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기자
서재혁이 상상밴드 데뷔를 앞두고 찍은 프로필 사진
서재혁은 어렵게 용기를 냈다. 반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 “멜로디 수정이나 방향성만큼은 심도 깊게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어요.” 조심스럽게 올려 본 김태원의 표정은 선그라스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뒤 돌아오는 답변으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무엇이 문제로 보이는데? 말을 해야 알지.” 적극적으로 의견을 수용하겠다는 대답이었다. 부활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부활표 발라드'라는 방향성을 제외하면 모든 상의가 가능해졌다. 일정 멜로디 삽입이나 삭제는 물론 키를 달리해 수차례 녹음을 시도했다. 힘든 내색을 보이는 멤버는 없었다. 오히려 부활을 엄마의 품처럼 따뜻하고 편안하게 느꼈다. 활발해진 소통에 서재혁은 많은 것을 익혔다. 음악인의 고집이 대표적이다. 이전까지 심오한 음악을 논하며 잘난척하는 아티스트를 경멸했다. 그러나 내부에서의 표출은 팀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태원이형에게 배운 것이 참 많다. 리더라기보다 선생님에 가깝다(웃음). 게을러보여도 음악에서만큼은 자기생활을 포기하고 달려들 만큼 열정적이다.” 많은 교류 끝에 낳은 일곱 번째 앨범. 수입은 저조했지만 분명 달라진 점은 있었다. 대중의 부활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러했다. 매니아 층까지 생겼다. 팬클럽 ‘부활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생긴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이종길 기자 leemean@<ⓒ아시아경제 & 스투닷컴(stoo.com)이 만드는 온오프라인 연예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