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최근 급히 이동을 해야했던 필자는 일흔은 족히 넘어보이는 백발의 운전기사가 모는 택시를 탔다. 어려움은 탑승 직후부터 시작됐다. 목적지를 말하는 필자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는지 세 번을 연신 물었다. 운전기사는 내비게이션 검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작은 터치패널이 익숙하지 않아서 계속 오타를 쳤고, 결국 필자는 "제가 해드릴게요" 제안했다.
큰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는데, 신호가 바뀌는 것을 뒤늦게 인지한 운전기사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사고를 가까스로 모면하기도 했다. 뒷자석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탑승했던 필자는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좁은 골목길에서 행인이라도 불쑥 튀어나온다면 이 운전기사는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고령의 운전자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년 퇴직 후 안정을 원하는 분, 70~80세 노후까지 돈을 벌고 싶은 분'이라고 적힌 택시회사의 채용 광고는 이 같은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이미 고령 운전자 문제는 전세계 공통 관심사다.
올해 초 97세 고령의 나이에 운전대를 잡다 교통사고를 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남편인 필립 공이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해 화제가 됐다. 필립 공은 충돌사고 후 즉시 사과했지만 사고 이틀 만에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다시 운전대를 잡아 비난을 샀다. 지난달 일본에서도 87세 고령 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아내와 딸을 잃은 남성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조금이라도 불안하다면 운전을 하지 않는 선택지도 생각해달라"고 호소했다. 우리나라도 12일 경남 양산 통도사 입구에서 고령 운전자 김모(75)씨에 의해 1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당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고령운전자 300만명 시대다. 75~79세 이상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가 지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새 14%나 증가한 상황은 대책 마련이 시급함을 보여준다. 고령 운전자가 스스로 면허증을 납부하는 경우 강력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생계목적으로 영업용 차량을 운전해야 하는 고령층은 별도 분류해 적극 관리하는 정부의 세심함이 필요한 때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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