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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적들①] 포퓰리즘과 가짜뉴스가 망친 국민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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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빨라지는 국민연금 적자·고갈 시점
정치권, 알면서도 연금 개혁은 미적지근해
집권하면 입장 바꾸고 상대 당 공격하기도
'연금 더 못 받는다'식의 가짜뉴스도 원인

편집자주국민연금에 빨간불이 켜졌다. 연금 받는 노인이 늘고, 돈 내는 근로자가 줄어든다. 기금이 고갈된다는 심각성은 진즉 제기됐지만, 조금 내고 많이 챙겨가는 국민연금 시스템은 십수년째 그대로다. 방치되다시피 한 국민연금은 건강하고 탄탄한 선진복지사회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국민연금을 개혁하겠다며 칼을 빼 들었지만 앞길은 험난하다. 연금개혁에 대한 장애물들이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개혁을 지체시켰던 장애물들은 논의가 본격화되면 또다시 연금개혁을 좌초시키려 할 가능성이 크다. 연금개혁의 방해꾼이 누구였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관련기사> '개혁의 적들'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국민연금은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보험이다. 근로자가 국가에 일정한 보험료를 내면, 나이가 들었을 때 연금의 형태로 받는다. 국민을 노후 빈곤으로부터 보호하고,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보장하며,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핵심제도다.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국민연금 제도를 위해 보건복지부는 2003년부터 5년마다 국민연금의 재정을 계산한다.


성큼 다가오는 ‘연금적자’
[개혁의 적들①] 포퓰리즘과 가짜뉴스가 망친 국민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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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적자가 되는 연도와 기금이 완전히 고갈되는 연도는 갈수록 빨라지는 추세다. 2013년 3번째 점검 때만 해도 적자연도는 2044년, 고갈연도는 2060년이었다. 하지만 2018년 4번째 점검에서는 적자연도와 고갈연도가 각 2042년과 2057년으로 단축됐다. 보건복지부는 내년인 2023년 5차 점검결과를 내놓기 위해 평소보다 두 달 빠른 이달 ‘재정추계위원회’를 꾸릴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추계에서도 적자·고갈연도가 앞당겨질 것으로 보고 있다. 2020년 국회예산정책처는 적자연도와 고갈연도를 각각 2039년, 2055년으로 예상했다. 정부가 추정한 시점보다 2~3년 빠르다.


국민연금 재정건전성이 악화한 건 저부담-고급여 체계 탓이다. 국민연금은 9%의 보험료율로 최소 40%의 소득대체율을 보장한다. 개인과 회사가 급여의 9%를 내고 본인 평균 소득의 40%를 연금으로 받는다는 의미다. OECD 회원국들이 평균 18.4%의 보험료율로 42.2%의 소득대체율을 보장하는 것을 고려하면 심각하게 불균형한 구조다. 일본은 보험료율을 2003년 13.6%에서 2017년 18.3%로 인상했고 독일은 18.7%, 미국은 12.4%를 낸다.


그럼에도 1988년 국민연금 제도 시행 이후 개혁은 1998년과 2007년 단 두 차례뿐이었다. 2000년대 들어 진보·보수진영을 막론하고 연금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노무현 정부를 제외하고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포퓰리즘에 기댄 정치, 연금개혁을 망치다
[개혁의 적들①] 포퓰리즘과 가짜뉴스가 망친 국민연금


이러한 배경에는 표를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정략이 있다. 연금개혁이 국민에게 인기 없는 정책인 만큼 이를 추진하려는 상대 정당을 공격하는 용도로 활용했다는 뜻이다. 2002년 대선 당시 유력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가 "연금을 깎자"고 제안하자 노무현 후보가 "용돈제도가 된다"며 반대한 게 대표적이다. "국민연금의 적자를 어떻게 막을 것이냐"는 이 후보의 지적에도 노 전 대통령은 "(연금 깎기는) 발상부터 잘못됐다"며 맹비난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당선 이후 원래 견해를 뒤집고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연금개혁에 나섰다. 정부안에는 9%인 보험료율을 2030년까지 15.9%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60%에서 50%로 낮추자는 방안이 담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당이었던 한나라당에서 발목을 잡았다. 배일도 한나라당 의원은 2007년 대정부 질의에서 유 전 장관에게 "연금개혁은 노후생활 보장을 위한 것"이라면서 "국민이 왜 개혁 때문에 피곤해야 하냐"며 비난했다.


결국 2007년 보험료율을 그대로 둔 채 2028년까지 소득대체율을 40%로 떨어뜨리는 안건이 통과됐지만, 이 과정에서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기초연금’ 방안을 수용하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났다. 취약계층 노인에게만 지급하던 노령수당이 기초연금으로 바뀌면서 전체 노인의 70%에게 지급하는 보편적 복지가 됐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에 힘입어 대상을 늘리고 1인당 금액은 적게 받는 방식으로 변질돼 노인빈곤 문제가 더 심각해졌고, 소득대체율 조정은 더 까다로워졌다.


대선 때마다 기초연금이 10만원씩 오르면서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문제도 대두됐다. 현 정부는 기초연금을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는데, 부부합산 기준 금액(64만원)이 국민연금 평균금액(55만원)을 넘게 된다. 공짜로 받는 기초연금이 국민연금보다 많은데 왜 성실하게 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인기 있는 정책만 쫓았던 정치인들이 연금개혁을 더 어렵게 만든 셈이다.


국민연금 불신(不信) 키우는 가짜뉴스
[개혁의 적들①] 포퓰리즘과 가짜뉴스가 망친 국민연금


국민연금 개혁안이 나올 때마다 불거졌던 가짜뉴스도 원인 중 하나다. 참여정부가 작성한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 개혁을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안티사태’가 꼽혔다. 안티사태는 2004년 5월 ‘국민연금의 8대 비밀’이라는 제목의 글이 인터넷에 떠돌면서 시작된 반(反) 국민연금 운동이다. 국민연금이 가입자에 불리하다는 내용이었지만 대부분 거짓이었다. 이 가짜뉴스로 국회에 표류해있던 연금법 개정안의 처리가 더 어려워졌다는 게 당시 참여정부 관료들의 설명이다.


가짜뉴스가 지금까지 횡행하면서 원활한 개혁논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올해 초에도 한국경제연구원에서 ‘90년대생이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는 취지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기금이 고갈되는 것과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이를 동일하게 표현한 것이다. 상당수 국가에서 기금 없이 연금을 지급하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과 먼 표현이다.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을 받지 못 받는다는 식의 주장은 곧 국민연금 축소와 사적연금 활성화를 위한 것"이라며 "세대 갈등과 제도 불신을 부추기는 방식이 합리적인 연금개혁 논의를 가로막고 있다"고 꼬집었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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