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지연' 빌미로 상호관세 25% 통보…고심 깊은 李대통령
새 국면에 진입 분석도…통상 흔들어 안보까지 압박 수순
'통상 분야 방어 vs 안보 분야 진전'…강경·유화책 목소리 갈려
국회, 내달 9일까지 '대미투자특별법' 입법 마무리 계획
입법과 별개로 불확실성도 존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방적인 '15→25% 상호관세 재인상' 통보 이후 향후 대응 전략을 두고 청와대 내부에서도 미묘한 온도 차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에 담긴 내용과 달리 미국 측이 '대미(對美)투자특별법 입법 지연'이라는 엉뚱한 이유를 들어 관세 재인상 통보를 한 만큼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기류와 함께 통상 분야에서 미국 측 요구사항을 보다 적극적으로 청취하면서 핵추진잠수함과 우라늄 농축·재처리 등 안보 분야의 후속 협상을 이어가도록 해야 한다는 기류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8일 청와대에 따르면 이런 강온 기류 속에 이재명 대통령이 수시로 회의를 열어 상황을 관리하고 있지만, 최종 결정자로서 고심은 깊어지는 모양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관보 게재를 막기 힘들고, 한미 통상·안보 협의가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법안 발의=관세 인하'로 이미 명문화한 동맹 간 합의 내용과 달리 미국이 일방적인 해석을 앞세워 한국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은 오는 11월 중간선거 캠페인에 필요한 가시적인 투자 성과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입법·행정 절차가 어떠하든 간에 트럼프 행정부에 유리한 결과물을 지속해서 요구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라는 시각이다.
실제 미국 측 메시지는 최근 들어 '이행 속도'에 맞춰져 있다. 트럼프는 관세 재인상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힌 뒤 "우리는 한국과 함께 해결책을 마련할 것(We'll work something out with South Korea)"이라며 새로운 협상의 틀을 예고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만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도 한미 통상 합의 이행과 관련해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귀띔했다고 한다.
동시에 미국 정부는 한국이 투자 이행을 뒷받침할 대미투자특별법 처리와 함께 농업·디지털 분야 등 비관세 분야 약속 이행이 충분치 않다는 취지의 문제 제기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상호관세 협상 과정에서 나왔던 주장을 다시 꺼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조 장관은 핵심광물 회의 참석을 계기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났다고 밝힌 뒤 "그리어 대표는 관세 재인상이 초래할 수 있는 파장을 이해하지만, 한국이 비관세 장벽과 관련한 사안에서도 진전된 입장을 조속히 보여 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해법 두고 靑 내부 목소리 갈려… '통상 분야 방어 vs 안보 분야 진전' 온도 차
이런 한미 간 협상 상황을 헤쳐나갈 해법을 두고 청와대 내부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갈린다. '방어전' 성격이 짙은 통상 협상의 경우 한 번 숫자로 확정되면 되돌리기 어렵고, 추가 양보가 반복되면 '내주면 또 내주는' 구조로 굳어질 수 있다는 경계감이 강하다. 이번 통보가 조인트 팩트시트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인식이 있는 만큼, 엉뚱한 요구에 대한 명분을 인정해주면 또 다른 압박의 문이 열린다는 시각이다. 특히 총 3500억 달러 대미투자 패키지가 한국 경제와 외환 시장에 미칠 충격을 고려해 연간 최대 200억 달러 한도 등 전제 조건을 달았는데, 이런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반면 안보 분야는 '얻어내야 할 협상'이라는 점에서 유화적 해법으로 이번 국면을 넘어서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통상 분야에서 미국의 불만 요인을 최대한 흡수·관리해 트럼프 행정부를 자극하지 않고, 그 틀 안에서 핵추진잠수함과 우라늄 농축·재처리 등 안보 패키지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통상 문제의 불똥이 안보 분야로 옮겨붙기 시작했는데, 미국 측 안보 협상팀이 한국에 오는 일정을 미루고 있는 점이 대표적 사례라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당장 이목은 국회로 옮겨갔다. 국회는 9일 관련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법안을 다듬고, 3월 9일까지 투자 이행을 뒷받침할 법안을 마무리하겠다는 일정에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입법 지연'을 명분으로 삼은 만큼, 우선 그 명분을 제거해 미국이 '25% 복원' 카드를 밀어붙일 빌미를 없애겠다는 계산이다. 그간 국민의힘은 대미투자의 경우 국회 비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대미투자특별법 처리에 반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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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향후 몇 주를 이번 국면의 최대 고비로 보는 분위기다. 국회 일정이 속도를 내면 미국의 재인상 카드는 협상용 압박에 머물 여지가 커진다. 그런데도 법안 처리와 별개로 미국이 연방관보 게재 등 공식 절차에 들어가 25% 복원을 못 박을 경우 통상 불확실성은 곧바로 현실적인 부담으로 전환할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참모들로부터 협상 상황을 충분히 보고 받고 있다"며 "실용을 앞세워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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