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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사남' 열풍 잇는다…계유정난 27년후 창극 '보허자' 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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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9~29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안평이 살아남았다면' 전제로 극 전개
'몽유도원도' 안견·안평의 딸 무심 등장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 제7대 왕 세조(수양대군)가 계유정난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동생인 금성대군과 조카인 단종을 사사한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다음달에는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하는 창극이 무대에 오른다.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은 오는 3월19일부터 29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창극 '보허자(步虛子): 허공을 걷는 자'를 공연한다. 보허자는 계유정난이 발생한 지 27년 뒤 역사의 어둠 속에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세조가 죽인 또 한 명의 동생 안평대군이 주인공이다. 보허자는 지난해 초연 당시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보허자'는 고려시대 송나라에서 전래돼 조선 궁중음악으로 자리 잡은 악곡으로, 무병장수와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축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창극 보허자는 '허공을 걷는 사람'이라는 악곡 명칭의 함축적 의미에 집중했다. 작품은 자유롭고 평온한 삶을 동경하지만, 현실의 굴레에 묶여 발 디딜 곳 없이 허공을 거니는 듯 위태롭게 살아가는 인간의 운명을 은유한다.

'왕사남' 열풍 잇는다…계유정난 27년후 창극 '보허자' 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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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본을 집필한 배삼식 작가는 안평대군이 유배 8일 만에 사사(賜死)되었으나, 무덤이나 비문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역사적 공백에 주목했다. 배 작가는 '안평이 어딘가 살아있었다면'이라는 가정 아래, 그가 사라진 27년 후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계유정난이 발생한 지 27년이 지난 뒤 안평의 유일한 혈육인 딸 무심이 노비 신분에서 풀려나면서 시작된다. 무심과 '몽유도원도'를 그린 화원 안견, 그리고 안평의 첩이었던 대어향은 폐허가 된 수성궁 터에서 추억을 나누다 안평을 기억하는 이름 모를 '나그네(안평)'와 그를 따라다니는 수양의 혼령을 만난다. 이들은 안평이 꿈에서 본 낙원을 그린 몽유도원도가 보관된 대자암으로 함께 여정을 떠나고, 그 속에서 과거 갈망했던 꿈과 비참한 현실을 함께 마주하게 된다. 작품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삶이 무참히 꺾여버린 이들의 발걸음을 통해 현실의 무거움 속에서도 저마다 품고 사는 '불가능한 꿈'에 대해 깊은 사유의 질문을 던진다.


연출은 연극계가 주목하는 젊은 연출가 김정이 맡는다. 김정 연출은 초연의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밀도 있는 전개를 위해 일부 장면을 보완했다. 김 연출은 "저마다의 상실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위태로운 줄타기를 이어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며 "폐허가 된 현실 위로 흩날리는 복숭아 꽃잎처럼 관객들의 삶에 깊은 공감과 고요한 위로가 전해지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작창과 작곡은 국립창극단과 다수의 작품을 작업한 음악감독 한승석이 맡고, 창극 '심청', 작은창극시리즈 '옹처'의 장서윤이 작곡가로 합류한다. 거문고, 25현 가야금, 생황, 양금 등 선율악기 위주의 반주로 서정성을 극대화했고, 궁중음악인 보허자의 결을 살리기 위해 그간 창극에선 거의 사용하지 않은 철현금, 운라, 편종, 편경을 적극 활용했다. 또한 시를 읊는 듯 관조하는 노랫말에 주목해 시김새나 부침새 등 화려한 기법을 덜어낸 담백한 창법으로 초월적 정서를 강조했다. 이번 재공연에서는 장태평 지휘자가 새롭게 합류해 국악기 편성의 14인조 라이브 연주로 몰입감을 높인다. 처연한 선율 사이로는 현대무용가 권령은의 안무가 더해져 인물들의 들끓는 내면을 현대적인 움직임으로 직조해 낸다.

'왕사남' 열풍 잇는다…계유정난 27년후 창극 '보허자' 재연

무대디자이너 이태섭은 '꿈의 폐허'를 키워드로 비극이 휩쓸고 간 자리를 시각화했다. 거친 질감의 합판으로 재현한 무너진 기둥과 난간은 비극의 잔해를 상징하며, 무대 중앙의 거대한 언덕은 인물들이 걸어온 고단한 생의 여정을 형상화한다. 특히 후반부 무대 위로 흩날리는 복숭아 꽃잎과 함께 펼쳐지는 '몽유도원도' 장면은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며 작품의 백미로 꼽힌다.


'나그네(안평)' 역의 김준수, '수양' 역의 이광복을 비롯해 안평의 딸 '무심' 역에 민은경, 안평의 꿈을 그려낸 화가 '안견' 역에 유태평양 등 보허자 초연 때 참여했던 국립창극단 간판 배우들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대자암의 비구니 '본공'과 '도창' 역에는 중견 단원 김미진이, 안평이 사랑했던 여인 '대어향' 역에는 이소연이 새롭게 출연해 신선한 에너지를 불어넣을 예정이다. 모두 35명이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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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단종을 향한 충심과 권력을 둘러싼 비극적 서사가 큰 사랑을 받고 있다"며 "단종을 지키려 했던 안평대군과 왕좌를 향해 치달았던 수양대군, 두 형제의 엇갈린 삶이 회한 가득한 노래와 압도적인 소리로 그려져 영화와는 또 다른 창극만의 묘미를 경험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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