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후학위해 열정 쏟는 과학계 최고 원로</B>
박찬모(74)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한국 과학계의 최고 원로로 꼽힌다.그는 경기고를 수석 졸업한 뒤 1958년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마치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는 미국 매릴랜드 주립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 그후 매릴랜드대 전산학과 교수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다. 박 이사장은 그렇게 시작된 미국생활 30년을 꼬박 채운 후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오랜 친구였던 김호길 박사(포항공대 초대 총장 ㆍ 1994년 작고)와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세우자'며 굳게 맺은 약속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결국 박 이사장은 30년 미국생활을 훌훌 털어버리고 포항공대(현 포스텍) 컴퓨터공학과 신임 교수로 한국에 정착하게 된다. 박 이사장은 나중에 포스텍 4대 총장을 맡아 '좋은 대학'을 직접 이끌고 운영함으로써 친구와의 약속도 어김없이 지켜냈다.그는 1960년대부터 컴퓨터 분야를 연구해 온 정보기술(IT) 분야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북한과의 IT 및 과학 교류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2005년부터는 '평양 과학기술대학교' 설립을 위해 전면에 나서기도 했다.과학계라는 좁은 마당에서 박 이사장의 지칠줄 모르는 의욕적인 활동은 당연히 도드라질 수 밖에 없었고, 마침내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는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 선거 캠프에서 교육과학기술부문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선 후에는 정책자문위원으로 비중있는 했다. 박 이사장은 특히 지난 1년 반 가량 대통령 과학기술특별보좌관을 맡으면서 이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보좌하게 된다. 박 이사장은 이 대통령 취임 초기에 '대통령이 과학기술계를 무시하고 IT 업계를 홀대한다'는 식의 비판이 터져나오자 그 같은 목소리를 여과없이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국가성장동력의 밑거름이 될 '한국연구재단'의 초대 이사장에 오른 그의 취임 일성은 바로 "연구자 중심의 연구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여가 시간에는 주로 빠른 걸음으로 산책을 즐긴다. '고진감래'의 정신으로 꾸준히 가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이 대한민국 과학기술계를 활짝 꽃피우는 자양분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B><주요이력></B>-1935년 충남 천안 출생-1958년 2월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1969년 1월 미국 메릴랜드대학원 공학박사-1990년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임용-2003년 9월 ∼ 2007년 8월 포항공대 총장-2005년 11월 ∼ 현재 평양과학기술대학교 공동 설립위원장-2008년 7월 대통령실 과학기술특별보좌관 -2009년 6월 한국연구재단 이사장대전=노형일 기자 gogonhi@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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