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AI 비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세상
'통신비 반값 인하'
선거철만 되면 등장하는 단골 문구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 의사를 밝힌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시가 주도하는 '서울형 제4 이동통신사' 설립 구상을 발표하며 서울 시민에 반값 이하 초저가 통신요금 선택지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가계 통신비를 반드시 줄여야 하는 생계비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통신비가 낮아지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가계 통신비가 인플레이션의 주범이라는 오래된 인식 때문에 선거철마다 통신비 인하 압박을 받아온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통신사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기자가 만난 통신사 임원 가운데 한국의 통신비가 비싼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명도 보지 못했다. 이들의 억울함에도 논리는 있다.
단말기 할부금과 통신요금이 결합해 청구되는 한국의 통신비 구조상 스마트폰의 가격 상승은 곧바로 소비자가 체감하는 '월 통신비'의 급증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요금할인 혜택을 받기 위해 통신사 요금에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구독료를 포함하는 경우도 많다. '스트림플레이션(Streamflation)'으로 불리는 콘텐츠 구독료 인상이 있을 때마다 이 비용은 고스란히 통신사 청구서에 반영돼 소비자들의 체감 통신비 부담은 높아진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난해 가계통신비는 2021년 이후 4년 만에 내려갔다. 해킹사태를 겪은 통신사들이 소비자 신뢰 회복을 위해 파격적인 통신비 인하 카드를 꺼내 든 것이 5G 중저가 요금제 다양화와 알뜰폰 시장 확산 효과와 맞물린 결과다. 실제로 정부가 통신비 인하를 압박할 때 근거로 쓰는 가계 통신비 통계에는 이러한 상황들이 반영돼 있지만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통신비는 내려가지 못했다. 선거철만 되면 통신비가 여지없이 정치인들의 쉬운 타깃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 25일(현지시간) 글로벌 무대에서 3세대 인공지능(AI) 스마트폰 '갤럭시 S26' 시리즈를 공개하며 AI를 일부만을 위한 특권이 아닌 누구나 매일 사용하는 기본 인프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단말기 가격을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기업도 노력했겠지만, 환율 및 부품 비용의 동반 상승으로 사양이 가장 높은 울트라 512GB 모델은 처음으로 200만원이 넘는 가격표를 달게 됐다. 통신사들은 AI 활용 환경에 발맞춰 AI 데이터센터, 안정적인 망 구축, 보안 등과 같은 인프라 확충에 더 적극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앞으로의 가계 통신비 부담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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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을 넘어 AI 서비스 활용 비용의 성격까지 가진 통신비 청구서에 언제까지 낮은 가격이 옳다는 틀을 갖다 대야 할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정치권이 선거철 표심을 얻기 위해 '통신비 인하' 프레임을 고수할수록 통신사들의 AI 인프라 투자 동력은 꺾일 수밖에 없다. 통신비 명세서에 찍힌 숫자를 억지로 깎아내는 데 골몰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이 AI 인프라를 더 강하게 하고 혁신적인 AI 경험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지 독려하고 감시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할 때다. 200만원짜리 최첨단 AI 비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방대한 글로벌 콘텐츠를 누리는 대가를, 과거 피처폰 시절의 낡은 생계비 인하 프레임으로 옥죌 수는 없다.
박선미 IT과학부장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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