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욱기자
<br /> 손욱 농심 회장은 요즘같은 위기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는 '위기관리'가 기업경영의 핵심 요소라고 강조한다. 손 회장이 농심 회장 취임후 가장 먼저 설치한 부서가 바로 위기관리팀이다. <br /> 박 사장과 본지 권대우 회장이 현 경제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함께 나름의 해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서 위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 나가야할지 손 회장께서는 지혜를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전쟁터에 나가 싸움에 열중해야할 장수가 왜 틈만 나면 兵書를 들추겠습니까? 거기에 현실의 어려움을 타개해 나갈 전략과 전술의 기초가 있기 때문이죠. 기초가 튼튼해야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경영여건돌파법도 나오게 않겠습니까? 저는 이런 때 일수록 원점으로 돌아가 기본기를 단단히 익혀두는 일에 몰두하곤 합니다. -손회장께선 삼성에서 청춘을 바쳤고 그곳에서 잘나가는 CEO였습니다. 어느 누구 못지않게 삼성을 잘 아는 분이지요. 고 이병철 회장은 같은 시기, 같이 출발한 다른 기업인보다 큰 기업을 일구었습니다. 지금의 삼성이 있게 한 DNA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고 이병철 회장은 파고, 파고, 또 파고 들어가는 성격이지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앞으로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를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일류경영자들을 들여다보면 이런 공통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고 이병철회장이나 이건희회장이나, 그의 아들인 이재용전무 모두 그런 DNA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소한 문제라도 근본을 따진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경영자이건 일반직원이건 "왜 그런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거기에서 답을 찾아내는 DNA를 말씀하시는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고 이병철회장님이 주재하는 회의는 항상 긴장의 연속입니다. 그가 주재하는 회의는 "이야기 해봐라"로 시작됩니다. 이 말 외엔 회의 내내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 보고하는 사람은 회의가 예고되면 며칠 밤을 세워서라도 철저하게 준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요하고 완벽하게 문제에 접근하는 그에게 잘 못 걸리면 사표를 써야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문제이든간에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어야 하고, 진짜원인이 무엇인지, 잠재된 문제는 없는지, 그래서 '이렇게 추진하겠다'는 결론까지 보고해야 합니다. 보고가 끝나면 그의 질문은 "그것만 하면 다 되느냐"입니다.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일을 제대로 진행하는 그의 경영스타일은 오늘날의 CEO들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CEO의 가치관과 열정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같은 위기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당장의 수익창출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생사가 갈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좋은 지적입니다. 고 이병철 회장은 이 나라가 잘 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항상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에버랜드의 설립 과정이 그렇지요. 그는 75%가 산악지대인 우리나라에서 산을 어떻게 하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바꿀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삼성이 나서 이 모델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에버랜드는 산골짜기 외진 곳이 아니었습니까? 그는 400만평이 넘는 그곳에 과실수를 심어 고부가가치산업으로 키워보려다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가셨습니다. 에버랜드의 전신은 자연농원입니다. 그때 여기에는 기업형 양돈장이 있었습니다. 환경오염이라는 벽에 부딪히지 않고 그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됐더라면 지금 우리나라는 네델란드처럼 육가공부문에서 경쟁력을 가지게 됐을 것입니다. -돈을 벌면서도 사업보국, 국가와 민족이 잘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했던 것습니다. 다소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뜻이 그만큼 중요하지요. 목표를 세우고 혼을 바치는 의지는 그래서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사업초기 연수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육생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모습을 본 고 이병철 회장은 "교육생이 이러면 삼성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기업에서 기강, 정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죠. 삼성정신이 그때 구체화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사업스타일을 들여다보면 한국 최초로 무언가를 하려고 했을 때, 예를 들어 책임경영을 한다, 싱크탱크를 만든다는 등 이런 것들이 모두 한 줄기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뤄졌습니다. 물론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초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한번 마음을 정하면 초지일관 끝까지 간다는 마음가짐이 남달랐습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도 이같은 측면이 강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정 회장은 믿고 맡겼습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면에서는 현대가 더 잘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건설 프로젝트의 경우 "이건 당신의 책임이야"하고 맡기고 거기서 성과를 내면 더 큰 덩어리를 맡기는 등 확고한 성과지향적 매니지먼트를 근간으로 해서 현대그룹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목표가 정해지면 혼을 바쳤지요. 포스코에 가보면 魂이라 글을 새겨 모든 직원들이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의미이겠지요. 세계 초일류기업이 된 비결이 그것이 아닐까요? -농심회장께 삼성얘기를 자꾸 한다는게 이상합니다만 기본을 충실하게 한는 것, 목표를 1등에 맞춘다는 것, 혼을 바쳐 일을 제대로 하게 하는 것이 초일류기업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다시 생각해 봅니다. 농심과 삼성은 기초체력이 다를텐데 어떻게 접목시켜 나갈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회장의 철학 가운데 하나가 기본을 확실하게 갖추고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삼성의 냉장고나 TV가 일류가 된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가장 핵심적인, 즉 심장이 되는 부분을 제대로 갖췄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 있어 성공의 근간이 되는 부분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제대한 한다고 하는 사람한테 맡겨 성공할 때까지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 회장이 의복의 국산화를 추진해 제일모직을 설립했을 1950년대, 자금도 넉넉치 않아 당시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시점인데도 인재들을 뽑아 호주로 유학을 보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인재들을 호주에 보내 양모를 어떻게 선별하는 지에 대해 배워오게 하고 또 독일로도 보내 직물가공 기술에 대해 배우게 했습니다. 즉 인재를 파견해 올바른 선진기술을 배워오게 하고 설비도 최고만을 갖추게 하는 등 이 회장은 성공의 요체, 즉 석세스 팩터(Success Factor)를 확실하게 정하고 이에 대해서는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하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초창기부터 제일주의, 완벽주의를 밀고 나갔던 것이죠. -이젠 농심을 이끌어가는 사령탑에 올라앉았습니다. 삼성과 농심의 문화는 차이가 크지 않을까요? 여건과 체력이 다른 농심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는데 필요한 DNA는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취임직후 전자업계의 삼성전자같은 농심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던데요. 농심만의 DNA가 기대됩니다. ▲저도 지금까지 배운 것들은 다 삼성식입니다. 오늘의 삼성은 고 이병철회장의 경영철학에 이건희 회장의 변화 리더십이 프러스 알파가 됐습니다. 혁신과 도전으로 변화를 이룬 것이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됐습니다. 농심문화는 어찌 보면 심플합니다. 예컨대 농심 오너인 신춘호 회장의 역량은 상품을 개발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 회장은 몰입을 통해 고객의 니즈를 읽어내는 분입니다. 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길게는 3년 가량을 그 하나에만 매달리는 것입니다. 몇 분 얘기하다 보면 다시 연구얘기로 돌아가고 대화의 90% 이상이 소비자 입맛에 맞추는 제품개발 얘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처럼 농심은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잡념을 배제하고 몰입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이 신 회장을 비롯한 농심의 강점이죠. - 개발 부문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주변의 돌아가는 상황은 물론, 마케팅에서 약해진 부분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 회장도 그렇게 판단하고 손 회장을 CEO로 모셔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신 회장은 제품 개발에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도 본인처럼 다 일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신 회장은 개발 부문에 대해서 그림을 그리고 이끌어가는데 열정적입니다. 본인이 그렇게 하면 마케팅 등 나머지 부분들도 최고가 될 것이라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경영환경에서 한 가지 분야에서의 최고로는 부족합니다. 업무프로세스가 수직 관계보다 수평 관계가 중시되는 상황에서는 상호간 어떻게 시너지를 내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다른 분야의 변화 요구를 받아들여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수적입니다. 농심이 한 분야에서 깊이가 있지만 그동안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부분이 다소 약했습니다. 예전에는 위에서 지시를 하달하기만 하면 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병렬식으로도 연결할 줄 아는 T자형 매니지먼트가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