오늘 처음 왔습니다" 규정상 교도관은 재소자들의 약을 삼키는 것까지 확인해야한다. 약을 몰래 모아뒀다 엉뚱한 데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정대로 하려고 하자, 기자 보다 두 뼘이나 커 보이는 재소자가 눈을 부라렸다. "끝까지 보실 거 없습니다, 예?" 마지막 억센 억양이 그와 나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창살사이로 흘러나왔다. 순간 움찔한 파장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래도 교도관들은 뛰었다=휴게실에서 최근규 교도관과 잠시 커피를 마셨다. 2시간씩 이어지는 근무를 마치면 이런 달콤한 시간이 교도관들에게 주어진다. 비상식량으로 나오는 건빵을 함께 먹었다. 휴게실에는 커피 자판기와 컴퓨터가 있다. 그런데 갑자기 호출이 들렸다. "긴급환자가 발생했다" 17일 밤 9시 25분이었다. 다른 교도관과 함께 환자가 발생했다는 1동으로 뛰어갔다. 12방에서 교도관과 기동순찰팀이 환자를 들 것에 싣고 있었다. "조심조심, 빨리!" 환자는 호흡기를 끼고 있었다. 들 것에 몸을 얹자마자 장수남 기동순찰팀장을 비롯한 교도관들이 구급차를 향해 달렸다. 교도소 구획마다 통로를 차단하는 철문도 이때는 활짝 열려 있었다. 200미터 남짓한 감방과 구급차까지 거리가 고속도로처럼 뚫렸다. 온몸의 땀구멍이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대기하던 구급차에 도착해 열린 뒷문으로 환자를 옮겼다. 시동이 걸린 차가 교도소를 떠나고 시계를 보니, 오후 9시28분. 환자발생에서 이송까지 딱 3분이 걸렸다. 안도했다. 그런데 교도소 밖으로 나가는 듯 움직이던 구급차가 이상하게 후진을 하더니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알고 보니, 연습상황이었다. 한달에 한번씩 한다고 한다. "지난 번엔 5분 걸렸는데 이번에 3분 걸렸다"고 다들 자축했다. "혹시 재소자들이 목을 매거나 하면 5분 이내에 이송해야 구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빨리 뛰어야, 사람 목숨을 살립니다. 그래서 이렇게 훈련을 합니다"박현준 기자 hjunpark@<ⓒ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