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건설부동산부장] 석간신문을 만드는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는 시간은 오전 4시20분. 피곤이 더 번식해 있다. 제일 먼저 욕실로 간다. 겨우내 욕실은 냉기에 차 있다. 군대에서 제대하기 직전 연대장은 나를 포함한 제대예정자들에게 한 가지 당부를 했었다. "여러분 일어나서 제일 먼저 이를 닦으세요. 그러면 인생이 행복해질 겁니다." 연대장은 이 얘기를 40여분간이나 늘어 놓았다. 아마도 지금껏 이를 닦으라는 말을 그처럼 실감나게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연대장은 하사관으로 출발해 대령에까지 이른 사람으로 사병들에게 매우 존경받았다. 그의 행복 전도는 뜨거웠다. 그러나 약속이나 맹세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는 제대하자마자 연대장의 당부를 잊었다. 지난해 초부터 내게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출근 준비가 달라졌다. 예전엔 밥 먹고, 세수하고, 옷 입는 순서로 출근 준비가 이뤄졌다. 지금은 이를 닦고, 세수하고, 밥 먹고 옷을 입는다. 순서가 조금 달라진 것이다. 예전 출근 준비는 30분 이상 소요된 반면 순서가 바뀌고 나서 20여분으로 줄었다. 이것이 연대장이 말한 행복인가. '시간이 절약되는 거?' 출근 수단도 승용차에서 버스와 전철로 바꿨다. 이렇게 변하고 나서 제대한 지 25년이 지난 지금 난 그날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어쨌든 일어나 제일 먼저 이를 닦지 않는가…!' 그런데 아직껏 일어나 제일 먼저 이를 닦으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변화가 인식되어질 무렵에서야 제대할 당시 연대장과의 약속이 왜 생각났는지도 그렇다. 연대장은 알고 있는데 나는 알 수 없는 행복? 일단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이를 닦았으니 행복해지기로 하자. 본래 행복이란 게 특별할 거 없고, 또 잘 모르지 않는가. 여섯시 정각 2호선 강변역. 나는 정확히 외순환열차의 뒤편 다섯 번째 칸에 오른다. 다섯 번째 스크린 도어 양 옆으로는 롯데리아와 에이즈 예방광고가 펼쳐져 있다. 네 번째 칸으로는 이십대 여성 한 사람이 오른다. 나는 그녀와 몇 차례 눈이 마주친 적 있다. 나는 그녀와 몇 차례 눈을 마주치고서야 그녀가 늘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 시간 시청 방향으로 움직이는 외순환선 뒤편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녀가 검은 옷만 입고 있다고 느끼던 날 다섯 번째 칸에는 세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 검은 옷을 입었다는 걸 알아챘다. 얼른 헤아려 본다. 모두 마흔세 명 중 마흔 사람이 검은 옷을 입었다. 대부분 졸고 있다. 차라리 검은 이불을 덮고 있는 것 같다. 그 시간 전철을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노동자들이다. 작업복 차림도 많다. 몇 사람은 구분이 간다. 내 앞 정면에 앉은 초로의 사내 둘은 빌딩 경비, 그 옆에 매일 졸고 있는 아주머니는 '24시간'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하는 것이 틀림없다. 음울한 풍경이다. 나는 곧 이들이 검은 옷을 벗고 화려한 날개 옷으로 갈아입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열차에서 내릴 때는 지상으로 비상하는 상상을 한다. 내가 가진 겨울 양복은 세 벌이다. 모두 검은 색이다. 다만 옅거나 줄무늬가 있는 정도일 뿐이다. 그래도 열차 안에서 양복을 입은 사람은 나뿐이다. 왠지 이질감이 든다. '이런 때는 행복하다는 마음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 거지? 우울한 풍경을 어떻게 이기지? 내일은 화사한 옷이라도 갈아 입을까….' '아! 행복에는 어떤 마취가 필요한 것 같다.' 스스로 마취당하지 않고, 스스로 그게 행복이라고 세뇌하지도 않아도 알 수 있는 행복… 그런게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이규성 건설부동산부장 peac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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