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관북리 유적 발굴 성과 공개
기생충 알 나온 구덩이서 횡적 출토
지공 여섯 개로 복원해 시연
"부러진 채 버려져, 깊은 사연 있을 것"
1500년 전 백제인의 입술이 닿았던 숨결이 왕궁의 화장실 구덩이 속에서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5일 충남 부여 관북리 유적(사비기 왕궁 추정지)에서 발굴한 '횡적(橫笛·가로 피리)'과 목간(木簡) 329점을 공개했다. 횡적은 백제 악기의 실체를 과학으로 입증한 쾌거다. 길이 22.4㎝의 대나무관 악기로, 조당(朝堂·조회를 하던 곳) 인근 구덩이에서 납작하게 눌린 상태로 수습됐다.
황인호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장은 "구덩이 내부 유기물을 분석한 결과, 초본류 화분과 기생충 알이 다량 검출됐다"며 "악기가 버려진 곳은 화장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통상적인 환경이라면 진작 썩어 없어졌을 얇은 대나무는 수분과 오물로 버틸 수 있었다. 뻘처럼 형성된 진흙층이 산소를 차단해 미생물 번식을 막는 '진공 포장' 역할을 했다.
오현덕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지하수가 풍부한 곳에서 흙이 덮이면서 산소가 차단되면 유기물이 부식되지 않고 남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X-레이 촬영 결과, 이 악기는 구멍 네 개가 뚫려 있고, 관의 한쪽 끝(취구 쪽 마디)이 막혀 있는 구조로 확인됐다. 가로로 부는 횡적, 즉 현재 국악기 '소금'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발견 당시 악기는 부러져 있어 손가락으로 막는 지공이 세 개(취구 제외)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연구소는 이를 '6지공' 악기로 복원했다. 황 소장은 "중국 문헌에 '적(笛)'의 구멍이 일곱 개(치구 포함)라는 기록과 백제 악기가 전파된 일본의 8~9세기 출토 횡적들이 모두 6지공이라는 점을 고려해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관심사는 '소리'다. 현장에서 복원 악기를 직접 시연한 김윤희 연주자는 "현재의 소금보다 한 음 반 정도 높은 음이 난다"고 밝혔다. 그는 "백제 횡적은 취구가 현재의 소금보다 매우 작아, 소리를 낼 때 호흡 압력이 더 많이 들어가야 한다. 지공 간격 또한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구멍 사이가 좁고,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구멍 사이가 멀어 현대 주법으로는 연주하기가 까다롭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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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고귀한 악기는 어째서 오물 구덩이에 버려졌을까. 단순한 분실이라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황 소장은 "발견 당시 누군가 의도적으로 부러뜨린 흔적이 역력했고, 사라진 30%의 조각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며 "단순 폐기가 아닌, 모종의 깊은 사연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부여=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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