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낙규기자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했을때 대규모 미군증원병력과 장비를 최전방으로 신속배치할 수 있는가를 숙달하는 ‘키 리졸브’(Key Resolve) 한미 연합훈련이 지난달에 실시됐다. 이 모의훈련에서 적군의 역할을 맡아 침투작전을 감행한 특전사는 31개 부대 침투목표를 100% 성공함으로써 전술력을 인정받은바 있다. 특전사의 강인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독수리부대(오장환 대대장중령 학군27기)가 7박8일간 진행한 육상침투 및 산악극복훈련장을 지난 13일 찾아갔다.
17:00
충북 괴산군 율리저수지에 도착하자 오전 중에 고공강하(HALO:High Air Low Open)훈련을 마치고 투입된 특전사 장병들이 대기중이었다. 2400피트 상공에서 이루어진 훈련인지라 아직도 장병들 얼굴에는 긴장의 여운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장병들은 산악행군을 출발하기 전, 25kg 군장과 소총을 메고 출발대오를 갖췄다.
중대장이 건네준 군장과 전투조끼를 착용하자 몸의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면서 자연히 허리가 굽혀졌다. 군장에는 전투화, 군복은 물론 개인로프, 전투식량까지 훈련에 필요한 물품이 완비된 상태였다. 이날 행군할 거리는 총 35km 불빛하나 없는 산속을 뚫고 목표지점까지 도달하는 임무라고 했다.
힘찬 출발을 한 지 1시간쯤 지나자 장병들은 일반 성인남성보다 빠른 걸음으로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기자는 1시간반만에 수통 2개의 물을 비운상태였다.
염희관 중대장(대위 진)은 “물을 많이 마시면 탈수상태가 오게 되며 중대원 한명이 낙오할 경우 작전수행은 물론 전시상황에는 중대원 생명까지 위태롭게 만든다”며 물통을 매몰차게 빼앗아갔다.
19:00
그 어느 때보다 기다려진 식사시간. 옅은 어둠이 깔린 마을 외곽길에서 식판을 땅바닥에 놓은 채 식사를 해야 했지만 식탐은 어느 때보다 왕성했다. 하지만 과식은 금물. 행군할 때 과식을 할 경우 구토증세 등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군장을 다시 메려 하자 군장의 무게는 천근만근이었다. 이제부터 해발 594m의 설운산 험한 산길이라는 귀띔과 함께 의장모를 눌러쓰고 길 없는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둠은 벌써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깔렸고 녹음이 짙어가는 숲을 헤치고 행군하는 것은 그야말로 눈을 가리고 올라가는 셈이나 다름없었다. 종아리 뒷부분과 허벅지가 당겨오기 시작했고 힘을 줘보지만 산을 차고 올라가는 것이 버겁기만 했다.
21:00
전술훈련때에는 통상적으로 주변동태를 살피며 전진을 해야 하기 때문에 10m 이동에도 5분 이상 소요된다. 하지만 이번훈련은 신속침투가 목적이기에 숨 쉴틈조차 없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어슴푸레 비치는 달빛은 길의 윤곽을 드러내 주었고 앞장선 장병의 뒤꿈치만 보며 산을 올라온 지 2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상에 도달하기에는 턱없는 거리였다. 산의 비탈조차 만만치 않아 손을 산길에 붙여 네발로 기어올라가는 모양새였다. 새끼발가락에는 벌써 물집이 잡혀 통증이 몰려왔다.
기자로 인해 중대의 행군속도가 점점 떨어지자 오장환 대대장은 중대의 속도가 쳐질 경우 중대원들이 더 힘이 든다는 설명과 함께 군장을 내려놓으라고 권유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군장을 풀고 다시 중대원들과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23:00
설운산 정상에 도착하자 체력저하로 인해 온몸의 근육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길이 아닌지라 낙엽을 밟을 때마다 마치 기름이나 윤활유를 밟은 듯 힘이 풀린 몸은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군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몸의 균형조차 잡기 힘든 상태였다.
이날 선두에서 행군의 첨병임무를 맡은 임재우 선임담당관(중사)은 “전술훈련을 비롯한 산악급속훈련에서 첨병이 위치확인은 물론 뒤에 따라오는 중대원들의 거리조절까지 철저히 관리해야만 신속정확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4:00
새벽 찬기운이 섞인 이슬이 이마의 땀과 함께 뒤범벅된 상태였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안전통제관들이 음료수를 한 병씩 나눠주었고 중대별로 공터에 앉아 위치확인을 하고 개인장비점검을 서둘렀다. 기자로 인해 뒤쳐진 중대는 별도 휴식시간 없이 전진하기로 했다. 다리 통증으로 인해 중대장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나때문에 중대가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에 묵묵히 걸을 수밖에 없었다. 어둠 속 도로를 걸을 때는 잠깐잠깐 정신이 몽롱해지기까지 했다.
01:35
괴산군 달천 물줄기를 따라 행군하다 맞이한 5분의 짧은 휴식시간. 군장을 등받이삼아 쳐다본 밤하늘의 별들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야심한 새벽 피로감은 극도에 달하고 몸은 지치기 시작했지만 목표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독려를 위안삼아 휴식을 끝내고 또 다시 길에 올랐다. 30여분을 걷자 도착한 산악훈련장. 장병들의 희열감과 함께 엷은 미소는 쌓였던 피로감과 발바닥의 물집조차 금새 잊게 만들었다.
공군을 일반병으로 제대하고 재입대한 신원길 중대장(대위 학사 46기)은 “특전사라는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은 힘든 임무를 완수했을 때”라며 “임무여부와 상관없이 극한상황에서도 소수정예 장병들의 치밀한 팀워크로 대응준비가 돼있는 것이 특전사”라고 덧붙였다.
03:30
막사에서 잠을 청할줄 알았던 기대감은 사라지고 야외에 A형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3인이 들어가 잠을 청할 텐트를 희미한 가로등 아래서 설치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분. 금세 만들어진 보금자리는 비좁고 바람이 솔솔 들어왔지만 장병들은 산악행군으로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 생각에 흐뭇해 했다.
혹한기 훈련때는 보통 눈쌓인 땅을 파고 그 안에서 잠을 청하는데 그것에 비하면 별다섯개 호텔과 같다는 것이 장병들의 설명이다. 또 잠들기전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찬물에 샤워를 하면서도 오히려 물이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06:00
얼마나 잠을 잤을까. 기상나팔소리와 함께 장병들이 텐트에서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지친모습이었지만 물집으로 인해 절룩거리는 장병하나 없다는 것이 마냥 놀랍기만 했다.
전날 1위로 목표지점에 도착한 박철범 중대장(대위 학군 42기)은 “장병들은 매일 8km구보 등 기본체력훈련은 물론 강도 높은 훈련에 몸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정도 훈련은 거뜬하게 치를수 있다”고 설명하며 “10박11일 천리행군도 겪어온 장병들인 만큼 이 정도의 행군에 낙오되는 특전사 병사는 나올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08:00
일부 중대원들이 산에 올라가 AM(P-950K)통신장비를 이용, 여단지휘소에 음호전달을 시작했다. 통신을 위해 산중턱까지 올라간 중대원들은 주파수 여부를 확인한 후 작전의 실패 성공여부를 암호를 이용해 본대에 음호로 전달하는 것이다.
전시상황에서는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으며 특히 통신장비를 이용할 때는 한 곳에서 장문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장소를 이동해가며 단문을 전파한다.
13:00
산악장비 조작, 암벽타기 기술을 숙달하기 위한 극복훈련을 위해 이동한 장소는 도명산 화양계곡. 아직도 풀리지 않은 뻐근한 다리를 이끌고 1시간 30분만에 도착한 산꼭대기에는 50m 높이의 아찔한 암벽이 자리잡고 있었다. 암벽 훈련을 위해 조교들은 재빨리 암벽정상에 올라 코스별 로프를 설치했고 장병들은 완전군장과 철모를 조이며 자기차례를 기다렸다.
높이 ·폭·경사에 따라 총 6코스로 나뉘어진 암벽훈련장에서는 슬래브등반, 일반레펠, 등강기등반, 전면하강 등을 훈련하게 되며 신속 정확한 훈련의 성과가 있기까지 반복훈련이 지속됐다.
특히 장병들이 군장과 소총을 정위치 한채 50m아래로 직면 하강할때는 마치 벽에 붙어다니는 날쌘 표범과도 같았다.
14:00
장병들의 순서가 끝나고 기자의 차례가 돌아왔다. 몸에는 3중으로 설치된 안전로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프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머리위에 서있던 조교는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겁을 먹어 로프를 계속잡고 있다간 손이 암벽에 긁혀 찰과상을 입을 뿐 아니라 로프와 암벽사이에 손가락이 끼는 경우가 생기면 더 큰 부상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암벽정상 아래 10m 지점에서 로프에 손을 놓고 바위에 온몸을 붙여 암벽등반을 시도했다. 군장의 무게 때문인지 그 상태로 몸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손가락을 이용해 틈새바위를 쥐고 발 앞꿈치를 이용해 조금씩 전진해보려 했지만 좀처럼 쉽지 않았다. 결국 2m 높이를 올라가다 조교의 손에 이끌려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훈련에 참가한 한 병사는 “부사관과 장교를 주축으로 이루어진 부대특성상 장병들은 자신노력에 의해 고난도 훈련까지 소화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전시상황에서는 어떠한 위기상황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누구의 강요 이전에 자기 자신이 충분 할 때까지 훈련에 임한다”고 덧붙였다.
15:00
부대에 돌아오자 일부 병사들이 자루에 모래를 채우며 저울에 무게를 맞추고 있었다. 날이 흐려 텐트주변 빗물을 막으려 정비하는 줄 알았지만 다음날 아침 군장에 30kg짜리 모래주머니를 넣고 다시 더욱 난이도 높은 산악훈련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들었던 중대원들을 뒤로 한채 땀으로 뒤범벅된 전투복을 벗었다. 장난도 곧잘하던 중대원들과 그새 정이 들었는지 24시간을 함께 보내고도 떠나기가 마냥 아쉬웠다.
독수리부대 오장환 대대장은 “정신력까지 빈틈없이 무장한 장병들은 주특기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팀워크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며 “이런 정신과 신체가 뒷받침될때 비로소 진정한 정예요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사진=윤동주 기자 doso7@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