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노트' 25만부 이상 판매
필사는 몸으로 읽는 오랜 독서법
초등학교 시절부터 필사에 매력
'왜 살아야 하나' 고민 속 배낭여행'
돌아와보니 "살아 봐야겠다"
표현력, 참다운 나의 삶에 필수
어휘력도 소통·자아실현의 방법
음악듣기·미술감상 창의적 활동
10분씩만 해도 삶이 풍요로워져
인간(人間)이란 말에는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의 의미가 스며있다.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타인과 관계 맺으면서, 그 안에서 인생의 단독자로 바로 서야 한다는 뜻. 이를 위한 필수적 존재가 대화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능력 또는 자신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바로 관계 맺는 인간을 이루기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일까, 요즘 부쩍 어휘력에 관한 책이 주목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유선경 작가. '어른의 어휘력'(2020), '감정 어휘'(2022),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노트'(2024) '질문의 격'(2025) 등 '어휘·필사·질문' 시리즈는 수십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들 책은 단순히 타인과의 대화기술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먼저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나를 바로 알고, 그런 이해의 토대 위에서 비로소 타인에게 나를 전하도록 인도한다. 주목할 점은 이들 책이 유행에 편승해 급조된 기획이 아니라는 점이다. '필사'란 개념조차 흐릿했던 시기에 스스로 필사를 시작해, '참다운 나'를 발견하기 위해 심한 성장통을 겪었던 그는 오래전부터 표현력의 중요성을 인지했고, 그런 인식이 지금 시점에 세상의 필요와 만나 빛을 발했다. 30년 넘게 라디오 작가로 활동하다, 수년 전부터 전업 작가로 집필에 전념하고 있는 유선경 작가를 만나 '참다운 그'에 관해 물었다.
유선경 작가가 서울 충무로 아시아미디어타워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유 작가는 오래 전부터 표현력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어휘력을 다룬 책들을 출간해 수십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허영한 기자
- 곧 신간이 나온다고 들었다. 어떤 책인가.
▲지난해 발간한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가 25만부 이상 판매되며 너무 큰 사랑을 받았다. 이번에 나올 '하루 한 장 나의 표현력을 위한 필사 노트'는 내용을 좀 더 빌드업했다. 어휘는 말과 글의 최소 단위다. 우리의 생각이나 작용은 대부분 추상이다. 그걸 구체화해서 타인이 공감하게 하려면 표현력이 필수적이다. 어휘를 갖고 어떻게 하면 표현력을 기를 수 있을까에 중점을 뒀다.
- 지금 시점에 필사가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필사는 몸으로 읽는, 오랜 독서법인데, 요즘 독자들은 디지털디톡스를 위해 필사를 한다고 하더라. 디지털의 반대급부가 아닌가 싶다.
- 일상 루틴이 궁금하다.
▲전 항상 똑같다. 20~30대에는 정말 많이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거의 온종일 집에만 있는다. 집필 일정도 2027년까지 꽉 차 있다. 작업이 작업으로 이어지는 일상을 산 지 5년은 된 것 같다. 운동 때 빼고는 거의 집에서 책 읽고, 글 쓰며 지낸다.
- 중학생 때 처음 필사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당시 필사에 대한 분위기는 어떠했나.
▲80년대 초, 제 주변에선 필사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필사라는 용어 자체를 몰랐다. 그냥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이 있으면 자연스레 노트에 옮겨 적었다. 제겐 글에 푹 빠질 수 있는 또 다른 독서 방법이었다.
- 어떤 계기로 필사에 매료됐고, 어떤 방식으로 필사했나.
▲한글을 빨리 떼면서, 6~7살부터 혼자 책을 읽었다. 당시 아동 도서와 청소년 도서가 많지 않아, 어느 정도 읽다가 바로 성인 문학으로 넘어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같은 책을 읽었다. 이해해서 좋다기보다는 막연하게 문장이 갖는 리듬과 분위기가 좋았다. 본능적으로 베끼게 됐다. 문장을 쓰다듬는 것처럼 옮겨 적으며, 일기처럼 생각을 덧붙였다. 굉장한 기쁨으로 필사의 시간을 즐겼고, 지금도 꾸준히 쓰고 있다.
- 30년 넘게 라디오 작가로 일했다.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당연한 일 같기도 한데, 왜 하필 라디오 작가였다.
▲어릴 때부터 글 잘 쓴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주변에선 당연히 문학 쪽으로 갈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어릴 적부터 정갈하고 단정한 사람의 말소리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황인용의 영팝스'를 듣는데 DJ가 "우리 작가가"란 말을 하더라. 그때 라디오에 작가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때부터 작가를 꿈꿨다. 대학교 3학년 때 아는 작가분의 요청으로 형식도 제대로 모른 채 라디오 대본을 썼는데 "잘 쓰네"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라디오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유선경 작가가 서울 충무로 아시아미디어타워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유 작가는 오래 전부터 표현력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어휘력을 다룬 책들을 출간해 수십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허영한 기자
- 직접 해보니 어땠나. 일의 만족도기 높았나.
▲처음 생각한 건 음악프로그램이었으나, 10년가량 시사 프로그램을 맡았다. 90년대는 정치적으로 어마어마한 시대였다. 26살 때였는데, 당시 청취율 1위 프로그램의 팀장이 내일부터 오프닝 멘트를 쓰라고 하더라. 시사에 관심이 전혀 없지는 않았기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당시는 인터넷도 없던 시대라 언론사 가판 신문과 책들을 훑어보며 A4 30장 분량씩 대본을 썼다. 그게 굉장한 훈련이 됐다. 당시 주 6일 생방송을 10년 했더니 일이 몸에 붙더라.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목적이었기에 어느 정도 됐다 싶으면 넘어갔다. 드라마, 다큐, 시사, 문화, 음악 등 모든 라디오 장르를 다 해봤다.
- 일에 특별한 부침이 없었던 것 같은데...
▲사실 많이 잘리기도 했다. 하고 싫은 일은 절대 안 했다.(웃음) 누가 뭔가를 시키면 그게 그렇게 싫더라.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열심히 했다. 돈이나 명예보다 자유가 중요하다. 삶에서도, 일에서도 자유를 최우선시한다.
- 인생에 가장 큰 시련이나 고비는 무엇이었나.
▲19살 때부터 3년 정도 '왜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에 정말 깊게 빠졌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학교는 뭐 하러 다니나 싶어 휴학을 했다. 그리곤 줄곧 죽음을 생각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돌아보니 사회와 가정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전북 부안에서 10살 때 서울로 이사를 왔는데, 그때 5·18 민주화운동이 있었다. 여의도로 이사 오면서 굉장한 빈부격차를 경험했고, 12·12군사반란 때는 군인들의 모습에 공포를 느꼈다. 한국을 떠나는 게 목표였다. 무작정 휴학계를 냈는데, 그런 저를 부모님은 혼내지 않으셨다. 굉장히 고민하시다가 당시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독일에 계신 이모에게 보내셨다. 해외여행 자율화 이듬해였는데, 동유럽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온갖 망명자들을 독일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 그런 고비를 견디고 극복하게 한 힘은 무엇이었나.
▲독일에서 기차표값 빼고 40만원을 들고 배낭여행을 떠났다. 15㎏ 배낭을 메고 40일간 정말 거지 같은 생활을 하며 여행했다. 식당도 이틀에 한 번만 가고, 노숙도 자주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당시는 그렇게 위험하지 않았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오니 가족과 친구들이 내게 "강해졌다"고 하더라. 그전에 '살아서 뭐 하나.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나'라고 생각했다면 힘든 여행을 통해 '살아 봐야겠다'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가 20살이었다. 혼자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 속에서 많은 위험과 호의를 경험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만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 어휘력, 필사력, 질문력에 관한 책을 다수 출간했고, 그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한 요소가 한 사람이 인생의 단독자로 바로 서는 데 끼치는 영향은 얼마나 된다고 보나.
▲어휘력이든 필사든 관통하는 주제는 상통하다. 참다운 나로 살기 위해서는 표현력이 필수적이다. 이건 어릴 적부터 천착했던 주제다. 그냥 사는 게 아니라 '무사히' '잘' 사는 데 관심이 많았다. 무사히 산다는 건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수월히 회복하는 삶이다. 긴 글을 이해하려면 어휘력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면, 질 좋은 정보를 선별해서 자기 삶에 적용할 수 없다. 단순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자아실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생각이란 추상을 어휘로 구체화하는 힘이 없으면 자신의 감정을 파악하기 어렵다. 생각에 자신이 없어진다. 삶의 단독자로 살기 위해서는 나를 알고, 타인과 인간 존재에 관해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짜증난다'는 말에는 분노와 슬픔이 포함되는데, 각기 해결책이 다르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파악해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 책 '질문의 격' 바른 질문의 가치를 강조했다. 본인 인생에 어떤 질문을 건네며 지금, 여기, 오늘에 이르렀나.
▲앞서 이야기했지만 '왜 살아야 하지'란 질문에 깊게 파고들었다. 오래 고민하다 문득 방황이 지속된다는 건 질문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게 됐다. 인생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미는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내 인생의 의미를 어떻게 만들까'를 고민했다.
- 주도적으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들이 항상 지녀야 할 질문 같은 게 있을까. 개인적인 조언을 건넨다면.
▲원하고 바라는 일만 하지 말고, 그렇지 않더라도 현실과 적절히 타협할 줄 아는 게 훗날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때 고려해야 할 건, '주변을 이롭게 하는가' '결과보다 과정에서 기쁨과 배움을 얻을 수 있는가'이다. 특별히 창의적인 생각을 매일 이어가길 바란다. 음악을 들어도 되고, 미술 작품을 감상해도 좋다. 창의적인 활동을 단 10분씩만 해도 삶이 몰라보게 풍요로워질 거다.
- 어휘, 필사, 질문 등으로 콘텐츠 범주를 확장해 왔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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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까지 계약된 책들이 꽉 차 있어 한동안은 관련한 집필 활동을 할 것 같다. 이후에는 변신을 해보려고 한다. 10년 묵힌 아이템인데, 예전부터 세계 신화에 관심이 많았다. 조심스럽지만,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유선경 작가는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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