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우의 경제레터] 동물과의 대화

인간과 동물이 교감을 할 수 있을까요. 영화 ‘워낭소리’가 관객 200만 명을 돌파하는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팔순 할아버지와 그가 30여년 길러 온 늙은 소와의 관계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소는 보통 15년을 산다는데 할아버지의 소는 장수하며 할아버지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최고의 농기구이고, 유일한 자가용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귀가 잘 안 들리지만 희미한 소의 워낭 소리는 귀신같이 들었고 한 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소 먹일 풀을 베기 위해 매일 산을 오릅니다. 소 역시 제대로 서지도 못 하면서 할아버지가 고삐를 잡으면 산 같은 나뭇짐도 마다 않고 나릅니다. ‘워낭소리’는 늙은 소를 매개로 우리의 고향과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고 각박한 대도시의 현대사회에서 누리지 못하는 순수하고 느린 삶을 느끼게 합니다. 무뚝뚝한 할아버지와 무덤덤한 소, 둘의 꾸밈없는 일상에서 관객들은 잔잔한 감동을 받습니다. 요즈음의 ‘속도전’을 거부하는 느림의 미학이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케 하고 생활의 느긋함을 선사합니다. 영화 자체의 울림만큼이나 현대 사회에서 접할 수 없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입니다. 또 할아버지와 소와의 30년 동반은 인간과 동물이 함께 만드는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늙은 소의 워낭소리는 갈수록 우리에게 더 깊은 감동과 여운을 줄 것 입니다. 영화의 두 주인공처럼 우리는 주변의 동물을 보면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통하고 있음을 종종 느낍니다. 집에서 기르는 동물들은 물론 지나가는 애완동물과도 서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착각을 간혹 느낄 때도 있습니다. 과연 어떤 대화가 가능할까. 얼마 전 인간이 동물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책과 TV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었습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는 리디아 히비는 20년간 수천마리의 동물들과 대화를 하였답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와 고양이, 말은 물론 야생동물과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생활을 담담히 적은 <동물과 이야기하는 여자>란 책에서 동물의 감정은 깊고 진하며 동물은 어느 누구보다도 정직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동물을 대할 때 보다 마음을 열고 대하면 동물들도 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합니다. “동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즐거웠고 나는 산책길에 만나는 동물과도 가벼운 눈인사를 나눴다. 물론 몸짓과 느낌을 통한 대화였지만 나는 동물들이 ‘행복해, 슬퍼, 배고파’라고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동물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속 깊은 마음과 따뜻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들의 마음속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동물과 대화를 시도했고 고교시절엔 동물원에서 자원봉사를, 대학은 수의학과에 진학해 수의간호사 공부를 한 뒤 낮엔 동물병원 간호사, 밤에는 말 목장에서 숙식을 하며 말을 관리해 왔답니다. 비어트러스 라이데커라는 스승을 만난 뒤 본격적인 대화법을 배웠으며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정확히 동물과 대화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 중 어느 말 모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한 목장을 방문했을 때 태어난 지 석 달된 귀여운 망아지와 어미 말을 만났다. 망아지는 커서 마장마술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이미 어느 정도 마장마술의 기본까지 알고 있었다. 주인에게 망아지의 희망을 전하니 주인은 깜짝 놀라며 어떻게 망아지가 마장마술을 아느냐고 의아해했다. 어미 말이 이야기하길 자기는 예전에 마장마술 훈련을 받았던 말로 새끼에게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이나 말이나 세상을 가르쳐 주는 첫 스승은 어머니라는 공통 사실이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그녀는 이외에도 인간과 동물의 운명적인 만남, 학대받은 동물들의 아픔, 몽니를 부리는 강아지 이야기, 도그쇼 무대에서의 추억, 스스로 안락사를 택하는 고양이 이야기, 야생동물과의 위험했던 순간 등 많은 대화를 소개합니다. 한결같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감동적이고 그들의 세계가 넓고 따뜻함을 느낍니다. ‘워낭소리’의 늙은 소도 아마 할아버지와 우리는 모르는 수많은 대화를 나눴을 것입니다. 또 동물들의 세계에는 그들만의 생활과 질서가 있습니다. 동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지금도 신기하게 느끼는 것은 기러기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이동할 때 V자 대형을 유지하며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각각의 새가 날개를 저으며 따라오는 새에게 상승기류를 만들어 줘 비행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기러기 무리는 혼자서 날아가는 것보다 최소한 70%이상의 먼 거리를 날아갈 수 있답니다. 동물들의 질서와 신뢰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모두 감동입니다. 우리가 채 모르는 세계에서 동물들은 우리에게 사랑과 감동, 경의를 선사합니다. 그러나 정녕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항상 무엇인가 부족한 느낌입니다. 서로 다투고 질시하고 이기하며 살아갑니다. 요즈음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그나마 남았던 따뜻함마저도 식어간다고들 합니다. ‘워낭소리’의 울림과 주변의 동물들이 선사하는 감동을 통해 이제껏 지켜온 우리의 가치를 한번쯤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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