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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업 공개’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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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업 공개’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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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 회장 때 상장 논의가 있었는데 결국 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보니, 안한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 만난 중견그룹 오너 3세의 말이다. 이 그룹 계열사는 14곳이고, 모두 비상장사다. 자금 여력이 있으니 굳이 상장 필요성을 못느낀다. 실리도 크다. 기업의 자본조달 수단은 크게 타인자본(채권 발행)과 자기자본(주식 상장, 기업 공개)으로 나뉜다. 이자만 지급하는 채권이 대개 주식보다 조달비용이 더 저렴한 것으로 인식된다. 주식의 경우 지분이 희석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다 배당 등으로 장기간에 걸쳐 수익도 나눠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장기업’이라는 간판만 보고 무조건 상장에 나설 일은 아니다.


1999년 ‘무라카미 펀드’를 결성해 일본에서 행동주의 투자자로 이름을 날린 무라카미 요시아키(59년생)는 2005년 호리에 다카후미(72년생) 라이브도어 대표를 만난 얘기를 들려준다(책 ‘평생투자자’).


▶무라카미 : “보유한 현금 등 자산에 비해 (라이브도어) 주가가 너무나도 낮고, 커다란 투자 안건도 없는 것 같더군. 이런 상태라면 우리 펀드에서도 과감하게 투자해봐야겠어”


무라카미는 자신의 말에 대한 호리에의 답변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호리에 : “주식을 상장했다는 것은 공기(公器)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시장에서 주식을 살 수 있는 상태인 것이지요. 펀드로서도 싸면 사고 비싸면 파는 것은 당연한 선택입니다. 상장한 이상 저는 누가 대주주가 되든 그 주주 밑에서 기업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해 기업을 운영할 겁니다”


호리에는 행동주의 펀드 거물의 다소 공격적이고, 민감한 발언에도 당당했다. 상장의 리스크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주주경영에 대한 확고한 신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소신대로 호리에는 2005년 닛폰방송 인수(M&A)를 시도해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닛폰방송이 상장사이고, 계열사 후지TV 등 알짜 자산에 비해 주가가 현저히 낮으니, 공격에 들어간 것이다. 호리에의 공격은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2008년 후지산케이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계기로 작동했다.


상장에 따르는 이런 리스크와 비용을 감내하고서라도 반드시 상장할 이유가 있을 때 상장해야 한다. 심지어 어디에 쓸 지 결정하고, 자금을 조달(상장)하는 게 아니라, 일단 조달하고 용처는 나중에 생각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자세로 상장에 나서는 기업은 더더욱 있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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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미국과 한국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IMF통계)은 각각 약 29조달러, 1조8000억달러다. 상장기업수는 각각 5700여개, 2700여개다. 경제규모에 비해 한국 상장기업수가 과하게 많다. 최근 5년 국가별 상장회사 증가율도 한국 17.7%로, 대만 8.7%, 일본 6.8%, 미국 3.5%를 압도한다. 무분별한 상장의 피해는 고스란히 주주들의 몫이다. 게다가 한국 시장에선 퇴출(상장폐지)에 엄격하지도 않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나스닥에는 192개사가 상장하고, 395개사가 퇴출됐다. 같은 기간 코스닥은 상장 60개, 퇴출 19개다. ‘기업 공개’라는 왕관을 쓰려는 자에게 묻는다. "그 무게를 기꺼이 견딜 의지와 능력은 있는가".




김필수 경제금융매니징에디터 pilso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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