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통계 '가짜뉴스' 논란 확산
정부 감사 착수에 경제단체 자체 쇄신·외부 전문가 검증체계 도입
야권 "비판 억압 우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 중회의실에서 경제단체 긴급현안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이날 회의 참석자들은 최근 상속세 관련 대한상공회의소 보도자료에서 촉발된 '가짜뉴스'사안에 대해 인식을 공유하고, 유사사례 재발 차단을 위한 방안 등을 논의했다. 산업통상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대한상공회의소의 '고액 자산가 해외 유출' 통계 인용 논란과 관련해 전면 감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도 내부 검증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공식 사과했다.
김 장관은 9일 대한상의를 비롯한 6개 경제단체 상근부회장들과 긴급 현안 점검회의를 열고 최근 대한상의 보도자료에서 촉발된 이른바 '가짜뉴스' 논란에 대해 "대한상의를 소관하는 주무장관으로서 국민들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상속세 부담에 자산가 유출 세계 4위'라는 표현은 법정경제단체로서 공적 책무와 책임을 망각한 사례"라며 "국민과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정책 환경 전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심각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산업부는 해당 보도자료의 작성, 내부 검증, 대외 배포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해 즉각 감사에 착수했으며, 감사 결과에 따라 담당자 문책과 법적 조치까지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단순 해명 수준을 넘어 제도적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라는 설명이다.
김 장관은 특히 대한상의가 인용한 통계의 출처가 전문 조사기관이 아닌 이민 컨설팅 업체의 추계에 불과하고, 해당 자료 어디에도 상속세 언급이 없음에도 자의적으로 상속세 문제로 연결해 해석했다고 비판했다. 또 보도자료에 포함된 '최근 1년간 국내 백만장자 2400명 유출' 주장에 대해서도 "국세청 통계상 연평균 139명 수준에 불과해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날 회의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 고환율 등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경제단체의 현장 애로와 정책 간극을 점검하기 위해 마련됐다. 대한상의,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6개 단체가 참석해 통상 환경 변화에 대한 공동 대응 필요성에 공감하는 한편 통계와 정책 메시지의 신뢰성이 시장 안정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번 사안의 엄중함을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부는 이달 말부터 주요 단체 및 협회와 정책 간담회를 정례화해 정부 정책과 산업 현장 간 소통을 상시화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정부 감사 착수와 맞물려 대한상의도 같은 날 공식 입장문을 내고 내부 검증 체계를 전면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이번 사안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향후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외 발표 자료의 작성과 배포 전반에 걸쳐 내부 검증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통계 신뢰도 검증과 분석 역량 제고를 위해 조사·연구 담당 직원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즉시 시행하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확대 실시할 예정이다.
또 사실관계와 통계에 대한 다층적 검증을 의무화하기 위해 통계 분석 역량을 갖춘 박양수 대한상의 SGI 원장을 팩트체크 담당 임원으로 지정했다. 박 원장은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과 경제연구원장을 지낸 경제통계 전문가로, 2023년부터 대한상의 SGI 원장을 맡고 있다. 대한상의는 외부 전문가를 활용한 독립적 검증 체계도 도입해 발표 자료의 정확성과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역시 미국 출장 중 이번 사안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책임 있는 기관으로서 데이터를 면밀히 챙겼어야 했다"며 사무국을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상의는 산업부 감사와 별도로 자체적으로 책임 소재를 파악해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내부적으로는 연구·통계 부문의 조직 운영 방식까지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대한상의는 지난 3일 '상속세수 전망 분석 및 납부 방식 다양화 연구' 보도자료에서 상속세 부담으로 한국을 떠난 고액 자산가가 2400명으로 급증했다고 발표했으나 근거로 제시한 영국 이민 컨설팅사의 조사 기준과 방식이 부실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논란이 확산됐다. 상속세 제도 개편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해당 수치가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랐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일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사익 도모와 정부정책 공격을 위해 가짜뉴스를 생산해 유포하는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며 "더구나 법률에 의한 공식 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가 이런 짓을 공개적으로 벌인다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권자 국민의 판단을 흐리려는 고의적 가짜뉴스는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 대통령의 질타 이후 정부 고위 인사들도 잇따라 목소리를 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부유층 2400명이 상속세 부담 때문에 한국을 떠난다는 것은 가짜뉴스다. 추계 자료는 신뢰도가 매우 의심스러운 통계"라고 지적했고, 임광현 국세청장도 "지난 3년간 해외 이주 신고자는 연평균 약 2904명이며, 이 중 자산 10억원 이상 신고자는 연평균 139명에 불과해 통계가 왜곡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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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감사 착수와 대한상의의 자체 쇄신 조치가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대응 수위를 둘러싼 이견도 이어지고 있다. 야권은 정부가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문책과 감사까지 거론한 것은 과도한 대응이라는 입장이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잘못된 통계 인용의 문제는 바로잡을 수 있으나, 대통령과 정부가 직접 나서서 법정 경제단체를 몰아붙이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며 "정부는 비판을 억누르기보다 사실 검증과 공개 토론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여권에서는 "공적 영향력이 큰 단체일수록 통계 인용에 더욱 엄격한 책임이 따른다"며 감사 착수는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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