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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의 책 한 끼]'사법농단' 진실 추적…누굴 위한 법원인가
최종수정 2019.08.23 14:44기사입력 2019.08.23 14:44

두 얼굴의 법원 / 권석천 지음 / 창비 / 1만8000원

[김효진의 책 한 끼]'사법농단' 진실 추적…누굴 위한 법원인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직 시절, 이른바 '양승태법원' 시절 자행된 사법농단은 은밀하면서도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었다. 대법원장 중심으로 짜인 전체 법원의 위계구조와 이를 뒷받침하는 법원행정처는 판사들이 일선의 동료 판사들을 관리하고 심지어 사찰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이해하기 어려운 재판 지연은 양승태법원 사법농단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이라는 분석이다. 대법원은 2012년 역사적인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2013년 일본 전범기업의 재상고가 접수된 뒤 2018년 확정 판결이 나오기까지 5년이나 묶여있었고, 이 사이 피해자 9명 중 8명이 숨지고 말았다. '법원 내의 마피아 조직'으로 비유되는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은 양심을 저버린 채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건을 만들어냈고 더러는 청와대 및 정부 고위인사들과 접촉하며 재판개입을 도모한 것으로 의심받는다. 전직 대법원장(양승태)이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은 이처럼 뿌리 깊은 사법농단의 결과물이다.


법조기자로 잔뼈가 굵은 저자는 '두 얼굴의 법원 : 사법농단, 그 진실을 추적하다'에서 이제껏 불거진 사법농단의 이면을 심층적으로 기록하고 고발한다. 부당한 지시에 저항해 사표를 던짐으로써 사법행정권 남용의 실체를 드러낸 이탄희 전 판사와의 인터뷰가 출발점이다. 아울러 기자 시절 만난 수많은 취재원들의 증언과 관련 자료 검토, 재판 취재를 통해 사건의 시작과 대법원의 자체조사, 검찰의 수사 및 재판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충실하게 담아냈다. 마치 소설과도 같은 서사구조와 상황묘사가 몰입감을 높인다. 이탄희 당시 판사가 사표를 낸 후 세 차례 이어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의 전화통화는 왜 사법농단 사태가 벌어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임종헌이 이탄희에게 말한다. "이 판사, 행정처 다른 심의관 자리는 어때? 아니면 재판부로 돌아가는 건?" 이탄희는 "그냥 조용히 사직서만 처리해주시면 법원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알게 된 내용은 제가 안고 가겠다"고 답했다.


그가 법원행정처와 고위 판사들로부터 받았던 회유와 부당한 지시, 압박, 선배 판사들의 정치적인 언행 등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는데, 이 모든 게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나하고 여기, 여기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연구회 공동학술대회가 언론에 보도되지 않도록 해주세요" "인사권자에게 보은해라" "판사 뒷조사 파일이 나올 텐데 놀라거나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 이탄희가 이런 고비를 어떻게 넘어섰을까. 유능한 조직원이 되느냐, 좋은 판사로 남느냐, 공적 가치냐, 조직논리냐의 기로에서 그가 얼마나 외로운 결단을 내렸는지를 보면 삶의 기준을 설정하는 방식의 의미를 새삼 느끼게 된다.


책의 3~5장은 양승태법원에 이어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에 진행된 세 차례의 진상조사 과정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우여곡절로 점철된 진상조사가 어떤 저항과 한계에 부딪혔는지에 대한 생생한 증언들이 담겨있다. 이탄희를 비롯해 진상조사기구의 관계자들, 당시 법원행정처 간부, 일선 법원 판사 등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에 놓여있던 이들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펼쳐진다. 당시 드러난 문건들과 증언들로 조사 과정을 재구성해낸 것만으로도 자료적 가치가 이미 높다는 평가다. 양승태법원 당시 이뤄진 1차 조사의 한계점을 되짚은 대목이 특히 눈에 띈다. 판사들의 들끓는 진상규명 요구 속에서 시작한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는 대대적인 관련자 조사에도 불구하고 진실규명의 핵심이었던 법원행정처 컴퓨터를 조사하지 않는 데서 명백한 한계를 드러냈다. 이탄희는 조사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진상규명에 협조하지만 "양쪽 다 다치지 않게 할게"라는 말로 대표되는 법원 내부논리의 벽에 부딪히고 만다. '판사 블랙리스트'가 일부 판사들의 일탈로 인한 해프닝 차원이었다는 결론이 결과물이다.

다행인 건 조사가 너무 부실했던 탓에 의혹을 오히려 증폭시켜 판사사회의 진상조사 요구가 더 커졌다는 점이다. 김명수 신임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 2차 조사를 통해 법원행정처의 컴퓨터까지 들여다봤다. 법원 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을 뒷조사했음이 명백한 증거로 입증됐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선고 등 각종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충격적인 문건들이 몸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양승태법원 당시 진행된 1차 조사 때 진실을 덮으려고 법원행정처 간부와 심의관들이 입을 맞춘 사실도 드러났다. 이어진 3차 조사에서는 임종헌 전 차장 등 사법농단 사건 핵심 관련자들의 컴퓨터가 추가로 조사됐다. 이를 통해 상고법원 추진 과정에서 대법원이 청와대와의 거래를 구상하고 내부 여론을 단속하는 문건들이 발견되는 등의 성과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문건의 내용과 법원행정처 판사들의 행태는 법원이 그동안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움직였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문건에 언급된 '사법부'는 누구를 말하는지, 문건 작성이라는 '브레인스토밍'이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왜 판사가 법원행정처라는 행정ㆍ관료 조직에서 일하면 안 되는지도 고스란히 파악할 수 있다. 3차 조사는 이처럼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으나 '블랙리스트'는 없었고 형사처벌도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그쳤다. 결과적으로 블랙리스트의 개념은 1~3차 조사를 거치는 동안 '판사 뒷조사 - 전체 판사들 동향조사 - 인사상 불이익 검토 - 인사상 불이익 실행' 등으로 수차례 변모하며 '없던 일'로 귀결된다.


조직논리 때문에 법원 내부적인 자정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판사 징계나 탄핵소추 등 조사 이후의 조치가 충실히 이뤄지지 않은 채로 사건은 검찰 수사라는 틀에 갇히게 된다. 책의 7장은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이라는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를 통해 한국 법원의 재판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차갑게 해부한다. 대법원(법원행정처), 청와대(외교부) 그리고 일본 기업의 재상고를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삼각 편대'를 이뤄 재판에 관여했다. 법원은 상고법원 등 양승태법원이 추진하는 정책을 실현할 목적으로 청와대와 협조할 필요가 있었고 청와대가 원하는 결론이 나오게 할 방안을 찾기 위해 법원행정처가 중심이 돼 다양한 방안을 모색했다. 행정부가 재판에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고, 재판을 지연시킬 수 있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심지어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액을 줄일 수 있는 방안까지 앞장서서 고민했다. 법원과 사법권이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며 실제로는 어떻게 존재해왔는가.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대한 서늘하고 묵직한 대답이다.

[김효진의 책 한 끼]'사법농단' 진실 추적…누굴 위한 법원인가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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