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아시아르포]한국이 캄보디아 납치 사건 앞에 무력한 이유

시계아이콘01분 58초 소요
언어변환 뉴스듣기

해외선 무력한 韓 치안·외교 역량
돈과 권력이 법 위에선 캄보디아
AI발전에 더 짙어진 빈곤과 범죄
선진국은 피해자이자 구조적 공범

[아시아르포]한국이 캄보디아 납치 사건 앞에 무력한 이유
AD

캄보디아 스캠단지의 한국인 납치 피해 사건이 불러온 충격파가 적지 않다. 캄보디아 여행을 계획했던 이들의 취소 행렬은 물론, 인근 라오스·태국·미얀마까지 불안과 공포의 파문이 번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신남방 정책'의 최우선 파트너였던 메콩 지역을 향해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무수한 낙관의 서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지금 그 화려했던 미래 전망은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심지어 동남아시아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온 필자와 동료들조차 이번 사건을 보며 "우리가 이 지역을 너무 긍정해온 건가?"라는 반성의 질문을 던질 정도다.


사실 한국인의 해외 범죄 피해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특별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있다. 이것은 한국의 국가적 치안 역량이 해외에서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이 처음으로 "집단 감각"으로 경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경찰은 매우 강력하다. CCTV 역추적, 신용카드 결제 기록 분석, 실명 기반 통신내역 등을 파악해 한국에서의 범죄 해결은 '데이터의 연결'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한국인이 캄보디아에서 납치·감금되고 스캠 강제노동으로 끌려 들어가는 순간, 이 모든 기술이 무력화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범죄가 작동하는 질서와 환경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권'이라는 벽

한국 경찰의 힘은 한국이라는 영토에서만 유효하다. 캄보디아는 외국의 주권 공간이며, 한국 경찰은 현지 경찰의 협조 없이는 CCTV도 볼 수 없고, 현장에 진입할 수도 없고, 용의자를 붙잡을 수도 없다. 캄보디아 경찰이 협조해 주어야 한국 경찰이 움직일 수 있다. 국제 공조가 필요할 것이라는 상식은 완전히 무너진다. 캄보디아 공권력은 한국식 '법'의 언어가 아니라 '힘'의 언어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캄보디아에 막대한 공적개발원조(ODA)를 제공해왔다. 2022년 1789억원, 2023년 1805억원, 2024년 2178억원, 2025년 4353억원. 3년 만에 2.4배다. 한국이 지정한 27개 ODA 중점협력국 중 가장 가파른 증가 폭이다. 아쉽게도 이러한 숫자는 '범죄 수사' 앞에선 무력해진다. 왜냐하면 캄보디아 지방 경찰조직의 충성 대상은 법규나 국익이 아니라 상급 권력·지역 세력·돈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법'을 따르지 않는다. 돈을 가진 자의 폭력을 따른다.


한국이 몇천억 원을 ODA로 지원했다고 해서 그들이 한국의 요청을 우선시해줄 이유는 없다. 캄보디아에서 7년간 ODA 사업을 수행한 장지순 상명대 특임교수는 "캄보디아 경찰의 충성 대상은 법규나 국익이 아니라 돈과 힘을 지닌 지역의 실력자"라고 지적한다. 이 말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다. 현지 경찰 조직이 범죄 이권을 중재하는 중개인으로 기능하고, 심지어 국가 조직 일부가 범죄 조직 그 자체가 되는 현실을 반영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다. 캄보디아 국경 스캠 콤플렉스는 '국가 공권력'이 독점하는 공간이 아니다. 미얀마 북부 샨주, 태국·라오스 삼각지대와 마찬가지로, 사적 무력+군벌+부패 공무원이 얽힌 권력 생태계가 지배한다. 이 세계에서 법은 선택적이고, 공권력은 때로 범죄 이권을 중개하는 중개인이다. 우리나라 장차관이 찾아간다고 해서 쉽게 해결될 기미가 없다.


빈곤이 폭력이 되는 시대

우리가 글로벌 사우스를 효과적 투자대상지로만 보던 시대는 이렇게 끝나버렸다. 글로벌사우스의 빈곤은 더는 '그 지역 내부만의 위험'이 아니다. 이제는 동시에 사이버 세계를 거쳐 선진국 시민의 안전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반전되고 있다. 제3세계의 빈곤은 이제 "국경을 넘어오는 폭력"이라는 새로운 안보의 위협으로 돌변한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앞으로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글로벌 자본은 '인공지능(AI)·반도체·첨단'에 더 몰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첨단이 집중되는 사이에 그 반대편에선 가난과 폭력의 밀도가 커가고 있다. 캄보디아 북부의 스캠단지, 라오스 국경지대의 사이버 도박 단지, 미얀마 군벌 지역의 암호자산 세탁 플랫폼, 이 모든 것이 바로 피할 수 없는 음지의 산업이 된 것이다.


비단 한국 행정부가 무능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첨단과 빈곤은 서로를 강화하는 악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데이터를 활용한 범죄가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싹트고 도박과 마약, 노예노동이라는 폭력을 동원해 선진국 시민을 공격하는 새로운 세계, 이것이 AI 시대가 만든 냉혹한 현실이다. 우리가 피해자이면서도 동시에 제3세계를 향한 ODA에 인색해야 하지 않을 이유도 된다.


AD

정호재 아시아비전포럼 사무국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