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불호령 이후 근무시간 개편
SPC 사고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까
이재명 대통령이 기계 끼임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SPC삼립 시화 공장을 찾아 야간 근로 방식과 노동 강도에 문제가 있다며 개선을 주문했다. 그동안 노동자가 죽어도 근로제 개편에 나서지 않았던 SPC는 생산직 야근을 8시간 이내로 제한하고, 야근 수당을 올리는 대책을 내놨다. 그런데 SPC 빵 공장 내 분위기가 이상하다. 노동자들은 위험 요소가 사라졌다고 말하기는커녕 일 하는 게 더 힘들어졌다고 한다. 사고로 바뀐 공장,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걸까.
시간만 줄어드나…근무시간 바꿔도 기계는 멈추지 않는다
이달 1일부터 시범 운영을 시작한 개편안에 따르면 SPC그룹은 노동자의 야간 근로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생산물량을 맞추기 위해 2조2교대를 3조3교대로(SPC 삼립·샤니) 바꾸고, 주간 조와 야간 조를 잇는 연결 조(SPL·비알코리아)를 도입해 맞추기로 했다. 줄어든 임금을 어떻게 보전할지 등 논의는 계열사별 노사 합의에 따라 정한다.
먼저 SPL은 야간근로수당 가산율을 최고 79%로 상향키로 했다. 근로기준법상 야간 근로 수당 가산율이 50%임을 고려하면 꽤 높아진 수치다. 노무·공무직 대상으로는 임시 수당 4만원도 지급한다. 이런 변화를 두고 '동종 업계 대비 파격적인 결단'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런데 여기에 붙은 조건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시아경제가 입수한 SPL 교대제 개편 노사 합의서에 따르면 야간근로수당 가산율을 79%로 올려 지급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2026년 임·단협 종료 시까지다. 합의서에는 '교대제 개편에 따른 임금 지급은 임단협 종료 시까지 한시적으로 적용하기로 한다'고 나와 있다. 그리고 야간근로수당 0.79배를 0.5배로 환원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이후에도 협상을 통해 야간근로수당 가산율을 79%로 유지하거나 더 올리면 되지만 내부 분위기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낮다'로 쏠리고 있다. 임종린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은 "2017년 임금 협상을 할 때도 3년 이내 본사와 똑같이 임금을 맞춰주겠다는 조건을 사측이 제안했었는데, 유야무야됐다. 이번에도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했다. 사측은 "노사 합의안에 '임단협 종료 시까지'라는 단서 조항이 달린 것은 임단협에서 노조와 다음 해 임금체계에 대해 논의하기 때문에 현재 적용된 내용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라며 "할증 수당을 일방적으로 없애거나 축소한다는 의미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일부 계열사는 SPC의 근무제도 개편안이 발표된 이후에서야 새로운 합의에 들어갔다. 비알코리아는 지난달 19일 자로 근무제 개편에 맞춰 기본급 2%를 인상한다고 발표했다가 이를 철회하고, 이달 1일 자로 발표한 새 합의문에 생산수당 신설 및 야간수당 0.15배 추가 지급 내용을 담았다. 대신 SPL처럼 임단협까지 한시적으로 추가 수당을 유지한다는 단서 조항은 빠졌다.
SPC 삼립은 2조2교대에서 3조3교대로 근무체계가 바뀌면서 주 5일 52시간이었던 근무시간이 근무일이 하루 더 늘어난 주 6일 48시간으로 바뀌었다. 공장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사측이 야간 근로 시간 단축 제도를 준비할 때부터 "시간을 줄이면 오히려 그만큼 근무일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라는 불안감이 감돌았다고 한다.
바뀐 근무체제가 야간 근로시간 단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생산 압박이 더 강해지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연결조를 도입하는 SPC 공장 중 한 곳에 다니는 10년 차 현직 C씨는 "연결조 인원이 아직 다 구해지지 않아 3시간 동안 일단 기계를 멈추고 있다"며 "근무 시간이 줄어든 만큼 생산 물량을 맞추기 위해 업무가 바빠졌다. 아무도 라인을 비울 수 없으니 현재 식사, 화장실도 한 명씩 교대해서 다니고 있다.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10분에 한 라인에서 빵이 수천 개가 나오는데, 근무시간 3시간을 줄인다면 생산량을 정말 파격적으로 줄여야 한다"면서 "생산량 감축이 없다면 혼란은 예견된 수순"이라고 덧붙였다.
SPC 측은 "취약 시간대 근로에 따른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마련한 조치"라며 "연결 조 시간대는 노동조합과 협의를 통해 업무의 연결이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야간수당, 출퇴근 조건 등 직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생산량과 생산 품목은 수요 예측과 공정 효율화를 바탕으로 적정 수준에서 조정하고 있다. 구체적인 생산량 감축 목표 수치는 공개가 어렵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간과한 야간 근로의 이중성
기존에 시행하던 SPC 빵 공장의 2조2교대 근무방식은 이렇다. 주간 조가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하고, 이후 야간 조가 교대해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일한다. 연장근로는 최대 3시간까지 가능한데, 대부분 매일 3시간을 모두 채워 일한다. 사실상 오후 7시부터 그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일하는 '12시간 맞교대' 방식이다.
SPC는 이에 상응하는 임금 보전을 위해 기타 수당, 연장근로 수당 등 다양한 수당 제도를 두고 있다. 임금은 기본급과 여러 수당이 합산돼 나온다. 야간이나 공휴일에 일하면 받는 특근 수당 의존도가 높았던 SPC 공장 노동자들에게 야간근로는 생계를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선택지였다. 노동자들이 야간 근로 단축으로 임금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시아경제는 C씨의 월급을 기준으로 야간 근로 단축에 따른 임금 변화를 계산해봤다. C씨가 받은 기본급은 280만원이다. 이를 C씨의 근로시간으로 나누면 기본 시급은 대략 1만3000원으로 계산된다. SPC는 기존 근무 시간을 넘어 추가로 연장 근로를 할 경우 본인이 받는 기본 시급의 1.5배를 준다. 심지어 야간 근로는 시급이 1만8000원으로 주간보다 더 높다. 이를 반영하면 연차에 따라 다르긴 해도 하루 3시간씩만 더 일하면 월 최소 100만원 이상을 연장근로와 야간근로로 가져가는 셈이다. 최저임금과 비슷한 수준의 기본급을 받는 신입사원이라면 야간이든 주간이든 연장 근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C씨는 "공장 노동자의 기본급이 높지 않아서 야간이나 연장 근무를 자처하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되는 구조"라며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주말 특근도 서로 내가 먼저 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의견 제대로 수렴하나…깊게 깔린 불신
노동자들은 왜 이렇게까지 기업을 못 믿게 된 것일까. 불신의 기원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2년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소스 배합기에 노동자가 빨려 들어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뒤 허영인 SPC 회장은 1000억원을 투자해 안전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1000억원을 쓰겠다는 발표 이후에도 기계 끼임 사망사고는 2023년과 올해 두 건이나 더 발생했다. 안전 강화에 쓰겠다던 1000억원이 효과를 내지 못한 셈이다.
'1000억원을 도대체 어디에 썼느냐'라는 국회의원들의 질의에도 SPC는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지난 21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SPC 사망사고를 다뤘던 이은주 전 정의당 의원은 "당시 1000억원을 어떻게 썼는지 SPC에 소명할 것을 요구했지만 끝내 자료를 받지 못했다"며 "사고 재발 방지 보고서를 환노위에 제출했는데, 너무 성의 없이 써와서 공식 석상에서 관계자를 질책한 적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2023년 8월 SPC 샤니공장에서 볼 리프트 끼임 사망사고가 발생하기 직전 샤니 공장에 배치됐던 7대 안전수칙. 당시 검토를 맡았던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안전교육 내용이 천편일률적으로 동일하며 추상적인 구호 제창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
올해 5월 세 번째 사고가 발생한 뒤에야 SPC는 '안전 경영 혁신 방안'이라며 국회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서 SPC는 1000억원 중 969억원을 산업 안전에 투자했다고 언급했다. 노후기기를 교체하는 등 장비 안정성을 강화하는데 172억6000만원을, 보호구를 지급하고 끼임 사고를 예방하는데 254억3000만원을 썼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무엇이 바뀌었는지 체감이 안 된다고 말하는 공장 노동자들이 많다. 기계에 '손 조심' '끼임 조심' 스티커를 붙이고, 안전 수칙을 적은 현수막을 공장 내부에 걸어 놓는 등의 변화는 있었으나 오래된 설비 자체를 전면 교체하거나 하는 과정은 드물었다고 전했다.
대책 마련이 땜질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 번째 기계 끼임 사망사고가 발생한 뒤(참고기사: SPC 사고일지…3명의 기록), SPC는 삼립 공장 스파이럴 컨베이어 교체에 5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기업은 사고가 난 SPC삼립뿐만 아니라 던킨도너츠를 생산하는 비알코리아 등 다른 자회사에서도 동일한 기계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했다(참고기사: 위험한 기계 둘러싼 죽음의 공통점). 사고가 난 것과 같은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가 SPC 전체 공장 안에 총 47대가 있다는 국회의원실 자료가 공개된 후 SPC는 재빨리 점검에 나섰다.
산재 예방을 연구하는 서용윤 동국대 산업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산재 사망사고가 지금 매번 같은 기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마치 두더지 잡기 하듯 사고가 발생하고 해당 기계에 대책을 세우면 다른 기계에서 또 사고가 난다"며 "그래서 안전 관리 체계를 종합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을 하는데, 1000억원이 그렇게 효율적으로 쓰였는지 의문이 든다"고 전했다.
SPC 관계자는 "지난 5월까지 969억원을 들여 안전 시스템 강화를 위해 노력해왔으나 다시 사고가 발생해 안타깝다"며 "기존 방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생산 시스템 전반에 문제가 없는지 원점에서부터 다시 살피고 있다. 향후 근무제도 개편과 안전 스마트 신공장 건립 등을 조속히 추진해 안전 강화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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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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