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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원만한 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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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 "우리 금융부문은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크지 않고 대체 가능성이 높으며 외환보유액도 충분한 수준이다. 설사 일본 측이 금융분야 보복조치를 하더라도 그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지난달 18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통해 한 말이다. 앞서 최 위원장은 지난달 5일에도 "금융기관들의 신인도가 매우 높아서 일본이 돈을 안 빌려준다고 해도 얼마든지 다른 곳에서 빌릴 수 있다"고 했다.


최 위원장이 연거푸 일본 자금 유출에 대해 "걱정 없다"고 강조한 것은 시장 일각에서 이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고 계속 제기됐기 때문이다. 금융은 대표적인 내수 산업인데다 일본 비중도 높지 않아 일본의 경제 보복 영향이 크지 않은 산업이다. 지난 3월말 기준으로 일본계 은행의 총여신은 18조3000억원가량, 국내 은행들의 전체 여신 1827조원의 1% 수준이다.


그런데도 20여년 전 외환위기 당시 일본계 자금이 가장 먼저 빠져나간 기억을 소환하며 불안을 얘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일부는 도쿄발 금융 쓰나미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일본계 은행의 국내 대출 160억달러, 제3국에 있는 일본계 은행으로부터 빌려온 역외금융 300억달러로 총 460억달러인 반면 한국은행 외환보유액 중 현금성 자산은 200억달러, 은행-기업-정부가 보유한 순현금예금 226억달러로 합치면 426억달러에 불과하다"고 비교했다. 단기간 일본계 자금이 빠져나가면 외화유동성 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다.


언뜻 보면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낮은 시나리오다. 해외에 투자된 돈을 한꺼번에 빼려면 상당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미국조차 미국 은행들에게 중국이나 이란에서 자금을 빼라고 직접 말하진 못하는 이유다. 경제 위기 상황이 아닌 정치적 이유로 금융기관이 한꺼번에 돈을 뺀다면 해당 금융기관의 신뢰도가 크게 훼손된다. 더구나 국내 은행들의 신용등급은 일본 은행보다 높아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조달도 원활하다. 오히려 일본 은행들만 국제금융시장에서 외면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최종구 위원장이 "교수 한두분의 말을 인용하면서 금융당국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비웃고 비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비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일본계 비중이 적은 은행권에 대한 불안이 잦아들자 일본계 자금의 비중이 큰 서민금융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를 통해 국내에 풀려있는 일본계 자금이 17조원이 넘으니 서민금융시장이 일본 공격에 취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이런 우려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기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계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들도 자금은 대부분 국내에서 조달하고 있고, 일본 자금의 직접 차입규모는 미미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저축은행은 인수당시 출자금을 제외하고 일본 자금의 직접 차입이 없고, 대부업체는 전체 차입금 11조8000억원중 4000억원만 일본 차입금이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의 일본인 대주주 입장에서 정부 시책에 맞춰 한국시장을 압박할 방법은 신규대출을 안 해주고 만기 연장을 거부하는 것인데 이는 영업을 포기하는 자해행위나 마찬가지다. 회사를 파는 것도 쉽지 않다. 저축은행의 경우 대주주 적격성 심사와 적기 시정조치 등의 견제장치를 감안한다면 헐값 매각조차 어려울 수 있다. 경제 전쟁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엄중한 상황에서 '유비무환'의 자세로 작은 위험요인이라도 점검하는 것은 나쁠 게 없다. 다만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불안을 확산시키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상대방에 대한 공포가 너무 커지면 전쟁을 하기도 전에 이미 패배한 것이다.



"일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을진대 원만히 타협하여 일본의 제의를 수용하고 우리 요구도 관철하는 것이 좋다." 을사조약을 맺으면서 이완용이 한 말이다.






전필수 기자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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