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건립 후 2년간 수주 전무기술자들의 기술 ‘감’ 유지 위해 옆 조선소에서 얻어와놀이터 미끄럼틀도 만들기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전경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지난해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는 수주 잔량 기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세계 1위에 올라섰다.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사와 더불어 중국 조선사들의 거센 도전을 이겨낸 쾌거다.그런데 거제조선소가 처음 만든 배가 바로 ‘불배’, 즉 어징어잡이용 어선이었다. ‘삼성중공업 30년사’에는 초창기 거제조선소의 일화가 실려 있다.지난 1977년 문을 연 거제조선소가 수주선 건조를 시작한 것은 1979년부터였다. 당시 500여명의 조선 기술자들은 하나같이 어디가도 빠지지 않는 기술의 소유자들이었지만 문제는 본격저인 수주를 시작하기 전의 그 2년여 공백이었다. 이들중에는 조선소 건설 초기인 1974년부터 일본으로 날아가 기술을 배워온 연수생들도 있었다. “유용한 자료를 익히고 돌아갈테니 우리가 돌아가면 머릿속의 자료를 이용해 회사를 발전시켜 달라”는 말을 남길만큼 조선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면 밤낮없이 배울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배워왔다.그런 인재들이 모여 작품을 만들어보자고 했는데, 조선소가 완성되자 세계적으로 몰아닥친 해운 불황으로 인해 수주활동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자칫 긴장감이 풀리고 기왕에 닦은 기술이 퇴보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무작정 수주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기술자들은 새로운 조선사업의 역군이라는 의식을 다지기 위한 방편으로 우선 1000t 바지선과 2600PS 예인선 모으는 일을 시작했다. 일종의 ‘시간 때우기’로 이뤄진 이 작업 덕분에 지금껏 건조작업에서 요긴하게 쓰이고 있는 장치물들을 개발했다.선각공장을 비롯해 목공장, 유틸리티 센터, 대조립공장 자재창고 트러스 제작 등 일련의 작업들과 각종 기초공사 및 도로 포장공사도 이 시기에 다 해냈다. 일에 재미를 붙인 기술자들은 신축 사택의 비품과 심지어 어린이 놀이터 미끄럼틀까지 만들어냈다.그러다 거제조선소에서 최초로 배, 불배 4척을 만들었다. 이 소형 어선 제작건은 인근 S조선에서 어렵사리 따내 온 것이었다. ‘조선쟁이들이 일손 놓고 있으면 기술이 녹슨다’는 위기감에서, ‘기술에 녹이 슬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이 작은 배라도 만드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일이었다.이후 삼성중공업은 호주 선주로부터 수주한 석유시추보급선을 건조함으로써 명실공히 수출선 1호를 기록하게 된다. 전장 64.4m에 총 2100t급이었으니까 이전의 오징어잡이 어선의 규모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하지만 조선소 초창기 기술자들에게는 오히려 보잘것 없는 ‘불배’ 4척이 더 큰 의미로 가슴에 남는다고 한다. 바로 값진 기술을 ‘녹슬지’ 않게 해준, 아울러 스스로가 ‘조선쟁이’임을 각자에게 일깨워 준 고마운 배였으니 말이다.삼성중공업 관계자는 “그 때 만든 미끄럼틀은 이제 녹이 슬었을 테고, 그걸 타고 놀던 아이들은 이제 다 큰 성년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녹슬지 않은 것은 바로 목표를 향한 투혼과 기술을 생명으로 아는 ‘조선쟁이’의 정신이다”고 말했다.<자료: 삼성중공업>채명석 기자 oricm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산업부 채명석 기자 oricms@ⓒ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